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PRO] 한계기업 퇴출 간소화…'고의 상폐' 무자본 M&A 세력 악용 우려
※한경 마켓PRO 텔레그램을 구독하시면 프리미엄 투자 콘텐츠를 보다 편리하게 볼 수 있습니다. 텔레그램에서 마켓PRO를 검색하면 가입할 수 있습니다.

당국, 한계기업 증시 퇴출 제도 정비
고의 상폐 등…악용 소지 우려도

두 차례 의견거절 받은 세원이앤씨
알고보면 멀쩡한 기업이지만 상폐 위기 몰려
지난 26일 세원이앤씨 임직원과 소액주주들이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상장폐지 사유 해소를 위한 개선 기간 연장을 요구했다. /사진=류은혁 기자
지난 26일 세원이앤씨 임직원과 소액주주들이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상장폐지 사유 해소를 위한 개선 기간 연장을 요구했다. /사진=류은혁 기자
금융당국이 한계기업을 주식시장에서 신속하게 퇴출시키는 제도 간소화를 추진 중인 가운데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으로 불리는 이른바 기업사냥꾼들이 위법 행위를 감추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 아니냔 우려가 나온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한계기업 징후가 있는 상장사에 대해 선제적 회계심사·감리를 벌이기로 했다. 회계를 조작해 상장만 유지하는 한계기업을 증시에서 신속하게 퇴출하겠다는 취지다. 한국거래소도 상장폐지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제도 간소화를 추진하고 있다.

시장에선 제도 도입 전부터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계기업을 증시에서 신속하게 퇴출시켜 시장 건전성을 유지하겠단 취지와 달리 제도를 악용해 오히려 시장 신뢰성을 낮출 수 있단 지적이다.

일각에선 고의적인 상장폐지 등 부작용을 우려한다. 회사가 회계감사에 필요한 서류를 고의로 제출하지 않는 수법 등으로 감사의견 거절을 받는 것이다. 상장폐지가 되면 대주주나 경영진이 횡령 등 내부 부정을 감추기가 용이해진다. 상장폐지 후 회사 자산을 추가로 횡령할 가능성도 높다. 공시 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이 대주주나 경영진, 무자본 M&A 세력의 부정 거래에 대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두 차례 사업보고서에서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산업용 유압기기 등을 생산하는 세원이앤씨는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지난 26일 세원이앤씨 임직원과 소액주주들은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상장폐지 사유 해소를 위한 개선 기간 연장을 요구했다. 이들은 주어진 기간 내 회사를 정상화하겠단 점을 강조한다. 현재 개선계획 이행 여부에 대한 심의 요청서를 접수해 거래소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세원이앤씨 임직원과 소액주주들은 전형적인 무자본 M&A 피해 사례라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무자본 M&A세력들이 회삿돈 1000억원을 횡령하면서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면서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임직원들이 문제의 경영진들을 몰아내고 회사 정상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들은 기존 경영진들이 위법 행위를 감추기 위해 고의 상폐까지 계획했다고 주장한다.

박철홍 세원이앤씨 노조위원장은 "상장폐지되면 자금 조달창구가 막혀 자칫 파산까지 이를 수 있다"면서 "우리 회사는 매년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등 내실이 탄탄한 기업"이라고 말했다. 창원시도 거래소에 공문을 보내 지역 경제를 위해선 세원이앤씨의 개선 기간 연장이 필요하단 점을 강조했다. 지난 9월 말 기준 세원이앤씨의 자산총계 3516억원, 부채비율은 71.93%다.

금투 업계에선 당국이 한계기업의 신속한 증시 퇴출에 집중하기보단 기업을 살릴 수 있는 대책안도 함께 찾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거래정지 등의 조치를 통해 한계기업에 투자금이 유입되는 것은 막고 있다"면서 "한계기업을 신속하게 증시에서 퇴출시킨다고 시장 건전성이 높아질지에 대해선 의문"이라고 말했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