서울 용산구 용산역광장에 설치된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비를 맞고 서있다. 뉴스1
서울 용산구 용산역광장에 설치된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비를 맞고 서있다. 뉴스1
정부가 24일 열리는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하기로 결정하면서 '외교 참사' 논란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계속되는 '뒤통수'를 미연에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사도광산 추도식은 이날 오후 1시 일본 측 관계자만 참석한 채 니가타현 사도시에 있는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다. 외교부는 추도식을 하루 앞둔 23일 출입기자단 대상 공지를 통해 "우리 정부는 추도식 관련 제반 사정을 고려해 추도식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며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 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해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불참 결정 배경엔 일본 정부 측 추도식 참석 인사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과거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이력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쿠이나 정무관은 2022년 8월 자민당 참의원 신분으로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논란이 일었다. 이런 인사가 추도식에 참석하는 건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모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추도식을 앞두고 계속해서 잡음이 나왔다. 우선 일본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가 주최하고, 공식 명칭 역시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조선인'이나 '노동자' 같은 표현이 빠져 있어 추도 대상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한국에서 참석하는 피해자 유가족의 항공료와 숙박 등 비용을 일본 측이 아닌 우리 정부가 부담하는 점도 지적됐다. 양국 정부 대표가 낭독할 추도사 내용도 제대로 조율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측은 우리 정부의 불참 결정에 "유감스럽다"는 입장이다. 주한일본대사관 측은 "한일 정부간 정중한 의사소통을 실시한 가운데 이번에 한국 측이 불참한다면 유감스럽다"고 했다. 아키코 정무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논란에 대해서도 "종합적인 판단으로 외무성에서 홍보문화 및 아시아 대양주 정세를 담당하는 이쿠이나 정무관의 참석을 결정한 것"이라며 "이쿠이나 정무관은 참의원 의원 취임 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 당국자와 유가족은 이미 일본 현지에 출국해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별도의 자체 추도 행사를 열고, 사도광산 노동자 관련 시설을 둘러볼 예정이다.

외교가에서는 "일본이 또 뒤통수를 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군함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때도 일본 측은 희생자를 기리는 정보센터를 현장에 설치하기로 약속했지만, 실제로 설치한 곳은 현장과 1000㎞ 이상 떨어진 도쿄였다. 이번 사도광산이 등재될 때도 전시물에 '강제성' 표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 등이 논란이 됐다. 다만 외교부는 군함도 등재 때 이미 강제성 관련 표현을 얻어냈고, 이번 사도광산 등재에도 이 같은 표현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야권을 중심으로 '외교 참사' 등의 비판과 함께 정부가 책임론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쯤 되면 단순한 외교적 무능을 넘어 친일 매국 정부의 치밀한 계획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면서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막기는커녕 국민의 자긍심과 자존심마저 뭉개버린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비판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