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심판을 발칵 뒤집은 나파밸리의 보석, 프리마크 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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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년 역사의 '프리마크 아비' 시음회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프리미엄 라인
견고한 구성감 속에 돋보이는
강렬한 산미와 타닌향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프리미엄 라인
견고한 구성감 속에 돋보이는
강렬한 산미와 타닌향
와인의 역사는 1976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회가 분기점이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이 레드·화이트 양쪽에서 프랑스 와인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는 이변이 일어난 것. 와인의 절대 강자 프랑스가 '언더독'에 의해 무너진 이 사건은 '파리의 심판'으로 보도되며 세계 와인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이날 대회에서 평론가들이 눈여겨본 와이너리는 따로 있었다. 출전한 와이너리 중 유일하게 레드·화이트 두 부문 모두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프리마크 아비'다. 나파 밸리 와인 특유의 잘 익은 과일 향과 여러 층에 걸친 타닌 향은 물론, 오랜 숙성으로 인한 견고한 밸런스까지 장착한 브랜드다. 현재 미국의 와인 기업 잭슨패밀리와인(JFW)이 소유하고 있다.
21일 서울 잠원동 WSA와인아카데미에서 열린 'JFW 마스터클래스'에서 만난 프리마크 아비는 '파리의 심판' 결과가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줬다. 마스터 소믈리에 드미트리 메나르의 소개로 만난 '카베르네 소비뇽' '보쉐' '시캐모어' 등 레드 와인 3종과 '샤르도네'(화이트 와인)는 강렬한 향미와 안정감을 두루 소화하면서 팔방미인의 면모를 뽐냈다. "가장 우아한 나파 밸리 와인"
나파 밸리에는 미국 최대의 와인 생산지인 캘리포니아에서도 최상급 와이너리가 몰려 있다. 나파 밸리의 와인 생산량은 캘리포니아 지역의 4%에 불과하지만, 매출액을 놓고 보면 25%에 달한다. 그만큼 개별 포도원의 값어치가 높다는 얘기다. 메나르는 "세계적인 프리미엄 와인 생산지를 꼽자면 한 곳은 프랑스의 샹파뉴, 그다음으로 나파 밸리를 꼽을만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나파 밸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와이너리 중 한 곳이 프리마크 아비다. 미국 최초의 여성 와인 메이커로 기록된 조세핀 티치슨이 1886년 설립했다. 결핵을 앓았던 남편의 요양차 방문한 캘리포니아에서 와이너리를 세운 것. 불행히도 그의 남편은 이주하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고, 홀로 남은 티치슨이 '레드우드 와이너리'라는 이름으로 와인 사업을 시작했다. 삼나무(redwood)가 유난히 많았던 주변 지형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30년대 후반부터다. 금주령이 폐지되자 미국의 양조자들이 캘리포니아로 모여들었다. 서쪽의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동쪽 사막지대의 건조한 기후가 만나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 이때 티치슨의 양조장을 인수한 찰스 프리먼, 마르캉드 포스터, 앨버트 애비 애런 세 사람의 이름을 따 프리마크 아비가 됐다.
'가장 우아한 나파 밸리 와인'은 프리마크 아비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강렬한 타닌감(떫은 정도)과 풍부한 바디감으로 대표되는 나파 밸리 와인의 전형과는 다른 은은한 밸런스를 보이기 때문이다. 1985년 이후 40여년간 양조를 책임져온 테드 에드워즈의 영향이 컸다. 저지대의 건조한 와이너리와 언덕 지역의 서늘한 와이너리 등 다양한 산지의 와인을 배합하는 방식으로 지금의 균형 잡힌 스타일에 이르렀다. 밸런스 중에도 각양각색, 3종 3색 매력
이날 시음회는 화이트 와인 '프리마크 아비 샤르도네 2022'로 시작했다. 점토질과 석회질 등 다양한 토양에서 재배한 세 종류의 와인을 배합한 만큼 안정적인 풍미가 돋보였다. 처음 입에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부드러운 질감은 목 넘김 이후 상큼한 뒷맛으로 이어졌다. 메나르는 "젖산 발효를 거친 와인과 거치지 않은 와인을 섞었다"며 "버터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신선한 맛을 연출하기 위한 최적의 비율을 모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리마크 아비의 레드 와인을 대표하는 '카베르네 소비뇽'은 균형감의 정수를 보여줬다. 알맹이가 크고 껍질이 얇은 저지대 포도원과 떫은맛이 강한 고지대 품종을 배합한 결과다. 전반적으로 달콤한 베리 향이 감도는 가운데 초콜릿과 삼나무, 약간의 담배 향이 뒤따랐다. 2년 이상의 비교적 긴 숙성기간을 거친 것은 덤. 2013년 빈티지 와인의 경우 지금이 최적의 개봉 시기로 느껴질 정도로 알맞은 숙성 상태를 보였다. '보쉐' 시리즈는 프리마크 아비 와인 중에서도 흙냄새가 가장 돋보이는 제품이다. 나파 밸리의 러더포드 언덕에 있는 포도원 '보쉐'에서 전량 생산하기에 붙은 이름이다. 자갈과 점토질이 풍부한 대지에서 비롯한 와인으로, 진한 루비 빛이 감도는 색상과 흙의 미네랄 감이 가득한 풍미가 특징이다.
숙성 잠재력이 높은 만큼 다양한 맛을 연출한다. 일관성 측면에선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 2002년과 2019년 제품을 비교해서 시음했는데, 같은 레이블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맛에서 확연한 차이가 났다. 매캐한 훈연향을 찾는다면 2002년 빈티지를, 기름진 음식과 곁들일 산미를 기대한다면 2019년이 적합하다. 가장 산미가 강했던 시리즈는 '시캐모어'다. 주변에서 물을 길어오지 않는 등 건식 요법을 고수하는 시캐모어 포도원에서 전량 생산한 와인이다. 약 30개월간 오크 숙성을 거치면서 탄생한 흙내음이 신맛의 균형을 잡아준다. 다른 시리즈와는 달리 노르스름한 황금빛이 돋보인다. 스테이크나 훈제 오리, 진한 치즈 등과 곁들이기 좋다.
프리마크 아비가 자랑하는 균형감과는 약간의 거리를 둔 시리즈다. 이날 1995년 빈티지와 2002년, 2019년 등 세 종류의 시캐모어를 시음했는데, 일부 제품의 산미와 바디감은 예상치를 벗어났다. 취향에 따라서는 숙성이 다소 과하다고 느낄 수 있겠다. 코끝까지 올라오는 톡 쏘는 향과 약간의 떫은 뒷맛을 기대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일 것이다. 안시욱 기자
이날 대회에서 평론가들이 눈여겨본 와이너리는 따로 있었다. 출전한 와이너리 중 유일하게 레드·화이트 두 부문 모두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프리마크 아비'다. 나파 밸리 와인 특유의 잘 익은 과일 향과 여러 층에 걸친 타닌 향은 물론, 오랜 숙성으로 인한 견고한 밸런스까지 장착한 브랜드다. 현재 미국의 와인 기업 잭슨패밀리와인(JFW)이 소유하고 있다.
21일 서울 잠원동 WSA와인아카데미에서 열린 'JFW 마스터클래스'에서 만난 프리마크 아비는 '파리의 심판' 결과가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줬다. 마스터 소믈리에 드미트리 메나르의 소개로 만난 '카베르네 소비뇽' '보쉐' '시캐모어' 등 레드 와인 3종과 '샤르도네'(화이트 와인)는 강렬한 향미와 안정감을 두루 소화하면서 팔방미인의 면모를 뽐냈다. "가장 우아한 나파 밸리 와인"
나파 밸리에는 미국 최대의 와인 생산지인 캘리포니아에서도 최상급 와이너리가 몰려 있다. 나파 밸리의 와인 생산량은 캘리포니아 지역의 4%에 불과하지만, 매출액을 놓고 보면 25%에 달한다. 그만큼 개별 포도원의 값어치가 높다는 얘기다. 메나르는 "세계적인 프리미엄 와인 생산지를 꼽자면 한 곳은 프랑스의 샹파뉴, 그다음으로 나파 밸리를 꼽을만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나파 밸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와이너리 중 한 곳이 프리마크 아비다. 미국 최초의 여성 와인 메이커로 기록된 조세핀 티치슨이 1886년 설립했다. 결핵을 앓았던 남편의 요양차 방문한 캘리포니아에서 와이너리를 세운 것. 불행히도 그의 남편은 이주하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고, 홀로 남은 티치슨이 '레드우드 와이너리'라는 이름으로 와인 사업을 시작했다. 삼나무(redwood)가 유난히 많았던 주변 지형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30년대 후반부터다. 금주령이 폐지되자 미국의 양조자들이 캘리포니아로 모여들었다. 서쪽의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동쪽 사막지대의 건조한 기후가 만나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 이때 티치슨의 양조장을 인수한 찰스 프리먼, 마르캉드 포스터, 앨버트 애비 애런 세 사람의 이름을 따 프리마크 아비가 됐다.
'가장 우아한 나파 밸리 와인'은 프리마크 아비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강렬한 타닌감(떫은 정도)과 풍부한 바디감으로 대표되는 나파 밸리 와인의 전형과는 다른 은은한 밸런스를 보이기 때문이다. 1985년 이후 40여년간 양조를 책임져온 테드 에드워즈의 영향이 컸다. 저지대의 건조한 와이너리와 언덕 지역의 서늘한 와이너리 등 다양한 산지의 와인을 배합하는 방식으로 지금의 균형 잡힌 스타일에 이르렀다. 밸런스 중에도 각양각색, 3종 3색 매력
이날 시음회는 화이트 와인 '프리마크 아비 샤르도네 2022'로 시작했다. 점토질과 석회질 등 다양한 토양에서 재배한 세 종류의 와인을 배합한 만큼 안정적인 풍미가 돋보였다. 처음 입에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부드러운 질감은 목 넘김 이후 상큼한 뒷맛으로 이어졌다. 메나르는 "젖산 발효를 거친 와인과 거치지 않은 와인을 섞었다"며 "버터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신선한 맛을 연출하기 위한 최적의 비율을 모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리마크 아비의 레드 와인을 대표하는 '카베르네 소비뇽'은 균형감의 정수를 보여줬다. 알맹이가 크고 껍질이 얇은 저지대 포도원과 떫은맛이 강한 고지대 품종을 배합한 결과다. 전반적으로 달콤한 베리 향이 감도는 가운데 초콜릿과 삼나무, 약간의 담배 향이 뒤따랐다. 2년 이상의 비교적 긴 숙성기간을 거친 것은 덤. 2013년 빈티지 와인의 경우 지금이 최적의 개봉 시기로 느껴질 정도로 알맞은 숙성 상태를 보였다. '보쉐' 시리즈는 프리마크 아비 와인 중에서도 흙냄새가 가장 돋보이는 제품이다. 나파 밸리의 러더포드 언덕에 있는 포도원 '보쉐'에서 전량 생산하기에 붙은 이름이다. 자갈과 점토질이 풍부한 대지에서 비롯한 와인으로, 진한 루비 빛이 감도는 색상과 흙의 미네랄 감이 가득한 풍미가 특징이다.
숙성 잠재력이 높은 만큼 다양한 맛을 연출한다. 일관성 측면에선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 2002년과 2019년 제품을 비교해서 시음했는데, 같은 레이블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맛에서 확연한 차이가 났다. 매캐한 훈연향을 찾는다면 2002년 빈티지를, 기름진 음식과 곁들일 산미를 기대한다면 2019년이 적합하다. 가장 산미가 강했던 시리즈는 '시캐모어'다. 주변에서 물을 길어오지 않는 등 건식 요법을 고수하는 시캐모어 포도원에서 전량 생산한 와인이다. 약 30개월간 오크 숙성을 거치면서 탄생한 흙내음이 신맛의 균형을 잡아준다. 다른 시리즈와는 달리 노르스름한 황금빛이 돋보인다. 스테이크나 훈제 오리, 진한 치즈 등과 곁들이기 좋다.
프리마크 아비가 자랑하는 균형감과는 약간의 거리를 둔 시리즈다. 이날 1995년 빈티지와 2002년, 2019년 등 세 종류의 시캐모어를 시음했는데, 일부 제품의 산미와 바디감은 예상치를 벗어났다. 취향에 따라서는 숙성이 다소 과하다고 느낄 수 있겠다. 코끝까지 올라오는 톡 쏘는 향과 약간의 떫은 뒷맛을 기대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일 것이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