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감독들 군복입고 영화제 참석… 울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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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의 마이크 피기스 감독
"영화의 힘은 자본이 아닌 분투와 열정"
"2018년부터 해마다 방한
올해는 안 올까 했는데
다시 그리워져서 왔어요"
미투 운동 이후의 이야기...
영화 <Shame> 제작 예정
"영화의 힘은 자본이 아닌 분투와 열정"
"2018년부터 해마다 방한
올해는 안 올까 했는데
다시 그리워져서 왔어요"
미투 운동 이후의 이야기...
영화 <Shame> 제작 예정
형형색색의 네온이 마치 혼령처럼 떠돌며 밤을 점령하는 도시, 라스베가스에서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삶을 끝내고자 온 남자와 다른 삶을 시작하고 싶은 여자는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에게 빠져든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만난 이 둘의 운명은 마치 라스베가스가 그러하듯, 희망적이고도 절망적이다.
1995년에 개봉한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미국 아트하우스(저예산) 영화지만, 그 해 아카데미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평단과 시네필을 열광하게 했던 일대 사건이었다. 영화는 유독 한국에서 더 큰 사랑을 받았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90년대 성행했던 여러 영화 잡지와 영화평론지의 ‘특종’이자 센터피스(centerpiece)였다. 영화를 연출한 마이크 피기스 감독은 이후에도 <원 나잇 스탠드>, <썸바디 업 데어 라이크 미>, <메가독>(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메갈로폴리스>의 메이킹 다큐멘터리)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피기스 감독은 한국과도 인연이 많다. 한국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고 한국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는 피기스 감독은 2018년에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을 필두로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 제천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심사위원장 등 한국의 영화제들에 꾸준히 참여했다.
피기스 감독은 올해에도 대학로에서 열리는 월드 2인극 페스티벌을 포함한 크고 작은 행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날은 마스터 클래스를 위해 추계예술대학교에 방문한 마이크 피기스 감독과 오랜만에 재회하여 그의 지난 작품들, 그리고 최근에 작업한 코폴라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한국에 꽤 자주 방문했던 것으로 안다. 이번 방문은 어떤 목적인가.
2018년에 첫 방문을 한 이래로 거의 매년 왔기 때문에 사실 올해는 쉴까도 생각했었다(웃음). 그런데 막상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이 다시 그리워졌다. 뒤늦게 결심하긴 했지만, 10월쯤 한국에 와야겠다고 생각했고, 한국 친구들에게 연락을 시작했다. 현재 잡혀 있는 마스터 클래스와 토크 행사 스케줄도 그때 만들어 낸 것이다.
▷ 한국은 마이크에게 어떤 곳인가.
엄청나게 흥미로운 곳이다. 방금 말한 것처럼 안 오면 오고 싶은 곳. 한국에 자주 오면서 한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워 나가고 있다. 사실 몇 년간 한국에서 진행하려고 하는 영화 프로젝트도 있다. 다만, 이런 것들을 하면서 외국인으로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한국의 이미지보다 한국의 현실에 대한 것을 배우게 되고 장점과 단점도 함께 알게 되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가까운 곳이고, 애착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 작년에 환경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을 포함, 부산, 제천 등 다양한 한국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마이크가 바라보는 한국영화는 어떤지.
사실 요즘에 만들어지는 영화에 대한 나의 인상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자본의 권력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원래 영화라는 것이 자본 없이 만들어질 수 없는 대중예술이긴 하지만 더 이상 누벨바그나 도그마 95 같은 영화 운동이 만들어질 수 없는 환경이 된 지 오래다.
한국 영화산업 역시 작가의 비전보다는 권력이 우선시되고 있는 인상을 받았다. 자본과 기업이 영화의 목소리를 거세하고 있다. 방금 언급했지만 비단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 한국의 영화제도 그렇지만 마이크는 전 세계의 영화제에 활발하게 참여해 오지 않았는가. 올해는 키에프에서 열린 오데사 국제영화제에 참여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영화제를 열었다는 것이 (원래는 우크라이나의 오데사에서 열어야 하지만 올해는 키에프에서 개최했다). 놀랍다. 인상적인 기억이나 작품이 있는지.
사실 이 제안은 3년 전 제천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 함께 심사를 했던 오데사 국제 영화제의 위원장 안나가 제안한 것이다. 이후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고,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이 영화제에 무조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키에프도 안전하진 않지만 여동생에 대한 슬픔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사람들이 투쟁하고 저항하는 현장을 보고 싶기도 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참여했던 모든 영화감독들이 군복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전쟁 중이라 그들이 늘 출전을 준비해야 하고 동시에 영화제에도 참여한 것이다. 가슴 아프면서도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 최근에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유작인 <메가폴리스>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끝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작업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주연 배우인 니콜라스 케이지의 삼촌이다. 그때부터 좋은 친구로 지냈다. 가끔 연락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코폴라가 이런 프로젝트가 있다고 이야기를 했고, 내가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건 2년 전이었다.
▷ 오랜만에 할리우드에서의 작업이다. 어떤 점이 달라졌나.
마지막으로 할리우드에서 작업한 것이 10여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거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 영화산업은 멸종하고 있는 듯하다. 스트리밍과 콘텐츠가 산업을 잠식했고, 영화 (전통적 의미에서의 극장 상영 영화)는 니치 시장(틈새 시장)이 될 것이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영화산업에서 일하는 전문가들 (고위직 역시) 대부분이 영화의 미래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고, 현재 자기 직업에 대해 모두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할리우드 역시 그러하다. 팬더믹 이후로 비용과 세금 감면을 이유로 스튜디오와 영화 작업의 상당 부분이 현재는 애틀랜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무소불위 할리우드의 시대도 저물고 있다. ▷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오늘도 상영되었지만 지난 30여년동안 세계 어딘가에서 늘 상영이 되었던 것 같다. 마이크의 커리어에서 이 작품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이 영화는 내가 할리우드 산업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만든 작품이다. 할리우드에서 했던 작업들, 큰 상업 영화들을 하면서 너무 많은, 어쩌면 당연한 권리들을 인정받지 못하고 희생해야 했다. 정말 잘 될 수 있었지만, 할리우드 시스템의 간섭으로 잘 안된 것이 그 직전에 만든 작품 <미스터 존스>였고, 많이 좌절했다. 그 후에 정말로 하고 싶은 영화를 해야겠다, 다만 작은 스케일로 해보자고 결심하고 만든 작품이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이다. 가장 큰 용기가 필요했던 시간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생의 전환점이 된 셈이다. ▷ 한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어떤 단계에 있는가.
<Shame>이라는 작품이다. 매인 캐릭터 세 명을 중심으로 미투 운동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을 위해 그동안 많은 한국 배우들과 미팅했다. 투자와 제작을 위해 이번에도 미팅을 가질 예정이다.
▷ 한국에서의 남은 일정은 어떤 것이 있는지.
다소 급작스럽게 정해진 한국 방문이지만 이번이 특별한 것은 한국에 3주 반가량 있는 기간 중간에 도쿄에도 다녀올 예정이다. 일본에 첫 방문이자, 처음으로 토크 이벤트를 할 예정이다. 늘 도쿄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에는 많은 행사를 정해 놓고 온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여유 있게 둘러볼 생각이다.
인터뷰 직후, 피기스 감독은 영화 전공 학생들을 위한 한 시간가량의 특강에 참여했다. 주로 작품에 대한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메인이었지만 특강의 말미에 그가 했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화산업은 어려워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조건과 도구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와 관찰력, 좋은 배우만 있다면 좋은 영화는 언제든 탄생할 수 있다. 다만 엄청난 제작비의 상업영화만 기대하지 말고 아주 작은, 마이크로 영화를 추구하고 멈추지 않고 만들면 된다.”
그가 인터뷰에서도 강조했던 말이지만 영화의 저력은 탄생으로부터 나온다. 우크라이나의 감독들이 군복을 입고 영화제에 참여하면서도 영화를 만들었듯, 영화의 힘은 자본이 아닌 분투와 열정이다. 그리고 감독 마이크 피기스는 오늘도 쉼 없이 그것을 실천하는 중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1995년에 개봉한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미국 아트하우스(저예산) 영화지만, 그 해 아카데미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평단과 시네필을 열광하게 했던 일대 사건이었다. 영화는 유독 한국에서 더 큰 사랑을 받았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90년대 성행했던 여러 영화 잡지와 영화평론지의 ‘특종’이자 센터피스(centerpiece)였다. 영화를 연출한 마이크 피기스 감독은 이후에도 <원 나잇 스탠드>, <썸바디 업 데어 라이크 미>, <메가독>(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메갈로폴리스>의 메이킹 다큐멘터리)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피기스 감독은 한국과도 인연이 많다. 한국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고 한국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는 피기스 감독은 2018년에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을 필두로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 제천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심사위원장 등 한국의 영화제들에 꾸준히 참여했다.
피기스 감독은 올해에도 대학로에서 열리는 월드 2인극 페스티벌을 포함한 크고 작은 행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날은 마스터 클래스를 위해 추계예술대학교에 방문한 마이크 피기스 감독과 오랜만에 재회하여 그의 지난 작품들, 그리고 최근에 작업한 코폴라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한국에 꽤 자주 방문했던 것으로 안다. 이번 방문은 어떤 목적인가.
2018년에 첫 방문을 한 이래로 거의 매년 왔기 때문에 사실 올해는 쉴까도 생각했었다(웃음). 그런데 막상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이 다시 그리워졌다. 뒤늦게 결심하긴 했지만, 10월쯤 한국에 와야겠다고 생각했고, 한국 친구들에게 연락을 시작했다. 현재 잡혀 있는 마스터 클래스와 토크 행사 스케줄도 그때 만들어 낸 것이다.
▷ 한국은 마이크에게 어떤 곳인가.
엄청나게 흥미로운 곳이다. 방금 말한 것처럼 안 오면 오고 싶은 곳. 한국에 자주 오면서 한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워 나가고 있다. 사실 몇 년간 한국에서 진행하려고 하는 영화 프로젝트도 있다. 다만, 이런 것들을 하면서 외국인으로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한국의 이미지보다 한국의 현실에 대한 것을 배우게 되고 장점과 단점도 함께 알게 되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가까운 곳이고, 애착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 작년에 환경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을 포함, 부산, 제천 등 다양한 한국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마이크가 바라보는 한국영화는 어떤지.
사실 요즘에 만들어지는 영화에 대한 나의 인상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자본의 권력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원래 영화라는 것이 자본 없이 만들어질 수 없는 대중예술이긴 하지만 더 이상 누벨바그나 도그마 95 같은 영화 운동이 만들어질 수 없는 환경이 된 지 오래다.
한국 영화산업 역시 작가의 비전보다는 권력이 우선시되고 있는 인상을 받았다. 자본과 기업이 영화의 목소리를 거세하고 있다. 방금 언급했지만 비단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 한국의 영화제도 그렇지만 마이크는 전 세계의 영화제에 활발하게 참여해 오지 않았는가. 올해는 키에프에서 열린 오데사 국제영화제에 참여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영화제를 열었다는 것이 (원래는 우크라이나의 오데사에서 열어야 하지만 올해는 키에프에서 개최했다). 놀랍다. 인상적인 기억이나 작품이 있는지.
사실 이 제안은 3년 전 제천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 함께 심사를 했던 오데사 국제 영화제의 위원장 안나가 제안한 것이다. 이후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고,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이 영화제에 무조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키에프도 안전하진 않지만 여동생에 대한 슬픔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사람들이 투쟁하고 저항하는 현장을 보고 싶기도 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참여했던 모든 영화감독들이 군복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전쟁 중이라 그들이 늘 출전을 준비해야 하고 동시에 영화제에도 참여한 것이다. 가슴 아프면서도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 최근에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유작인 <메가폴리스>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끝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작업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주연 배우인 니콜라스 케이지의 삼촌이다. 그때부터 좋은 친구로 지냈다. 가끔 연락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코폴라가 이런 프로젝트가 있다고 이야기를 했고, 내가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건 2년 전이었다.
▷ 오랜만에 할리우드에서의 작업이다. 어떤 점이 달라졌나.
마지막으로 할리우드에서 작업한 것이 10여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거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 영화산업은 멸종하고 있는 듯하다. 스트리밍과 콘텐츠가 산업을 잠식했고, 영화 (전통적 의미에서의 극장 상영 영화)는 니치 시장(틈새 시장)이 될 것이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영화산업에서 일하는 전문가들 (고위직 역시) 대부분이 영화의 미래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고, 현재 자기 직업에 대해 모두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할리우드 역시 그러하다. 팬더믹 이후로 비용과 세금 감면을 이유로 스튜디오와 영화 작업의 상당 부분이 현재는 애틀랜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무소불위 할리우드의 시대도 저물고 있다. ▷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오늘도 상영되었지만 지난 30여년동안 세계 어딘가에서 늘 상영이 되었던 것 같다. 마이크의 커리어에서 이 작품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이 영화는 내가 할리우드 산업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만든 작품이다. 할리우드에서 했던 작업들, 큰 상업 영화들을 하면서 너무 많은, 어쩌면 당연한 권리들을 인정받지 못하고 희생해야 했다. 정말 잘 될 수 있었지만, 할리우드 시스템의 간섭으로 잘 안된 것이 그 직전에 만든 작품 <미스터 존스>였고, 많이 좌절했다. 그 후에 정말로 하고 싶은 영화를 해야겠다, 다만 작은 스케일로 해보자고 결심하고 만든 작품이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이다. 가장 큰 용기가 필요했던 시간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생의 전환점이 된 셈이다. ▷ 한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어떤 단계에 있는가.
<Shame>이라는 작품이다. 매인 캐릭터 세 명을 중심으로 미투 운동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을 위해 그동안 많은 한국 배우들과 미팅했다. 투자와 제작을 위해 이번에도 미팅을 가질 예정이다.
▷ 한국에서의 남은 일정은 어떤 것이 있는지.
다소 급작스럽게 정해진 한국 방문이지만 이번이 특별한 것은 한국에 3주 반가량 있는 기간 중간에 도쿄에도 다녀올 예정이다. 일본에 첫 방문이자, 처음으로 토크 이벤트를 할 예정이다. 늘 도쿄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에는 많은 행사를 정해 놓고 온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여유 있게 둘러볼 생각이다.
인터뷰 직후, 피기스 감독은 영화 전공 학생들을 위한 한 시간가량의 특강에 참여했다. 주로 작품에 대한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메인이었지만 특강의 말미에 그가 했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화산업은 어려워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조건과 도구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와 관찰력, 좋은 배우만 있다면 좋은 영화는 언제든 탄생할 수 있다. 다만 엄청난 제작비의 상업영화만 기대하지 말고 아주 작은, 마이크로 영화를 추구하고 멈추지 않고 만들면 된다.”
그가 인터뷰에서도 강조했던 말이지만 영화의 저력은 탄생으로부터 나온다. 우크라이나의 감독들이 군복을 입고 영화제에 참여하면서도 영화를 만들었듯, 영화의 힘은 자본이 아닌 분투와 열정이다. 그리고 감독 마이크 피기스는 오늘도 쉼 없이 그것을 실천하는 중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