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램시마'가 남긴 것들
연매출 1조원이 넘는 의약품은 전 세계를 통틀어 150개 남짓이다. 대부분 미국 유럽 등 제약 강국의 빅파마가 보유하고 있다. 드디어 한국에서도 연매출 1조원의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나왔다.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램시마’가 주인공이다. 우리 제약·바이오산업에는 기념비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램시마는 존슨앤드존슨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다. 류머티즘 관절염, 염증성 장질환 같은 질환에 쓰는 약이다. 3분기 누적 매출은 9797억원으로, 올 매출은 1조2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램시마가 주목받는 것은 한국 제약·바이오 역사상 첫 연매출 1조원 돌파라는 기록적 의미에만 있지 않다. 신약이 아니라 복제약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성공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기업가정신이 일군 블록버스터

회사가 꼽는 램시마의 성공 비결은 남들보다 빨리 고품질의 제품을 내놓은 전략이다. 램시마를 출시한 2013년에는 바이오시밀러 시장 자체가 없었다. 게다가 수백만원에 달하는 항체 신약에 재정적 부담을 느낀 환자나 정부, 보험사에는 램시마가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오리지널과 효능이 똑같은데도 가격은 30% 이상 낮았기 때문이다. 수요가 폭발하면서 램시마는 출시 5년 만에 오리지널약인 레미케이드의 점유율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해석이다. 당시 국내에는 관련 기술도 없었고, 전문 인력도 없었다. 아마도 서정진 회장이 무모할 정도로 사업을 밀어붙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램시마는 없을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서 회장이 바이오 전공자가 아니어서 가능했던 일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신약은 흔히 도박에 비유되곤 한다.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은 5%도 안되고, 허가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는 보장이 없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운도 크게 작용하는 게 제약·바이오산업의 특성이다. 램시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품력도 제품력이지만 시장 수요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행운도 뒤따랐다.

제2, 제3의 램시마 나오려면

이제 관심은 램시마의 성공을 잇는 일이다. 세계 150위권 의약품이 여럿 나와야 한국이 제대로 제약·바이오 강국 대접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탄식만 나온다. 어렵사리 쌓아온 국내 바이오 생태계가 최근 빠르게 붕괴되고 있어서다. 뜨거웠던 바이오 창업 열기도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렸다. 돈이 돌지 않아서다. 바이오 상장 문턱이 높아지면서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진 투자자들은 지갑을 닫았다. 바이오 선순환 구조가 끊어진 것이다.

대통령 직속 바이오위원회가 다음달 출범한다. 그동안 정권마다 바이오 육성을 외쳤지만 그다지 달라진 건 없다. 바이오 연구개발(R&D) 예산 증액 같은 틀에 박힌 지원책을 내놓는 게 고작이었다. 바이오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 이런 대책은 무용지물에 가깝다. 산업 생태계를 재건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은 돈맥경화를 푸는 일부터 서둘러야 한다. 신약 개발을 하다 보면 10년 넘게 적자를 내기 일쑤인 산업 특성이 반영된 제도 개선이 다방면에서 이뤄져야 한다. 제2, 제3의 램시마가 나올 수 있는 환경과 제도의 뒷받침 없이 바이오 강국 구호는 공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