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징한 선율과 담백한 연주…조성진과 래틀의 '名作 하모니'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내한공연 리뷰
사이먼 래틀이 지휘
피아니스트 조성진 협연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페달링 극도로 절제하고
서정적인 연주 들려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2번
은은하고 기품있는 음색
완성된 해석·연주 들려줘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
놀라운 지휘 템포 따라
열의와 집중력이 빛나
사이먼 래틀이 지휘
피아니스트 조성진 협연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페달링 극도로 절제하고
서정적인 연주 들려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2번
은은하고 기품있는 음색
완성된 해석·연주 들려줘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
놀라운 지휘 템포 따라
열의와 집중력이 빛나
유럽에는 여러 방송 교향악단이 있지만, 독일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그 가운데서도 한손에 꼽을 만한 명가다. 초대 상임지휘자인 오이겐 요훔부터 시작해 라파엘 쿠벨리크, 콜린 데이비스, 로린 마젤, 마리스 얀손스에 이르기까지 역대 상임지휘자 모두가 20세기 클래식 역사를 써 내려간 거장이었다. 그리고 작년부터 이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는 인물은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지낸(2002~2018) 사이먼 래틀이다.
지난 20일과 21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을 찾은 래틀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조성진과 한 무대에 섰다. 조성진과 래틀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조성진이 2015년 10월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을 때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래틀에게 전화를 걸어 조성진의 연주를 극찬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지메르만은 평소에 남 칭찬을 거의 안 하는 성격이라 오죽하면 래틀이 “이 양반 뭐 잘못 먹었나”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머잖아 래틀과 조성진은 호흡을 맞추게 됐고,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 11월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해 둘의 ‘케미’를 확실히 보여줬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둘 사이의 관계는 한층 돈독해진 듯하다. 공연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래틀이 “그와 연주하면 염려가 없다”고 한껏 치켜세운 것을 보면 말이다.
첫날 공연의 첫 순서인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은 여러모로 특이했다. 일단 이 곡은 쇼팽과 드뷔시처럼 조성진의 장기에 속하는 레퍼토리가 아니다. 이 대곡이자 난곡을 조성진이 어떻게 소화해낼지 궁금했다. 반어적인 농담을 즐겼던 브람스는 이 곡에 대해 ‘아주 작은 피아노 소품’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지만, 좀 더 솔직하게 말했을 때는 ‘기나긴 테러’라는 표현도 썼다. 이 말대로 이 곡은 피아니스트에게 엄청난 체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협주곡은 브람스 작품답게 적잖은 ‘두께’를 필요로 하는 곡이기도 하다. 브람스를 비롯한 낭만주의 작품에서 이런 두께를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손쉬운 방법은 페달링으로 일부 음을 살짝 흐림으로써 연주에 음영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성진은 이 방법을 거부하고 페달링을 극도로 절제했다. 시종일관 최저 음역부터 최고 음역까지 명징함을 유지하는 가운데 셈여림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대처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양손의 비중을 거의 똑같이 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바로크와 초중기 낭만파 음악에서 효과가 좋은 방식인데,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에서 이런 해석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지라 무척 흥미로웠다. 굳이 말하자면 ‘기분 좋은 이질감’이었다. 2악장 중간부에서 조성진이 들려준 담백하고도 서정적인 연주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다만 특히 1악장에서 템포를 자주 변경한 것(이를 ‘루바토’라고 부른다) 역시 앞서 말한 두터움을 연출하려는 방책이었을지는 몰라도, 이 경우에는 그리 성공적이지 않아 보였다.
둘째 날인 21일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 협연곡이었다. 첫날은 어딘가 좀 미완성된 느낌을 준 반면 다음 날은 어느 모로 보나 완성된 해석이고 연주였다. 조성진은 전날과 대체로 비슷한 접근법으로 연주했는데, 이날이 더 효과적이었다. 명료하고 균일한 연주였으며, 기교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었다. 페달링도 한층 절제했는데, 2악장 후반부에서만은 페달링을 적극적으로 구사해 은은한 음색을 들려줬다. 이는 앞뒤와 대조적으로 이 대목에서 유독 쇼팽의 걸작 녹턴을 방불케 하는 시정이 돋보이는 결과를 낳았다. 명랑하고 단정하며 기품 있는 3악장은 우리가 조성진이라는 피아니스트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바로 그런 연주였다. 앙코르는 역시 슈만의 ‘환상 소곡집, Op. 12’ 중 세 번째 곡 ‘어찌하여’였는데 담백하고 차분했다.
둘째 날 공연은 확실히 무게추가 2부 쪽으로 기울었다. 올해는 안톤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 이 해가 가기 전에 브루크너의 교향곡, 그것도 작곡가의 마지막 작품이자 미완성으로 끝난 ‘교향곡 9번’을 또 들을 수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 행운이었다.
놀라운 건 래틀의 지휘 템포였다. 보통 지휘자는 나이가 들수록 템포가 느려진다. 맥박이 느리게 뛰는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69세가 된 래틀은 더 대담했다. 2011년 11월 16일 베를린 필과 내한 때와 비교해 템포를 비교적 자주 변경하고, 악상을 한층 입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파트마다 초점을 변화시키며 그가 아직 노쇠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각인시켰다. 사실상 브루크너의 유언장이자 최후 진술이며 ‘미완성 상태로 완성한 악장’인 3악장에선 이에 걸맞은 지휘자와 악단의 정성, 열의, 집중력이 빛을 발했다. 다만 호른이 연주하는 맨 마지막 음은 실연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경우가 오히려 더 드문데, 이날 역시 사소한 실수가 있어 약간 아쉬움을 남겼다.
청중의 열화와 같은 박수를 접한 래틀은 악장과 한동안 귀엣말을 주고받았는데, 아마 앙코르를 연주할 것인가를 두고 얘기한 게 아닌가 싶다. 이날 공연은 결국 앙코르 없이 끝났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브루크너 교향곡 제9번 같은 곡 다음에 연주할 만한 앙코르용 곡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황진규 음악 칼럼니스트
지난 20일과 21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을 찾은 래틀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조성진과 한 무대에 섰다. 조성진과 래틀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조성진이 2015년 10월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을 때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래틀에게 전화를 걸어 조성진의 연주를 극찬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지메르만은 평소에 남 칭찬을 거의 안 하는 성격이라 오죽하면 래틀이 “이 양반 뭐 잘못 먹었나”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머잖아 래틀과 조성진은 호흡을 맞추게 됐고,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 11월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해 둘의 ‘케미’를 확실히 보여줬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둘 사이의 관계는 한층 돈독해진 듯하다. 공연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래틀이 “그와 연주하면 염려가 없다”고 한껏 치켜세운 것을 보면 말이다.
첫날 공연의 첫 순서인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은 여러모로 특이했다. 일단 이 곡은 쇼팽과 드뷔시처럼 조성진의 장기에 속하는 레퍼토리가 아니다. 이 대곡이자 난곡을 조성진이 어떻게 소화해낼지 궁금했다. 반어적인 농담을 즐겼던 브람스는 이 곡에 대해 ‘아주 작은 피아노 소품’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지만, 좀 더 솔직하게 말했을 때는 ‘기나긴 테러’라는 표현도 썼다. 이 말대로 이 곡은 피아니스트에게 엄청난 체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협주곡은 브람스 작품답게 적잖은 ‘두께’를 필요로 하는 곡이기도 하다. 브람스를 비롯한 낭만주의 작품에서 이런 두께를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손쉬운 방법은 페달링으로 일부 음을 살짝 흐림으로써 연주에 음영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성진은 이 방법을 거부하고 페달링을 극도로 절제했다. 시종일관 최저 음역부터 최고 음역까지 명징함을 유지하는 가운데 셈여림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대처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양손의 비중을 거의 똑같이 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바로크와 초중기 낭만파 음악에서 효과가 좋은 방식인데,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에서 이런 해석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지라 무척 흥미로웠다. 굳이 말하자면 ‘기분 좋은 이질감’이었다. 2악장 중간부에서 조성진이 들려준 담백하고도 서정적인 연주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다만 특히 1악장에서 템포를 자주 변경한 것(이를 ‘루바토’라고 부른다) 역시 앞서 말한 두터움을 연출하려는 방책이었을지는 몰라도, 이 경우에는 그리 성공적이지 않아 보였다.
둘째 날인 21일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 협연곡이었다. 첫날은 어딘가 좀 미완성된 느낌을 준 반면 다음 날은 어느 모로 보나 완성된 해석이고 연주였다. 조성진은 전날과 대체로 비슷한 접근법으로 연주했는데, 이날이 더 효과적이었다. 명료하고 균일한 연주였으며, 기교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었다. 페달링도 한층 절제했는데, 2악장 후반부에서만은 페달링을 적극적으로 구사해 은은한 음색을 들려줬다. 이는 앞뒤와 대조적으로 이 대목에서 유독 쇼팽의 걸작 녹턴을 방불케 하는 시정이 돋보이는 결과를 낳았다. 명랑하고 단정하며 기품 있는 3악장은 우리가 조성진이라는 피아니스트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바로 그런 연주였다. 앙코르는 역시 슈만의 ‘환상 소곡집, Op. 12’ 중 세 번째 곡 ‘어찌하여’였는데 담백하고 차분했다.
둘째 날 공연은 확실히 무게추가 2부 쪽으로 기울었다. 올해는 안톤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 이 해가 가기 전에 브루크너의 교향곡, 그것도 작곡가의 마지막 작품이자 미완성으로 끝난 ‘교향곡 9번’을 또 들을 수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 행운이었다.
놀라운 건 래틀의 지휘 템포였다. 보통 지휘자는 나이가 들수록 템포가 느려진다. 맥박이 느리게 뛰는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69세가 된 래틀은 더 대담했다. 2011년 11월 16일 베를린 필과 내한 때와 비교해 템포를 비교적 자주 변경하고, 악상을 한층 입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파트마다 초점을 변화시키며 그가 아직 노쇠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각인시켰다. 사실상 브루크너의 유언장이자 최후 진술이며 ‘미완성 상태로 완성한 악장’인 3악장에선 이에 걸맞은 지휘자와 악단의 정성, 열의, 집중력이 빛을 발했다. 다만 호른이 연주하는 맨 마지막 음은 실연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경우가 오히려 더 드문데, 이날 역시 사소한 실수가 있어 약간 아쉬움을 남겼다.
청중의 열화와 같은 박수를 접한 래틀은 악장과 한동안 귀엣말을 주고받았는데, 아마 앙코르를 연주할 것인가를 두고 얘기한 게 아닌가 싶다. 이날 공연은 결국 앙코르 없이 끝났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브루크너 교향곡 제9번 같은 곡 다음에 연주할 만한 앙코르용 곡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황진규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