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위기의 가늠자로 통하는 독일과 프랑스 간 국채금리 차(스프레드)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위기 이후 12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긴축 예산안을 놓고 의회와 갈등을 겪는 프랑스 내각이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양대 기둥이 흔들린다"…佛·獨 '유로존 위기 뇌관' 부상
27일(현지시간) 국제 채권시장에서 프랑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3.014%, 독일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2.166%에 거래됐다. 스프레드는 0.848%포인트로 2012년 유로존 위기 이후 최대치다. 독일-프랑스 스프레드는 프랑스 채권의 위험 지표이자 유럽 위기의 가늠자로 통한다.

이날 시장은 “바르니에 내각이 무너질 것”이라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이 르파리지앵 보도로 전해지자 공포에 휩싸였다. 미셸 바르니에 총리는 지난달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600억유로 규모의 예산 감축안을 의회에 제출했고, 야당은 내각 불신임 투표로 저지하겠다고 맞섰다.

폴리티코는 “바르니에 내각이 붕괴하면 과거 그리스 사태와 같은 유로존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佛총리 대기업·부자증세 강행…獨이어 佛도 내각 붕괴 위기
獨 제조업 침체로 올해도 역성장…기업들 경기전망도 먹구름

유럽 경제 주축인 독일과 프랑스가 흔들리면서 2012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위기가 재연될 것이라는 공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유로존 위기 때 유럽을 지탱한 독일마저 경기 침체에 빠진 가운데 프랑스 내각 붕괴는 유럽 경제 위기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프레드 1%P까지 커질 것”

27일(현지시간) 독일과 프랑스 국채 스프레드(금리 차)는 프랑스 내각 붕괴 우려가 확산하면서 급격히 벌어졌다. 지난 9월 취임한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총리는 지난달 600억유로(약 88조2600억원) 규모의 긴축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6%로 전망되는 재정적자를 유럽연합(EU) 기준인 3%까지 낮추기 위해서다. 413억유로 규모의 공공 지출을 삭감하고 대기업·부자 증세를 통해 세수 193억유로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바르니에 총리는 한 차례 하원(국민의회)에서 부결된 이 예산안을 야당인 국민연합이 다시 가로막으면 헌법 제49조 3항에 따라 직권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연합은 바르니에 총리가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면 내각 불신임 투표를 실시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는 정부의 무리한 증세가 결국 국민의 구매력을 떨어뜨리고 경제 전반에 악영할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며 강력한 반대 의견을 펼치고 있다.

바르니에 총리는 내각이 붕괴하면 “금융시장에 심각한 폭풍과 혼란이 올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장필리프 탕기 국민연합 의원은 바르니에 총리를 양치기 소년에 빗대며 “공황과 혼란에 대한 공포를 휘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연합은 내각이 붕괴하더라도 행정부가 기능할 수 있도록 임시방편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내각과 국민연합 간 갈등은 사회지출 관련 투표를 진행하는 다음달 초와 크리스마스 사이에 극도로 고조될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망했다. 씨티그룹은 프랑스의 정치 갈등이 심화하면 독일과 프랑스 스프레드가 1%포인트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크리스토퍼 리거 코레르츠방크 금리 연구책임자는 “최근 예산 합의가 어려워지고 내각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정치적 뉴스 외에 프랑스의 거시경제 전망도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U 기둥 독일도 침체 빠져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르펜 대표가 바르니에 총리의 긴축 예산안을 부결하고 내각 불신임안을 통과시시면 과거 그리스 사태에서의 유로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12년 그리스의 막대한 부채가 알려지면서 그리스 국채 금리가 급등했고,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 등이 연쇄 위기를 맞은 유로존 사태가 프랑스를 시발점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20일 “부채 증가, 높은 재정적자, 낮은 성장 잠재력, 정책 불확실성이 더해져 재정 침체가 국가 부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불러일으킬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로존 위기 때 EU의 기둥 역할을 했던 독일이 제조업 위기로 침체에 빠졌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독일 재무부는 자국 경제가 지난해 -0.3%에 이어 올해도 -0.2% 역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 폭스바겐, 최대 철강기업 티센크루프스틸 등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며 침체는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다.

이렇다 보니 EU 단일 화폐인 유로화 가치가 미국 달러화보다 낮아지는 ‘패리티 붕괴’ 전망까지 나온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유로당 1.2달러 안팎이던 유로·달러 환율은 최근 1.05달러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최근에는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신호등 연정’이 붕괴하며 정치 리스크도 경제를 흔들고 있다. 독일 경제연구소인 ifo협회가 발표한 11월 독일 경기환경지수는 85.7로 전월 대비 0.8포인트 감소했다. 사이러스 루비아 함부르크상업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대통령선거와 독일 조기 총선으로 커진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회민주당 소속 숄츠 총리는 2021년부터 녹색당, 자유민주당과 손잡고 내각을 운영했으나 국가 부채에 대한 이견으로 자유민주당과 갈라선 뒤 조기 총선을 실시한다고 이달 초 밝혔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취임하기 전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독일에는 악재라는 게 산업계 평가가 나온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