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바꾼 시장…굴·가리비 뜨고, 홍합·바지락 졌다
지난 25일 경남 고성군의 굴·가리비 전문업체 효성푸드 가공 공장(사진). 흰 작업복을 입고 최종 검수하는 직원들 뒤로 가리비가 가득 담긴 10㎏짜리 그물망 수십 개가 보였다. 그 옆에는 가리비를 비닐에 넣어 자동 포장하는 기계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정해문 효성푸드 대표는 “올여름 해수 온도가 30도 가까이 올라 대부분 조개류가 피해를 봤는데, 고수온에 잘 견디는 굴과 가리비는 상태가 양호해 매출이 작년보다 두 배 늘었다”고 했다.

이상기후로 인한 폭염이 어패류 시장을 바꾸고 있다. 올여름 홍합, 바지락 등 조개류 대부분이 폐사해 씨가 말랐는데, 껍데기가 두꺼워 폭염에 살아남은 굴과 가리비 매출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27일 이마트에 따르면 이달 1~24일 가리비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6% 급증했다. 매출이 다섯 배로 늘어 조개류 카테고리 내 매출 순위가 5위에서 2위로 뛰었다. 굴은 1년 전보다 10% 이상 더 팔려 매출 1위를 지켰다. 이에 비해 기존에 각각 2~4위였던 바지락, 꼬막, 홍합 매출은 일제히 고꾸라졌다.

매출을 가른 건 이상기후다. 올여름 유독 덥고 습한 날씨로 홍합, 바지락 등의 상태가 나빠져 출하량이 급감했다. 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지난달 홍합 생산량은 567t으로 1년 전보다 84.6% 줄었다. 충남 지역 바지락 양식장도 전체 면적의 60% 이상에서 집단 폐사가 일어나 생산량이 쪼그라들었다. 이에 비해 지난달 굴 생산량은 790t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 감소하는 데 그쳤다. 국내 가리비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고성의 출하량도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가리비와 굴의 피해가 작은 건 딱딱한 껍데기 때문이다. 문부성 이마트 수산매입팀 바이어는 “여름철 고수온이 2주 넘게 이어져 조개류 폐사율이 확 뛰었는데, 패각(껍데기)이 두껍고 강한 굴과 가리비는 거의 다 살아남았다”고 했다. 폭염이 상시화하면서 2~3년 전부터 남해안 가리비 양식장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판매량이 크게 증가한 배경이다.

여름철까지 조개류 매출이 저조했던 유통업체들이 ‘굴·가리비 띄우기’에 나서자 가격이 소폭 떨어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가리비 소매가는 10월 4주차 ㎏당 8134원에서 11월 3주차 7600원으로 하락했다.

이마트는 29일부터 봉지굴과 홍가리비 가격을 40~50% 낮추는 등 공격적인 할인에 나선다.

고성=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