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림 서울대 총장이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서울대 위기의 원인 분석과 개혁 방향성은 적확하고 타당하다. 유 총장은 서울대의 그간 교육 방식이 패스트 팔로어를 키워내는 가성비 좋은 교육이라고 했다. 규격화된 인재를 대량 생산해 산업화 시대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복합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 인재, 곧 퍼스트 무버를 키워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10년 정도 치열한 혁신과 투자를 통해 글로벌 톱10 대학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유 총장의 인터뷰 내용 중 가장 주목되는 표현은 대학에 대한 ‘최대 투자, 최소 규제론’이다. 그는 기업이 대학의 커리큘럼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대신 교육부는 학생 선발 등의 규제에서 손을 떼고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총장이 최대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은 이미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LG그룹은 정식 석·박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사내 대학원 ‘LG AI 대학원’을 내년 9월 개원한다고 한다. 사내 대학은 세계적으로도 여러 곳 있지만, 석·박사 학위를 주는 사내 대학원은 세계 최초다. 20년 가까이 현장에서 인공지능(AI)을 연구한 사내 전문가들이 기업이 보유한 고가 실험·생산 장비를 활용해 즉시 전력감의 고급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취지다. 유 총장이 지적한 것처럼 “대학을 나온 신입사원을 처음부터 재교육해야 한다는 기업들의 불만”이 켜켜이 쌓인 후과다.

정쟁으로 날밤을 새우는 여야 의원들조차 고등교육의 혁신을 위해선 손을 맞잡은 상황이다. 여야 의원 30명이 지난달 공동 발의한 고등교육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다. 대학에 대한 교육부 장관의 포괄적 지도·감독권을 대폭 축소하고 대학 자율의 핵심인 학사 운영과 관련된 사항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게 골자다.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인력 양성을 위해선 교육계의 환골탈태가 절실하다. 대학 교육의 최대 수요자인 기업은 대학이 못 미더워 대학원까지 자체 운영할 태세다.

이제 대학이 스스로 보여줄 때다. 서울대의 혁신을 주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