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곡의 현대사를 사진으로 기록한 '찰나의 승부사' 19명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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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승부사
한국보도사진가협회 지음
페이퍼앤북
216쪽|2만8000원
한국보도사진가협회 지음
페이퍼앤북
216쪽|2만8000원
"'탕, 탕, 탕' 페퍼포그는 물론 전경들이 최루탄 직격탄을 쏘기 시작했어… 경찰의 최루탄 발사로 교내로 달아나는 학생 중 한 학생이 손을 뒷머리에 올리다가 푹 쓰러지는 걸 목격하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지."
여든이 넘은 사진가 정태원이 37년이 넘게 지난 1987년의 여름을 떠올리며 말한다. 비슷하게 머리가 희끗희끗한 후배 사진기자 김연수가 이를 받아 적는다. 이날 카메라 필름에 남은 건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던 이한열 열사의 마지막 모습. 교과서부터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반복해서 인용되는 기념비적인 사진의 탄생 순간에 관한 생생한 증언이 이어진다. <찰나의 승부사>는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들을 포착해온 사진기자들을 후배들이 찾아 나눈 대담을 엮은 책이다. 전 로이터 사진기자 정태원을 비롯해 이의택, 임희순, 황종건 등 19명의 '찰나의 승부사'들이 당시의 시대상과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보도사진가협회의 사진기자 6명이 인터뷰어를 자처해 선배들의 행적을 기록했다.
한국 현대사의 현장에는 항상 사진가들이 있었다. 카메라는 불의에 저항하는 수단이자 사라져가는 사회의 단면을 기록하는 창구였다. 지금처럼 영상과 사진이 왕성하게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기억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격동의 현장들을 모아놓은 다큐멘터리 같은 책이다. 공수부대원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젊은이의 사진이 그중 하나다. 1980년 5월 19일 나경택 기자가 광주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나 기자는 "당국의 검열로 기사 한 줄 나가지 못했던 시절"이라며 "몇몇 선배들과 은밀히 상의해 사진을 해외로 전송했다"고 술회한다. 결국 그의 사진이 외신에 보도되며 외국 기자들이 광주에 들어와 취재하는 계기가 됐다.
굵직한 '특종'을 연달아 터뜨린 배경에는 순발력과 운, 무엇보다 땀 흘리며 발로 뛴 노력이 있었다. 임희순 기자는 총탄이 빗발치는 순간에도 육영수 여사의 피격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동상까지 걸려 가면서 '50년 만의 영동 대폭설'을 보도한 이봉섭 기자는 "노력해 찍은 사진이 신문에 실리는 기쁨만 보고 열심히 뛰었다"고 말했다.
업적만 나열한 위인전 성격의 책은 아니다. 기자이기 이전 가장이자 한 사람으로서 겪은 인간적인 고뇌도 담았다. 윤석봉 기자는 1974년 정부를 상대로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참가했다가 해직됐다. 8명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단다. 현장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취재한 황종건 기자는 "트라우마로 인해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며 그날의 취재 수첩을 담담히 보여줬다.
구순을 앞둔 이들은 아직도 사진작가로 남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여전히 현장에서 사진을 찍거나, 머리맡에 카메라를 두고 잘 정도다. 송영학 기자는 후배들한테 이렇게 조언한다. "기록이라는 사진의 역사성은 영원히 유지돼야 할 것 같아."
안시욱 기자
여든이 넘은 사진가 정태원이 37년이 넘게 지난 1987년의 여름을 떠올리며 말한다. 비슷하게 머리가 희끗희끗한 후배 사진기자 김연수가 이를 받아 적는다. 이날 카메라 필름에 남은 건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던 이한열 열사의 마지막 모습. 교과서부터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반복해서 인용되는 기념비적인 사진의 탄생 순간에 관한 생생한 증언이 이어진다. <찰나의 승부사>는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들을 포착해온 사진기자들을 후배들이 찾아 나눈 대담을 엮은 책이다. 전 로이터 사진기자 정태원을 비롯해 이의택, 임희순, 황종건 등 19명의 '찰나의 승부사'들이 당시의 시대상과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보도사진가협회의 사진기자 6명이 인터뷰어를 자처해 선배들의 행적을 기록했다.
한국 현대사의 현장에는 항상 사진가들이 있었다. 카메라는 불의에 저항하는 수단이자 사라져가는 사회의 단면을 기록하는 창구였다. 지금처럼 영상과 사진이 왕성하게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기억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격동의 현장들을 모아놓은 다큐멘터리 같은 책이다. 공수부대원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젊은이의 사진이 그중 하나다. 1980년 5월 19일 나경택 기자가 광주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나 기자는 "당국의 검열로 기사 한 줄 나가지 못했던 시절"이라며 "몇몇 선배들과 은밀히 상의해 사진을 해외로 전송했다"고 술회한다. 결국 그의 사진이 외신에 보도되며 외국 기자들이 광주에 들어와 취재하는 계기가 됐다.
굵직한 '특종'을 연달아 터뜨린 배경에는 순발력과 운, 무엇보다 땀 흘리며 발로 뛴 노력이 있었다. 임희순 기자는 총탄이 빗발치는 순간에도 육영수 여사의 피격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동상까지 걸려 가면서 '50년 만의 영동 대폭설'을 보도한 이봉섭 기자는 "노력해 찍은 사진이 신문에 실리는 기쁨만 보고 열심히 뛰었다"고 말했다.
업적만 나열한 위인전 성격의 책은 아니다. 기자이기 이전 가장이자 한 사람으로서 겪은 인간적인 고뇌도 담았다. 윤석봉 기자는 1974년 정부를 상대로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참가했다가 해직됐다. 8명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단다. 현장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취재한 황종건 기자는 "트라우마로 인해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며 그날의 취재 수첩을 담담히 보여줬다.
구순을 앞둔 이들은 아직도 사진작가로 남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여전히 현장에서 사진을 찍거나, 머리맡에 카메라를 두고 잘 정도다. 송영학 기자는 후배들한테 이렇게 조언한다. "기록이라는 사진의 역사성은 영원히 유지돼야 할 것 같아."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