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키델릭 네오 민요 마스터피스(psychedelic neo-minyo masterpiece)"

영국 런던의 복합문화공간 사우스뱅크의 홈페이지에는 이희문을 이렇게 소개했다.

경기민요라는 K-전통음악에 뿌리를 두고, 록·펑크·재즈 등의 다양한 장르와 콜라보를 시도해 온 소리꾼 이희문의 발자취를 표현한 문구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단어들의 조합은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다. 그의 생경한 음악과 퍼포먼스를 전 세계적으로 알린 것은 7년 전 씽씽밴드 활동 시절 참여한 ‘NPR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였다. 유튜브로 860만 회 가까이 재생된 영상은 K-전통음악이 얼마나 힙한지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사진. ⓒIkin Yum Photography
사진. ⓒIkin Yum Photography
실제로 보면 대체 어떨지 궁금했던 그의 공연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런던 사우스뱅크 엘리자베스홀 퍼셀룸에서 열렸다. 6년 전 씽씽밴드와 함께였던 이희문은 이번엔 자신의 프로젝트 밴드 ‘오방신과(OBANGSINGWA)’로 런던을 찾았다. 그와 밴드는 듣도 보도 못한 ‘네오 민요’의 격동적이고 창조적인 에너지를 무대 위에서 뿜어냈다.

이날 공연은 360석 전석 매진되었고, 일부 한국인과 대다수의 영국 현지인으로 객석이 채워졌다. 이희문의 음악이 민요+디스코, 민요+재즈, 민요+펑크 등 장르의 트위스트인 것처럼 이날 객석 또한 다양한 개성의 콜라보였다. 청바지와 히잡, 레게 헤어, 힙합 팬츠, 바바리코트가 콜라보를 이뤘다. 세대도 1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다채로웠다. 생경하지만 희한하게 잘 어우러지는 객석의 조합 또한 이희문의 개성을 확실히 보여줬다. 사우스뱅크 진행자는 “여러분들에게 행운을 전하는 주술을 부르는 쇼가 될 것”이라고 공연을 소개했다.

공연은 컬쳐 쇼크의 연속이었다. “헬로 런던! (Hello, London!)”하며 등장한 이희문은 마치 주술사 같았다. 곱게 빗어 내린 검은색 긴 머리 가발에 눈빛을 완벽하게 차단한 선글라스, 20cm 넘는 굽의 부츠 하이힐, 반짝이는 강렬한 레드 코르셋, 아우라 넘치는 대형 깃털을 머리에 꽂고 나오며 존재감을 뿜어냈다.
사진. ⓒIkin Yum Photography
사진. ⓒIkin Yum Photography
“Wow!” “Amazing!”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달아오르는 객석을 예상했는데, 초반부터 객석 반응이 뜨거웠다. 마치 런던의 팬클럽이 온 것처럼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그리고 공연 내내 충격파가 이어졌는데, 핵심은 이희문이 소리를 내는 방식이었다. 부드러움과 까슬함이 트위스트 된 오묘한 목소리, 성대를 강하게 자극하며 "탁"하고 강렬한 첫소리를 뿜어내는 순간, 그 독특한 발성과 소리의 질감은 객석을 압도했다.

첫 곡은 ‘어허구자’로, 밴드와 합을 맞춘 민요 발성에 붉은색 코르셋, 요염한 몸짓, 흥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웨이브까지 전에 본 적 없는 소리와 몸짓, 비주얼 쇼가 펼쳐졌다. 이어진 곡 ‘아파몰라꽈악’에서는 이희문이 요염하게 몸을 흔들며 “모를 거야 몰라!” 귀여운 추임새와 소리로 흥겨운 무대를 이어갔다. 한국어 공연으로 영어 자막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민요의 반복된 추임새를 따라 불렀다. 몇몇 관객은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그의 세계관에 빠져들었다.
사진. ⓒIkin Yum Photography
사진. ⓒIkin Yum Photography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민요의 후렴구도 친근함을 더했다. “얼씨구절씨구 자진 방아를 돌려라~아아~(곡명 : 간다, 못 간다)” 후렴구가 “닐리리야 닐리리야~(싫은 민요)”를 현지인들도 따라 부르며 흥을 함께 느꼈다. 그는 중간중간 선글라스를 벗고 강렬한 반짝이 섀도로 꾸민 오묘한 눈빛을 보여줬다.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과 그의 연극적 캐릭터에 객석은 환호했다. 런던 현지 관객들에게 맞춰 “트라팔가 광장이 한강수가 되었네”라든지 “여기 런던에 왜 왔던가” 등으로 개사해 들려주는 센스도 돋보였다.

그의 무정형의 흥을 표현하는 몸짓도 독특한 매력이었다. 주로 흐느적거리는 막춤 같지만, 코어에는 한국의 어깨춤이 들썩였다. 손을 휘젓는 듯한 몸짓에는 민요에서 느껴지는 슬픈 듯 기쁜, 행복한 듯 슬픈 아련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객석은 가사를 몰라도 소리에서 오는 느낌을 이해한 듯 들썩였다. 중간중간 어깨춤을 함께 추고 “얼쑤!” 추임새를 넣고, 발로 바닥을 쿵쿵 구르며 몸으로 소리를 느끼고 반응했다. “와우, 너무 재밌어”하는 객석의 수군거림도 들렸다.

강렬한 록 음악을 연상케 하는 밴드 사운드에 경기민요 이수자인 소리꾼 이희문의 파워풀한 고음 창법이 어우러졌다. 그는 남녀 음역대 구분이 무색할 정도로 고음을 뽑아냈다.

잠시 옷을 바꿔입고 등장한 그는 맞춤 제작한 무대용 블랙 재킷에 스팽글 핫팬츠, 스타킹을 장착하고 등장했다. 1부가 충격에서 열광으로 그에게 스며드는 시간이었다면, 2부는 정신줄을 내려놓고 함께 노는 댄스 클럽이었다. 20cm 넘는 힐을 신고 무대를 날아다니는 그의 에너지에 객석이 들썩였다. 이희문은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아리”, “얼쑤~꺄!”를 부르며 그의 무대가 결국 한국의 전통 음악을 뿌리로 한 것임을 입증해 보였다. 관객들은 스탠딩 상태로 춤추고 노래를 함께 불렀다.
사진. ⓒIkin Yum Photography
사진. ⓒIkin Yum Photography
75분으로 예정되었던 공연은 2곡의 앵콜이 이어지면서 100분 가까이 진행되었다.

마지막 무대는 객석이 휴대전화 불빛으로 화답했고,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어메이징하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몇몇 팬들은 이희문에게 팬레터와 선물을 무대 위로 전달하기도 했다. 공연 후 이희문은 기자에게 “암스테르담에서 온 팬 엘리자베스가 서툰 한국어로 한 땀 한 땀 써준 팬레터가 감동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이날 런던 공연에 대해 “이미 첫 곡부터 '나는 네가 뭔가 해주길 원하고 있어!'라는 눈빛들이 반짝반짝했다”며 “애써서 준비한 의상에 '와우!'하며 놀라고, 수군거리면서 음악에 빠져들고, 한국적인 보컬 창법에 신기해하더니, '어메이징(Amazing)’하다는 반응이 재미있었다”고 덧붙였다.
사진. ⓒ조민선
사진. ⓒ조민선
영국 언론 가디언이 왜 6년 전 그의 공연을 놓고 “엄청나게 재미있다”라고 평했는지 정확히 이해되는 공연이었다. 그리고 소위 말해 세계적으로 ‘뜨기’ 전부터, 숱한 밴드들이 왜 그의 공연을 그렇게 찾아다녔는지도.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아티스트들에게, 한국 민요로 정점을 찍은 소리꾼 이희문이 음악 내에서 장르의 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모습은 꽤나 충격적이었겠다. 장르의 선을 넘고 마구 섞어대면서도, K 민요라는 소리의 뿌리를 갖고 있는 그의 무대는 아티스트들에게도 충격과 영감을 주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인 이희문은 매 시도마다 새로운 세계관과 캐릭터를 장착하지만, 소리만큼은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그가 수준 높은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다.

한편, 이희문 프로젝트 ‘오방신과’ 공연은 10월 3일부터 11월 23일까지 진행된 주영 한국문화원(원장 선승혜) 주관의 ‘K 뮤직 페스티벌’의 대미를 장식하는 공연이었다. 이희문과 밴드는 공연 다음날 곧바로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그는 12월 중순 다시 전통 경기민요, 서도민요의 본질로 돌아가는 <이희문 프로젝트 '요(謠)'>를 무대에 올린다. 그리고 내년엔 일본, 미국 공연을 추진 중이다.
사진. ⓒIkin Yum Photography
사진. ⓒIkin Yum Photography
런던=조민선 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