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몸의 형태보다는 제 안무와 연출의 의미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모두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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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공연예술가 키아라 베르사니는 28일 서울 중림동 모두예술극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베르사니는 골형성부전증을 가진 장애인으로 키가 98cm에 지나지 않는다.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서 행위예술을 공부하고, 사람의 움직임에 천착해 유럽에서 인정받는 예술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는 2018년 이탈리아 문화예술계의 권위있는 상 '프레미오 우부'에서 35세 이하 최고 공연자로 수상했다. 2020년에는 베니스 국제현대무용축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출처. 모두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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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니는 오는 29일부터 3편의 작품을 모두예술극장에서 올린다. 작품에 대해 "나의 생각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들"이라고 운을 뗐다. 정상적인 몸을 가진 예술가와 다름없이 무대를 펼치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이었다. 이날 함께 자리한 미켈라 린다 마그리 주한이탈리아문화원장은 "일반 사람들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분류하는 것에 반기를 들고, 예술을 통해 사람들을 통합하려는게 키아라 베르사니의 철학같다"고 덧붙였다.

베르사니는 "더 많이 공연해서 장애인이 펼치는 예술을 특별하게 보지 않는,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9세부터 행위예술을 배웠다. 행위예술가가 자신의 직업이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제 이전에 장애인이 행위예술을 하거나 무용을 한다는 사람을 만나질 못해서요. 저는 바닥에서 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단 걸 깨닫고 행위예술과 사랑에 빠졌어요. 휠체어가 없이 공적인 장소에 제가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무대에서 그게 가능했죠. 나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느꼈고 지금까지 온 거에요."
출처. 모두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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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문 예술가를 꿈꾸는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전무했다고 말했다. 이에 자신과 같은 꿈을 가진 이들을 모아 일종의 조합을 결성했고 3년 넘게 정부와 진지한 대화를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세상과 단절된 예술이 아닌,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예술가들이기 때문. 그런 이유로 베르사니는 자신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정치적인 신체'라고 했다. 이번 한국에서 보여줄 3편의 작품, '젠틀 유니콘' '덤불' 애니멀'도 마찬가지다.

'젠틀 유니콘(11월 29~30일)'에서는 장애인의 신체에 대한 세간의 편견을 마주하고 장애인의 목소리를 되찾으려는 메시지를 전할 계획이다. 베르사니는 "이교도의 동물, 교황의 상징 등으로 쓰인 유니콘에 발언할 기회를 주는 공연"이라고 했다. 장애인의 신체가 당사자의 발언이 배제된 채 종교, 문화적으로 의미가 덧씌워졌던 역사에 주목해 유니콘을 장애인을 빗댔다.

'덤불(12월 4일)'은 자연에 저항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놓인 상황을 가정하며 장애를 가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질문을 던진다. 그는 "어린 시절 움직일 수 없어 한곳에 오래 머물렀던 기억을 떠올리며 숲에서 장애 아동이 길을 잃었을 때,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탐구한 결과를 무대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애니멀(12월 6~7일)'은 발레 안무가 미하일 포킨의 명작인 '빈사의 백조'를 재해석한 공연이다. 베르사니의 느린 움직임은 우아한 백조와 거리가 있지만, 죽어가는 과정 속, 고통받는 동물의 꾸밈없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백조라면 떠올리게 될 우아함이란 편견, 그것을 깨부수는 의도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