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과 경기 침체 여파로 신음하는 국내 완구업계에서 자체 지식재산권(IP) 확보 여부가 각 업체의 실적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 애니메이션사 등 IP를 보유한 콘텐츠회사들이 직접 완구 제작·유통에 뛰어들며 기존 완구회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글로벌 완구회사도 자체 IP를 활용해 수백 가지 완구를 쏟아내고 있다. 팬덤형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는 캐릭터 개발 등 자체 IP 확보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자리매김하는 추세다.
오로라·손오공 '희비'…완구업 판도 가른 IP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대표 완구업체 손오공의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25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2% 줄었다. 영업적자는 같은 기간 1.5배 불어난 89억원이다. 오로라월드의 3분기 누적 매출은 203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6% 올랐다. 콘텐츠회사 SAMG엔터도 같은 기간 매출이 606억원에서 746억원으로 23.1% 늘어났다.

업계에선 자체 IP가 실적 희비를 갈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상 완구업체는 콘텐츠회사와 협업해 IP를 만든 뒤 관련 제품을 선보여왔다. 5~6년 전부터 콘텐츠회사들이 IP를 내세워 자체 제품 제작 및 유통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자 기존 완구업체들은 생존 기로에서 차례차례 사업 전략을 수정했다.

손오공은 IP를 전담하던 초이락컨텐츠컴퍼니가 2021년 분사한 뒤 글로벌 완구 제품을 국내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개편했다. 지난 5월부터 어린이 애니메이션 개비의 매직하우스 완구를 국내에 공식 납품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올 상반기 선보인 스퀴시멜로우 인형, 미니벌스 피규어도 각각 글로벌 완구기업인 재즈웨어와 MGA엔터테인먼트가 제작했다.

오로라월드는 자체 IP 역량을 강화하는 데 적극 나섰다. 2021년 폐페트병을 재활용한 원단을 사용한 브랜드 에코네이션을 선보인 게 대표적이다. 지난 5월 네임엑스엔터테인먼트와 버추얼 아이돌을 선보인 데 이어 6월 프리미엄 유아용품 브랜드 메리메이어를 인수해 신규 IP를 확보했다.

지난해 자체 완구 유통망을 구축한 SAMG엔터의 상황도 비슷하다. SAMG엔터 관계자는 “자체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이 열풍을 일으켜 관련 의류제품의 재고를 터는 등 재무 개선이 이어졌다”며 “4분기 흑자 전환이 유력해 임직원 모두 IP의 힘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실적 격차는 4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완구업계 관계자는 “수십억원을 들여 개발한 IP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막대한 손해로 돌아오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사양산업으로 평가받는 완구산업에서 자체 IP 없이 고객층을 다변화하며 실적을 개선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자체 IP 확보는 세계적인 추세다. 중국 완구회사 팝마트는 올해 자체 IP 130개를 활용한 키덜트(키즈+어덜트) 완구를 선보이며 국내에서 매장 여덟 곳을 운영하고 있다. 덴마크 완구기업 레고는 프렌즈, 닌자고 시리즈 등 내년 1월 자체 IP를 활용한 신제품 60여 종을 출시할 예정이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