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승, 아파트 매매시장 위축 등의 영향으로 청약 열기가 한풀 꺾이면서 건설업계가 ‘계약자 모시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분양을 털어내지 못해 임의공급을 진행한 단지가 두 달 새 여섯 배 늘었을 정도다. 1순위 청약 경쟁률이 두 자릿수에 달해도 계약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단지가 증가하고 있다. 3~4차에 걸쳐 추가 분양해도 남아 있는 물량을 해소하지 못하는 등 미분양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 부산에서 93가구 임의공급

"입주자 어디 없소"…미분양 포비아 확산
27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이달 전국에서 총 27개 단지가 임의공급을 했다. 지난 10월(17개 단지)에 비해 10곳 늘었고, 9월(4개 단지)과 비교하면 여섯 배 증가했다. ‘줍줍’이라 불리는 무순위 청약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청약 신청자가 공급 물량보다 많아 경쟁이 발생한 뒤 부적격 당첨 및 계약 포기 등 사유로 추가 모집을 하는 게 ‘무순위 사후접수’다. 불법전매 등 교란행위 적발로 계약 해제 물건이 나오면 ‘계약취소주택 재공급’ 방식으로 공급한다.

마지막으로 임의공급은 청약 신청자가 공급 물량보다 적어 미분양이 발생했을 때 시행하는 유형이다. 즉 임의공급이 늘었다는 건 분양시장 상황이 그만큼 악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단지에 따라 임의공급 규모가 10가구 내외에 그칠 때도 많다. 하지만 최근엔 두 자릿수 이상의 ‘무더기 임의공급’ 사례도 적지 않아 문제라는 지적이다. 예컨대 부산 수영구 ‘드파인 광안’에선 임의공급으로 93가구나 나왔다.

서울 강동구 ‘그란츠 리버파크’는 8월 1순위 청약 당시 16.7 대 1의 평균 경쟁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전체 공급 규모(327가구)의 18%인 60가구가 이달 임의공급됐다. 서울 마포구 ‘마포 에피트 어바닉’도 지난달 1개 주택형을 제외한 나머지 타입이 모두 1순위 마감하며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전체 물량(163가구)의 28%(46가구)가 주인을 못 찾아 임의공급 시장에 나왔다.

‘n차’ 임의공급을 해도 미분양을 털어내지 못해 골머리를 앓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기 의정부 ‘의정부역 파밀리에Ⅰ’은 이달 4차 공급했고, 인천 중구 ‘인천 유림노르웨이숲 에듀오션’은 지난달 6차 공급에 나섰다.

○ 분양가 상승·대출 규제 여파

계약에 어려움을 겪는 단지는 대부분 외곽에서 공급됐거나 입지가 좋더라도 소규모 단지라는 게 공통점이다. 예컨대 서울에서 임의공급을 2회 이상 진행한 단지는 동대문구 ‘제기동역 파밀리에 더센트럴’(76가구)과 강서구 ‘더 트루엘 마곡 HQ’(148가구), 강북구 ‘엘리프 미아역 2단지’(182가구), 은평구 ‘연신내 양우내안애 퍼스티지’(260가구), 구로구 ‘개봉 루브루’(295가구) 등 대다수가 300가구 미만이다.

건설회사는 임의공급을 거듭하면서도 미분양 감소 속도는 더뎌 울상을 짓고 있다. 개봉 루브루는 지난달 2차 임의공급 때 총 27가구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달 3차 공급에선 공급 물량을 25가구로 제시했다. 단 2가구만 계약한 셈이다. 서울 분양가가 매달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3.3㎡당 4695만원까지 오른 게 분양심리 악화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출 규제 여파로 수도권 외곽부터 기존 아파트 가격 상승 폭이 서서히 둔화하는 상황과 맞물리면서다.

대출 규제 속에 인근 시세를 넘어설 만큼 분양가가 오르자 이제는 관망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과거엔 ‘선당후곰’(선 당첨 후 고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청약 열기가 뜨거웠다”면서도 “분양가 상승세 등의 영향으로 ‘가성비 단지’가 사라지자 신중한 기조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