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중국산 폐식용유 쟁탈전, 美농민들 '부글부글' [원자재 포커스]
중국산 폐식용유를 수입하려고 서방 기업들이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각국 농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정부가 친환경 연료 사용을 장려하고 강제한 탓에 바이오디젤 등 대체 연료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자 기업들이 자국 농산물을 활용해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대신 값싼 중국산 폐식용유를 선택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바이오 연료 규제를 완화할 경우 대두, 옥수수 국제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근과 채찍'에 바이오 연료 수요 폭증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발효 후 미국의 중국산 폐식용유 수입이 급증했다. 법이 시행된 첫해인 2022년 미국이 수입한 폐식용유의 중국산 비율은 1% 미만이었으나, 올해 50%를 초과했다. 지난 9월 미국의 중국산 폐식용유 수입은 100만톤(t)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 각국도 마찬가지로 중국 폐식용유 기반 바이오디젤 수입이 늘어났고, 유럽연합(EU)은 지난 8월 다급하게 최고 36.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브라질 상파울루 외곽 상카에타누두술 트랜스페트로 터미널의 탱크. 브라질 석유 기업 페트로브라스의 자회사 트랜스페트로는 석유 제품, 알코올, 바이오디젤을 운송하고 저장하는 기업이다.  /사진=로이터
브라질 상파울루 외곽 상카에타누두술 트랜스페트로 터미널의 탱크. 브라질 석유 기업 페트로브라스의 자회사 트랜스페트로는 석유 제품, 알코올, 바이오디젤을 운송하고 저장하는 기업이다. /사진=로이터
중국산 폐식용유 수입이 늘어난 것은 엉뚱하게도 미국과 유럽이 바이오 연료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면서부터다. 미국 정부는 식용유나 에탄올을 원료로 한 지속가능항공유(SAF)에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등 인센티브를 확대했다. 기업에 대한 규제도 한몫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운송 연료에 저탄소 바이오 연료를 혼합하도록 의무화하고 목표 달성을 못한 기업은 시장에서 일종의 포인트인 '린'(RIN)을 구매하거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미 정부는 바이오 연료 생산 기업에 린 포인트를 부여, 이를 판매해 추가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9일 린 포인트 가격은 1월 이후 가장 높은 79센트까지 올랐다. 장기적으로는 바이오 디젤 연료 사용이 지속해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컨설팅기업 라이스타드 에너지의 분석에 따르면 가솔린, 디젤, 항공유 등의 대체 식물성 연료 생산량은 향후 10년 내 54% 증가해 석유로 환산하면 하루 130만배럴 정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인디애나주 로치데일의 호드겐 농장에서 콩을 수확하는 모습 / 사진=Reuters
미국 인디애나주 로치데일의 호드겐 농장에서 콩을 수확하는 모습 / 사진=Reuters

콩과 옥수수 가격 급락, 트럼프 악재도 우려

바이오 연료 사용이 늘어나는 데도 중국산 폐식용유 때문에 원료 작물 가격이 하락하자 농민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있다. 바이오 연료 수요 급증을 기대하고 재배를 늘린 탓에 콩과 옥수수 가격은 나란히 2020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하락했다. 이날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대두 선물 가격은 올해 들어 22.3% 하락해 부셸(콩 1부셸=27.2㎏)당 9달러 89센트를 기록했다. 옥수수 선물도 연초보다 7.71% 떨어진 부셸(옥수수 1부셸=25.4kg) 당 4달러 28센트에 머물렀다. 농민들은 곡물 가격 상승을 바라면서 작물 출하를 최대한 미뤄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다.

미국 농장주와 지역구 의원들은 중국산 폐식용유 수입을 막기 위해 중국의 삼림 벌채와 관련된 국제규범 위반 등을 조사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9월엔 내년부터 도입될 IRA 세액공제 혜택을 미국산 원료를 사용하는 경우만으로 한정하는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또 다른 악재도 기다리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IRA 폐지 공약 때문이다. 바이오 연료 사용 의무가 약해질 경우 바이오 연료 원료 곡물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농민들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도 불투명하다. 제프 쿠퍼 재생연료협회 회장은 "바이오 연료 작물을 재배하는 농장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이 2025년부터 시작될 예정인데 아직 최종 규칙도 나오지 않았다"며 "2025년이 농민들에게 잃어버린 1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현일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