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특별자치시 중증장애인 예술단 어울림 단원들. 왼쪽 뒤 길준성, 박종환, 서현덕, 백나경 단원, 왼쪽 앞 이지원, 김수진, 김슬기 단원. / 사진=교육부
세종특별자치시 중증장애인 예술단 어울림 단원들. 왼쪽 뒤 길준성, 박종환, 서현덕, 백나경 단원, 왼쪽 앞 이지원, 김수진, 김슬기 단원. / 사진=교육부
2020년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장애예술인의 창작 환경을 개선하고 자립을 돕기 위한 정책적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특히 '고용'을 통한 안정적인 창작 지원과 장애예술인의 사회적 자립을 촉진하는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이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민관 협력을 통해 다양한 고용 지원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이에 장애예술인들을 고용하는 고용 주체의 수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장애예술인의 가능성을 믿고 이들과 함께하기로 결심한 이들은 어떤 계기로 동행을 선택한 걸까. [편집자주]

중증장애인이 숨겨진 예술적 재능을 발견해 촉망받는 예술인의 길을 걷게 되는 이야기. 우리는 영화에서 종종 이런 시나리오를 접하곤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영화는 영화일 뿐, 장애인들에게 예술은 사치나 다름없다. 특히 물질적 뒷받침을 기대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더없이 예민한 손끝을 타고났어도, 마늘 까는 공장에 투입될 수밖에 없는 게 작금의 한국의 현실이다.

과거 특수교육 일선 현장에서 이처럼 장애예술인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장면을 목도한 특수교사는 '국공립 장애인 예술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특수교사는 장학사 시험에 합격해 훗날 교육청에 들어와, 테이블 위에 장애인 예술단 창단을 위한 청사진을 올려놓았다. 그렇게 '전국 시도교육청 최초' 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이하 세종시교육청)의 중증장애인 예술단 '어울림'이 탄생했다.

2022년 3월 창단된 어울림은 현재 7명의 단원이 합을 맞추고 있다. 모두 성인 발달 장애인으로, 지적장애 3명과 자폐성 장애 4명으로 구성됐다. 눈에 띄는 점은 세종시교육청이 전국 시도교육청 최초로 중증장애인인 이들을 직접 고용했다는 것. 단원들은 매일 출근해 '연주' 노동을 하고, 월급도 받는다. 장애예술인 고용의 새로운 모델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왜 이것도 못해"라는 사회의 날카로운 시선을 버텨왔던 장애예술인들은 어울림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신감을 되찾고 있다고 한다. 한경닷컴은 특수교사로 근무하다 지금은 세종시교육청에서 어울림을 이끄는 유초등교육과 특수교육담당 도경만 장학관과 지난 22일 세종 모처에서 만나, 장애예술계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도경만 세종시교육청 유초등교육과 특수교육담당 장학관 / 사진=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도경만 세종시교육청 유초등교육과 특수교육담당 장학관 / 사진=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Q. 어울림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세종시교육청 중증장애인 예술단 어울림은 중증장애 중에서도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가진 단원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어울림, 서양 음악을 공부한 단원들과 동양의 한국 음악을 공부한 단원들 간의 어울림이라는 넓은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

Q. 어울림을 만든 계기가 무엇인가요?

"과거 시골의 한 특수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할 때 학생들에게 사물놀이를 지도한 적이 있다. 학생들을 데리고 한 대회에 참가했는데, 같은 대회에서 수상했던 팀들은 공공이 아닌 민간의 사회적 협동조합 개념으로 장애예술인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형태였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시설에서 지내 뒷받침이 없었다. 이에 '공공 차원의 예술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크게 들었던 기억에 시도하게 됐다."

Q. 교육청에서 장애인을 직접 고용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장애인 예술단 사업 구체화 과정에서 '장애인을 평생 무기 계약이나 교육공무직으로 채용하는 게 가능하냐',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으면 어떠냐'는 의문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안정적인 문화예술 직업 모델을 만들 수 없다고 지속해서 주장했다.

지적 장애인이나 자폐성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기관의 일자리들은 통상 근무기간이 1년이 채 안 되는 11개월 또는 노동관계법에 저촉하지 않는 형태의 계약직이나 인턴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채용하지 않고 다른 장애인으로 대체하는 형식이다 보니, 지적 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들의 '안정적인 일자리'라는 자체가 사실상 전무하다.

교육청 산하뿐만 아니라, 국공립 장애인 예술단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장애인 의무 고용을 지금보다 확대한다면, 장애예술인들이 꿈을 더 크게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어울림에서 국악을 하는 이지원 단원의 꿈은 국립국악원의 단원이 되는 것이다."
도경만 세종시교육청 유초등교육과 특수교육담당 장학관 / 사진=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도경만 세종시교육청 유초등교육과 특수교육담당 장학관 / 사진=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Q. 단원들의 만족도가 높을 것 같은데요.

"비장애인들은 음악을 좋아하면 직업 예술인으로 나갈 기회가 충분히 열려 있지만, 장애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7명의 단원 중 4명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과는 거리가 먼 단순 조립 공장이나, 마늘 까는 공장 등 같은 곳에서 일했었다. 그러나 어울림이 만들어지고 어울림 단원이 된 뒤부터 자신감을 찾고 있다.

일례로 일본 도쿄에 있는 한국학교에 공연에 간 적이 있다. 이때 공연을 마친 단원들이 관객으로부터 사인과 사진 촬영 요청을 받았다. 단원들 앞에 30명씩 줄이 섰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각자 사인했다고 자랑하는 단원들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목격했다.

'왜 이것도 못 하냐'는 말 때문에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실패 경험만 쌓였던 친구들이다. 자존감이 낮아져 있던 이들이 어울림 활동을 하면서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본다."

Q. 관내 유·초·중·고 등에서 공연을 통해 장애 인식 개선에 힘쓰고 있습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장애인은 낯설 수도 있을 텐데, 공연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관객 취향을 고려한 음악을 준비해 공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들은 '떼창'을 할 수 있게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경우 케이팝을 중심으로 준비해 학생들이 함께 춤을 추는 틀로 공연을 짠다.

총 공연 시간이 40분이라면 30분 연주를 제외한 10분 정도는 단원들이 직접 자기가 갖고 있는 장애에 대한 특성을 설명하는 시간 '장애인식 개선 퀴즈'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학생들의 질문을 사전에 받아서 단원들이 직접 답변해주는 방식이다.

갑자기 돌아다니거나, 소리를 지르는 행동을 보이는 지적 장애인들도 이렇게 직업 예술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다는 실제 사례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애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인다는 효과가 있다.
2024년 5월 22일 세종도원초등학교에서 4~6 학년 학생 약 35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문화예술 공연을 마치고 마무리 인사말을 하는 모습. / 사진=교육부
2024년 5월 22일 세종도원초등학교에서 4~6 학년 학생 약 35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문화예술 공연을 마치고 마무리 인사말을 하는 모습. / 사진=교육부
Q. 어울림을 이끄는 데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비장애인 오케스트라는 약 40~50명으로 이뤄진다. 어울림은 '예술단'을 표방하고 있지만, 과연 예술단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규모로 키워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2026년까지 현재 7명에서 13명으로 어울림 규모를 키우는 계획은 세웠지만, 그 이후에 계속 확대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또 각 단원의 실력 향상을 위해 지금처럼 현장 특수교사 출신이 아닌 전문 음악 지도자의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는 전문 지도자들이 교육청 직원의 개념이 아니라 시간 강사 형태로 있다. 이들을 교육청이 직원으로 채용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 이는 남겨진 과제다.

선진국 장애인 복지 시스템 가운데 독일에서는 장애예술인들이 누워서 버튼만 눌러도 이 자체를 하나의 음악, 예술로 바라보고, 노동으로 인정해 최저임금을 준다. 한국에서도 예술을 잘하든 못하든, 예술적 행위 자체를 노동으로 인정받는 시스템이 장애인 복지라는 측면에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는 장애예술인의 안정적인 문화예술활동과 삶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양질의 예술 일자리를 보급 및 확산할 수 있도록 예술직무 훈련 및 직업예술단 창단 지원을 위한 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해당 사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사진=유채영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