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안 자동부의 폐지법’ ‘양곡관리법’ 등 여당이 반대하는 경제 및 예산 관리 법안을 일제히 강행 처리했다. 대통령이나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한 수사의 경우 상설특별검사 후보 추천 때 여당을 배제하는 내용의 ‘상설특검 후보 추천 규칙 개정안’도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법안만 6개에 달한다.
거부권 행사 뻔한 법안, 하루만에 6건 강행…더 독해진 野 입법독주

○예산안 자동부의 등 거부권 예상

이날 본회의에선 국회의 예산심사 법정 기한이 지나도 내년도 정부 예산안과 예산 부수 법안이 본회의에 자동으로 부의되지 않게 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야당 주도로 통과됐다. 민주당에선 이소영 의원이 반대표를 던져 눈길을 끌었다.

해당 법안은 국회가 예산심의 기한인 매년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정부 원안과 세입 부수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하는 현 제도를 폐지하고,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해 본회의에 부의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 예산안 처리 지연 사태가 잦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여야가 합의해 만든 제도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를 무력화하는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여야 원내대표가 법정 처리 시한인 다음달 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키로 합의한 것도 물거품이 될 전망이다. 법안 처리 직후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 예산을 책임지는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법률안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점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여당이 반대하는 ‘농업 4법’(양곡관리법 개정안·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법 개정안·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도 이날 본회의에 올렸다. 전날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날 여당을 배제한 ‘상설특검 후보 추천 규칙 개정안’도 처리해 ‘야당 입맛에 맞는’ 특검을 활용해 김건희 여사 의혹을 수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증인 동행명령 대상을 ‘국정조사’에서 ‘안건 심사 및 청문회’로 확대하는 국회 증언·감정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민생 법안 처리는 다시 뒷전으로

반면 여야 대치 정국에 민생 법안 처리는 다시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번 본회의에서 처리가 가능할 것으로 꼽힌 ‘인공지능(AI) 기본법 제정안’과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으로도 오르지 못했다. 여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반도체 특별법’도 소관 상임위 소위 문턱을 넘지 못해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가 심해지면서 우원식 국회의장의 역할 부재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같은 여소야대 국면의 21대 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김진표 전 의장이 쟁점 법안 때마다 ‘협치 정신’을 강조한 것과 대비된다는 지적이다. 김 전 의장은 여야가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과 방송 3법,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특검법·대장동 50억 의혹 클럽 특검법) 등을 놓고 대치할 때마다 야권 강성 지지자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법안 상정을 미루며 타협을 주문했다.

그는 퇴임 전 “한쪽 당적을 계속 가지고 편파적인 의장 역할을 하면 그 의장은 꼭두각시에 불과할 것”이라며 경계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설지연/배성수/박상용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