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우크라이나 다크 투어리즘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혹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 ‘부차 학살’이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의 부차는 전쟁 초기 러시아군이 한 달여간 점령하면서 민간인 집단 살해, 강간, 약탈, 병원 폭격 등 온갖 전쟁 범죄를 저지른 곳이다. 시신 중에는 귀가 잘리고 치아가 강제로 뽑히는 등 고문 흔적도 발견됐다.

부차 주변 이르핀의 잔혹상도 비슷하다. 러시아군은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항의하는 이들을 전차로 밀고 가기도 했다. 이르핀은 키이우와 연결된 다리가 폭파돼 탈출구가 사라진 주민들의 황망한 모습이 담긴 사진으로도 유명하다.

전쟁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은 이 두 도시가 요즘은 ‘다크 투어리즘’ 관광지가 되고 있다. 다크 투어리즘은 재난 현장을 둘러보면서 교훈을 얻는 여행이다. 지난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외국인은 전쟁이 발발한 2022년에 비해 두 배 늘어난 400만 명이며, 이 중에는 ‘전쟁 관광객’도 적지 않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다크 투어리즘 대표 업체 워투어의 관광 콘텐츠를 보면 파괴된 탱크와 대포, 미사일 공격으로 폐허가 된 현장, 러시아 전쟁 범죄의 목격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재블린 등 이번 전쟁에서 활약한 대전차 미사일도 볼거리다.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 중 하나는 파괴된 민간 차량을 쌓아 만든 이르핀의 차 공동묘지라고 한다. 흡사 설치 미술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SNS용 촬영 핫플이라는 것이다. 키이우 하루짜리가 150유로(약 22만원, 항공·숙박 제외), 이르핀·부차 투어는 250유로(약 36만원)다.

다크 투어리즘은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피폭 현장 등 유적지가 대부분으로, 우크라이나처럼 현 전쟁 지역을 대상으로 삼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그러다 보니 논란도 적잖다. 전쟁을 지나치게 상업화한다는 비난과 더불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금전적 지원책이라는 옹호론도 있다. 관광 가이드들은 전쟁통에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고, 관광객들은 우크라이나에 기부까지 하기 때문이다. 21세기 신냉전을 촉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래저래 새로운 이야깃거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