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양극화 해소, 결국은 기득권과의 싸움이다
서울 중구 오피스타운의 한 지하상가. 열 곳 가까운 점포 중 단 두 곳만 빼고 다 문을 닫았다. 입구의 김치찌개집에서부터 참치집, 돈가스집 등이 차례차례 사라지더니 문구점과 치과만 남았다. 올 들어 폐업한 매장이 15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코로나19 때인 2020년보다 많다는 것이다. 강남에서도 불 꺼진 가게들이 속출하고 있다. 쿠팡과 배달의민족으로 소비생활이 이뤄지다 보니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영향이 크다고 해도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내수 침체, 자영업 붕괴 하면 곧 연상되는 말이 ‘양극화’다. 경제의 냉기는 취약계층에는 한파를 넘어 생존의 문제로 닥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도 집권 후반기 슬로건을 ‘양극화 타개’로 잡았다. 국가장학금, 관제 일자리, 중소기업 지원 방안 등 여러 대책이 거론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따뜻한 동네’라는 은행을 압박한 서민 금융 프로그램도 나올 모양이다. ‘이재명표 예산’이라는 지역사랑상품권 예산도 전국 범위의 온누리상품권으로 대체된다면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재정도 ‘건전 재정’에서 ‘적극 재정’으로 기조 변화를 선언했다. 세수 결손에 환율 방어기금까지 끌어다 쓰는 마당에 정부 지출을 늘리겠다는 데 쓴소리가 적지 않지만, 현 위기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집권 전반기는 ‘개혁’, 후반기는 ‘양극화 타개’라면 지금까지 주창한 개혁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개혁은 사회적 자산의 효율적인 배분을 통한 생산성 극대화요, 그 종착역이 바로 양극화 해소인데 말이다.

의대 증원이 골자인 의료 개혁은 양극화 해소의 한 축인 지방 균형 발전의 선결 조건이다. 은퇴 후에도 지방 살기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가 부실한 의료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노동 개혁의 목적지도 양극화 해소다. 윤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신년사에서 그 답을 밝혔다. 연공 서열에서 직무·성과급 중심으로 전환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 노동 개혁의 핵심이라고.

한국의 임금 체계는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연공급제(호봉제)다. 그 연공급제가 우리 사회 양극화의 시발점이다. 청년 실업, 대·중소기업간,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 등 모든 불평등이 근본적으로 연공급제에서 비롯됐다. 20대 후반 실업률을 놓고 보면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가장 높다. 다섯 명 중 한 명꼴이다. 높은 청년 실업률 이면에는 ‘꿀을 빨고’ 있는 고참들이 있다. 제조업 근속자 간 임금 격차를 보면 한국의 20~30년 근속자는 1년 미만 대비 2.83배를 더 받는다. 우리처럼 노동 경직성이 강한 독일(1.8배)은 물론 연공급제를 전수한 일본(2.54배)보다도 높다. 기업의 인건비는 제한적인데 고참들이 지나치게 많이 가져가는 바람에 청년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불행도 마찬가지 패턴이다. 대기업-유노조-정규직이 중소기업-무노조-비정규직에 비해 세 배 가까이 더 받는다.

노동시장의 성골인 대기업-정규직-유노조 근로자를 위해 청년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다 같이 희생되는 구조다. 자영업자들이 과밀 경쟁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도 연공급제와 무관치 않다. 우리 자영업 비율이 다른 선진국보다 높은 것은 대기업 정규직이 못될 바에 영세 중소기업 대신 자영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서다. 전투적 강성 노조의 비호 아래 대기업 장기근속자들은 호봉제 테이블을 바탕으로 ‘따박따박’ 오르는 자기 몫을 챙겨간다. 기득권의 지대추구와 다름없다.

임금의 지대추구 성격을 배제할 수 있는 수단이 직무·성과급제다. 1년 차든 10년 차든 동일 가치의 노동을 수행하면 동일 임금을 받는 게 직무급 원리다. 국민연금 수급 연령 연장과 맞물린 계속고용제는 직무·성과급 전환의 좋은 기회다. 물론 쉽지 않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정년 후 재고용된 시니어 촉탁직도 노조원 가입을 추진할 만큼 기득권의 탐욕은 끝이 없다. 그래도 우리 공동체의 지속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재정 확대를 통해 양극화 타개로 포장한 정책은 ‘긴급 민생 대책’이다. 진정한 양극화 정책은 연공급제의 청산이다. 법조계에 이어 의료계도 흔들리고 있는 이때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왕갑’ 기득권 세력은 노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