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이 백화점을 제치고 오프라인 유통업태 가운데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담배 가게’로 불리던 편의점은 최신 트렌드 상품을 빠르게 반영하는 ‘트렌드세터’ 역할을 하며 MZ세대의 놀이터로 역할을 재정의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편의점 수가 단기간 크게 늘어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점포당 매출 증가세도 둔화하고 있어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고물가에 가격 낮춘 편의점…백화점 매출도 제쳤다

대형마트 이어 백화점도 제쳐

2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편의점이 국내 유통업계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8%로 백화점(17.2%)을 앞섰다. 올 들어 10월까지 편의점의 누적 매출은 25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 기간 백화점 매출(약 25조4000억원)을 웃돌았다.

편의점이 여름에 한두 달 반짝 백화점 매출을 앞선 적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6개월 이상 꾸준히 백화점 매출을 넘긴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원래 오프라인 유통의 업태별 매출 순위는 ‘백화점>대형마트>편의점’ 순이었다.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때 근거리 쇼핑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편의점이 대형마트를 앞질렀고, 올 들어선 백화점마저 넘어섰다.

편의점이 오프라인 유통의 ‘제왕’에 오른 것은 무엇보다 상품 경쟁력이 커진 영향이다. 7~8년 전만 해도 편의점에서 담배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50%를 넘겼다. 소비자들은 담배 가게 혹은 담배 사러 갔다가 간단한 먹을 거리를 사는 곳 정도로 편의점을 여겼다.

지금은 아니다. 시중에서 가장 유행하는 상품들의 경연장이 됐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인기를 끌자 편의점은 앞다퉈 관련 상품을 출시했다. 지난달 출시된 CU의 ‘밤 티라미수’는 한 달여 만에 200만 개 넘게 팔렸다. 두바이 초콜릿이 화제가 되자 대량 판매에 나선 것도 편의점이 처음이었다. 편의점이 트렌드 분석부터 상품 출시까지 걸리는 기간은 통상 3주 안팎에 불과하다. 식품업계에선 최소 세 달이 소요되는 것을 편의점이 크게 단축했다. 현재 편의점의 담배 매출 비중은 30%대다. 식품 매출 판매가 크게 증가한 영향이다.

편의점은 비싸다는 이미지도 깨

편의점이 가격 경쟁력을 높인 것도 매출을 늘린 요인이다. ‘편의점은 비싸다’는 편견을 깨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편의점 상품 가운데 가성비가 가장 좋은 상품으로 도시락이 꼽힌다. 외식물가 상승으로 식당에 가는 게 부담스러워진 소비자들은 편의점 도시락을 ‘대체재’로 여겼다. 편의점은 2000~3000원짜리 저렴한 도시락부터 1만원 안팎의 프리미엄 도시락까지 구색을 다양화해 이 같은 수요를 빨아들였다. 최근 도시락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편의점 왕국’인 일본에 비해서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도시락뿐만이 아니다. 일반 상품 대비 20~30% 저렴한 편의점 자체브랜드(PB) 상품도 빠르게 확장 중이다. 이런 편의점 PB 상품은 기존 과자, 라면 위주에서 최근엔 계란, 고기, 두부, 콩나물 같은 장보기 상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중간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제조사, 농가와 직접 거래해 대형마트와 비교해도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비슷비슷한 매장 일색에서 벗어나 매장 유형을 다양화한 것도 주효했다. 편의점은 최근 ‘특화 매장’ 경쟁에 나서고 있다. MZ세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상권에 이런 특화 매장을 집중 배치하고 있다. 시중의 다양한 라면을 직접 끓여 먹는 CU ‘라면 라이브러리’, 야구·축구 등 스포츠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GS25 스포츠 특화 매장, 편의점에서 잘 팔지 않는 화장품과 옷 등을 내세운 세븐일레븐의 패션·뷰티 특화 매장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편의점에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10여 년 편의점 간 출점 경쟁이 벌어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편의점 매장 수 증가세는 매년 둔화되고 있다. GS25·CU·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상위 3사의 지난해 순증 매장 수는 3177개에 이르렀으나 올 들어선 10월 말까지 1311개에 그친다.

라현진/황정환 기자 raral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