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철기의 개똥法학] 판사에게 '팬'이 없는 이유
지난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판결에서 주요 공소 사실이 유죄로 인정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하필 선고가 있던 날 다른 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갔는데, 삼엄한 경비 속에 이 대표를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이 따로 집회를 하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국민 절반의 비난’이 예정된 사건이어서 재판부가 가졌을 부담감을 생각하자 마음이 착잡하고 한숨이 나왔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쟁점을 다시 정리해 보자. 이 대표가 2021년 12월 방송에 출연해 “전체 우리 일행, 단체사진 중의 일부를 떼내 가지고 이렇게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라는 이른바 ‘골프 발언’이 허위사실인지, 또 같은 해 10월 경기도 국정감사에 출석해 “백현동 부지 용도지역 변경은 국토교통부가 요청해서 한 일로, 용도를 바꿔 준 것은 국토부의 법률에 의한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는 이른바 ‘백현동 발언’이 허위사실인지 여부가 쟁점이다.

이 대표의 골프 발언 의미는 ‘해외 출장 기간에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출장 중 공식 일정에서 벗어나 김문기와 함께 골프를 쳤으므로 이것이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백현동 발언은 ‘국토부로부터 용도지역 변경 요구를 받고 불가피하게 녹지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하였다’는 취지인데, 용도지역 변경은 국토부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 대표가 스스로 검토해 변경한 것이고 국토부로부터 협박을 당한 사실도 없으므로 허위라고 판단했다.

민주당은 판결 직후 재판부의 실명을 거론하며 ‘검찰독재정권의 정적 제거에 부역하는 정치 판결’ ‘사법정의가 무너진 날’ 등의 거친 비판을 쏟아냈다. 판결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판결이 확정될 경우 유력 대선주자인 이 대표의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만큼 민주당 입장에서 아쉬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별다른 근거가 없고 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기록을 보지 않은 상황에서 판결문만으로 1심 판결을 검증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1심 판결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은 항소심 재판부의 몫이다. 판결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지만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비판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면 이는 감정적 비난에 불과하다.

정치는 팬덤(fandom)에 기반할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정치인은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사법은 팬덤에 기대지 않는다. 판사에게는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이 아니라 원고와 피고, 검사와 피고인이 존재할 뿐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판결이 나온 지 불과 열흘여 만인 25일, 이 대표에 대한 위증교사 사건 1심 판결도 예정돼 있다. 어떤 판결이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에는 보다 성숙한 정치권의 반응을 기대해 본다. 정치적 유불리에만 의존한 근거 없는 비난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