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최초 전기차 꿈꾸는 빈 살만
전기차 기업 씨어(Ceer)는 아랍어로 ‘전진하다’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파생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빈 살만이 사우디 국부펀드(PIF)를 활용해 애플 휴대전화를 위탁 생산해주는 대만의 폭스콘과 손잡고 2022년 세웠다. 씨어는 내년까지 전기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출시해 중동 지역의 자체 브랜드로 육성할 계획이다. 아직 실물이 공개된 바는 없다.

씨어는 최근 현대자동차가 투자한 크로아티아의 고성능 전기차 기업 리막과 손잡고 전기 구동 시스템(EDS) 도입을 결정했다. 최고급 전기차에 리막의 구동 시스템을 적용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전기차 기술을 단숨에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BMW도 씨어의 파트너다. 씨어 창립 초기부터 고전압 배터리 시스템 공급자로 참여했다.

현대트랜시스는 배터리가 모터에 전달하는 전력을 조절해 차의 속도를 제어하는 감속기를 공급하기로 했다. 지멘스도 씨어와 협력하고 있다.

씨어는 제아무리 돈이 많아도 부품 공급망이 없으면 대량 생산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영입한 인물이 제임스 델루카 최고경영자(CEO)다. 델루카 CEO는 베트남 전기차기업 빈패스트의 초대 CEO였다. 2년 전부터 자리를 옮겨 씨어를 맡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델루카 CEO가 한국에서 낯익다는 사실이다. 2008년 GM대우 시절 품질부문 부사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 이를 기반으로 2016년에는 GM 글로벌 생산부문 총괄 부사장에 올랐다. 한국 내 군산공장 생산 물량 유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훗날 군산공장은 매각됐지만 한국 내 정서를 비교적 잘 아는 인물로 통한다.

무엇보다 델루카 CEO의 장점은 생산이다. 대량 생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조달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부품 경쟁력에 대해 신뢰를 보낸다. 국내 부품 기업의 사우디아라비아 진출을 적극 희망하는 것도 씨어의 부품 공급망 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가 전기차 개발 및 생산 과정에 투자하는 모든 비용은 아이러니하게 기름을 팔아 충당한다. 세계 연기금·국부펀드 연구기관인 글로벌SWF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사우디 국부펀드(PIF) 투자액은 40조8000억원이다. 세계 국부펀드 투자액의 25%에 해당한다.

펀드 조성에 필요한 돈은 기름 판매로 충당된다. 미국이 내연기관 시대 지속을 선언하니 내심 반가운 눈치다. 새로운 산업 육성에 필요한 비용 조달이 한결 쉬워졌기 때문이다. 내연기관 시대의 연장은 전기차 신산업을 육성하려는 사우디에게 일종의 자금줄이자 신산업 육성 시간을 벌어주는 효과를 나타낸다. 모든 나라가 친환경으로 돌아서 기름 수요가 감소할 때까지 최대한 전기차 산업 경쟁력을 완성하려는 게 이들의 목표다.

요즘 중동 지역이 전기차 기회의 땅으로 떠오른다. 유럽과 미국 진출에 장벽이 생기자 한국을 비롯해 중국, 미국 기업들도 앞다퉈 중동 지역에 전기차를 쏟아낸다.

중동 최초 전기차 꿈꾸는 빈 살만
그리고 중심 국가로 사우디의 역할 비중은 상당히 높다. 기름 판매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면서 정작 자동차는 전기차로 바꾸려는 형국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기름 판매는 더욱 늘어야 한다. 그래야 산업 전환 경쟁력이 올라간다. 기름 팔면서 전기차를 보급하는 모습이 어색하지만 그것 또한 생존기법일 뿐이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