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베센트 차기 미국 재무장관 내정자가 지난 8월 노스캐롤라이나 애슈빌에서 열린 유세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스콧 베센트 차기 미국 재무장관 내정자가 지난 8월 노스캐롤라이나 애슈빌에서 열린 유세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스콧 베센트 키스퀘어 창업자(62)를 차기 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으로 지명했다.

23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전날 성명에서 “오랫동안 미국 우선주의의 강력한 지지자였던 베센트가 미국이 다시 황금시대에 접어들도록 나를 도와줄 것”이라며 이 같은 인선을 발표했다. 베센트 지명자는 트럼프 당선인의 보편관세 도입과 암호화폐 규제 완화 등 경제 정책을 옹호해왔다. 다만 관세를 적용하되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도입해야 하며 관세 도입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보다는 협상 카드로 활용해 미국에 유리한 거래를 얻어내야 한다는 방침을 나타냈다.

미국에 진출한 배터리 등 분야 한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해선 “재정적자를 부르는 파멸 기계이며 왜곡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며 대대적인 손질을 예고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정권 인수팀은 IRA에 따라 미국 소비자가 받은 전기차 세액공제를 폐지하고, LG에너지솔루션 등 미국에 진출한 한국 배터리 회사가 혜택을 받는 첨단제조 세액공제(AMPC)를 손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3-3-3 계획 내세워 '점수'

‘트럼프 2기’ 초대 재무장관으로 22일 내정된 스콧 베센트는 점진적인 관세의 도입과 연방정부 부채 증가율 완화 등을 강조해 온 인물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를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한 명”이며 “모두에게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특히 베센트는 ‘3-3-3’ 계획을 내세워 트럼프에게 높은 점수를 딴 것으로 알려졌다. 2028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예산 적자를 3%로 줄이고, 규제완화를 통해 GDP 성장률 3% 달성, 하루 300만배럴의 추가 석유 생산을 목표로 한다는 구상이다. 베센트는 또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해고하고 싶어하는 트럼프를 위해 ‘그림자 Fed 의장’ 자리를 만들어서 실질적으로 파월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관세 ‘점진도입’ 주장

베센트는 과거의 민주당 지지자에서 공화당으로 전향한 인물이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후원행사를 열기도 했으며 민주당에 큰 돈을 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 밑에서 영국 파운드화 평가절하에 대한 대규모 베팅으로 큰돈을 벌었다. 전 뉴욕주 검사 조지 프리먼과 결혼한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월가의 많은 동료들이 과거 공화당 스타일인 니키 헤일리를 지지했을 때 베센트는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WSJ에 따르면 그는 트럼프가 끊임없이 송사에 시달리는데도 지지율이 더 오르는 것을 보고 ‘나쁜 소식에도 상승하는 주식 같다’고 주변 사람에게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동생으로 작고한 로버트 트럼프의 전 부인과 친구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그가 회색 머리에 안경을 써서 재무장관다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점도 그가 선택된 이유 중 하나라고 주변인들이 전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지지자로 바뀐 후 그는 강력한 관세 옹호론을 펼치고 있다. 재무장관 자리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던 지난 15일 폭스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이 “미국의 원조 관세 지지자였다”면서 “미국 가정과 기업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관세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베센트는 미국의 강력한 소비력을 활용하면 관세가 수입품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면서 연 방정부의 세수를 늘릴 수 있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무조건 관세를 배척하는 것은 진짜 경제학적 사고가 아니라고도 비판한다.

그는 폭스뉴스 기고문에서 “다른 국가들이 너무 오랫동안 미국의 개방성을 이용해 왔다”며 “미국은 세계에 시장을 개방했지만, 중국의 경제성장은 독재정권의 지배력을 강화시키고 우리의 제조업 기반을 공동화시켰으며, 국가안보에 취약점을 만들었다”고 했다.

다만 하루 아침에 높은 장벽을 세우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베센트 내정자는 앞서 CN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제안에 관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도입되어야(layerd in gradually)” 한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가 궁극적으로 “자유무역주의자”라면서 “(관세 정책은) 내려가기 위해 올라가는 (협상용) 전략”이라고 했다. 트럼프 당선인과 ‘속도’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는 부분이다.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에 그의 지명을 발표하면서 관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IRA는 파멸 기계”

차기정부의 재정 지출을 제한하는 것도 그의 주요 과제다. 트럼프 당선시 재정적자가 급증할 것이라는 책임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 보고서에 대해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세금 감면이 어떻게 성장을 가능하게 할지 고려하지 않은 끔찍한 보고서”라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해체함으로서 지출을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IRA는 미국 정부의 적자에 대한 파멸(둠스데이) 기계”라고 직설적으로 꼬집었다. 지난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는 “파괴적 에너지 정책과 돈키호테식 에너지 전환을 위한 투자, 비경제적인 정부 명령에 따른 반도체 제조 공장 투자로 인해 미국 경제의 경쟁력이 약화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인수위 관계자들은 IRA에 따라 전기차 구매 소비자에게 주고 있는 7500달러 세액공제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미국에 진출한 배터리 회사들에 지급되는 첨단제조세액공제(AMPC)도 손보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 등은 미국 공장에서 배터리 셀을 생산할 때 킬로와트시(㎾h)당 35달러, 모듈까지 생산하면 추가로 ㎾h당 10달러를 세액공제받고 있다. 미국 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7500달러 세액공제 폐지는 사실상 확정적”이라며 “AMPC는 공화당 의원들이 관련된 주에 주로 투자가 이뤄진 만큼 결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지만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제한을 둘 수 있고, 지금과 같은 형태는 아닐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IRA가 유명무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