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부시, 푸틴 다들 틀렸다… 전쟁 앞에선 [서평]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고대 로마 시대의 격언이다. 요즘 들어 더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컨플릭트>는 바로 그런 취지의 책이다. ‘전쟁 백과사전’이라 할만하다. 중국 국공내전(1946~1949)부터 현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28개 현대전을 살펴본다. 책을 쓴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는 미 육군에서 37년 복무하며 미국 중부사령부 사령관, 이라크 주둔 연합군 사령관, 아프가니스탄 주둔 연합군 사령관을 지냈다. 퇴역 후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맡았다. 그는 영국 전쟁역사학자인 앤드루 로버츠와 함께 이 책을 썼다.

모든 전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항상 잘못된 판단이 이뤄지고, 혼란이 뒤따른다. 저자들은 ‘오판이 가득한 전쟁’의 예로 한국전쟁(1950~1953)을 든다. 북한의 김일성은 쉽게 남한을 점령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침공 일주일 전에 미국 CIA는 북한의 전쟁 가능성은 낮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북한의 전격전은 너무 효과적이었기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왔다. 남한이 버티지 못하고 금방 점령당할 것처럼 보이자 미국은 당황해 서둘러 지원군을 보냈다.

남한을 도운 연합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오만하고 허영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은 그런 맥아더였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중공군의 개입을 과소평가했다. 단 3개월이면 북한을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38선을 넘어 북진했지만 엄청난 사상자를 낸 채 다시 38선으로 밀려났다.

저자들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전략적 지도력’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큰 그림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무작정 전투에서 이기려고만 해선 아무리 뛰어난 무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베트남 전쟁(1964~1975)에서 미군은 전쟁과 적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대규모 수색과 파괴 작전에 초점이 맞춰져 남베트남 주민들에게 안전을 제공하지 못했다. 남베트남 정부를 지지하는 것이 공산 게릴라를 지지하는 것보다 낫다는 점을 확신시킬 수 없었다.
김일성, 부시, 푸틴 다들 틀렸다… 전쟁 앞에선 [서평]
이런 실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2021)과 이라크 전쟁(2003~2011)에도 되풀이됐다. 이라크 전쟁 때 미군은 거침없이 진격하며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이후의 모든 일이 예상과 달랐다.

치안이 가장 문제였다. 질서가 무너지고 파괴적인 약탈이 이어졌다. 거주지를 파괴하고 벽을 뜯어 구리선을 가져가기도 했다. 미국은 후세인의 바트당 소속 사람들을 공직에서 배제하는 ‘탈바트화’ 정책을 폈는데 공무원, 의사, 엔지니어, 대학 교수, 학교 교사, 기타 전문가 등을 망라했다. 정부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이라크의 복구와 재건을 위해 필요한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민주 정부와 강력한 시장 경제를 갖춘 ‘중동의 한국’이 되기를 바랐지만 결국 실패했다.

2022년 발발해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도 오판으로 가득하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취약한 우크라이나 정부와 제대로 무장하지 못한 우크라이나 군대를 상대로 쉬운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푸틴은 전격전 시대 이후 전쟁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침공 계획은 사전에 유출됐고, 우크라이나는 방공 체계를 재배치하고 영국과 미국의 무기를 미리 들여오는 식으로 대비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은 열세였지만 창의적인 전략을 폈다. 기동성을 우선시했고 대전차 유도 미사일, 자살 드론 등을 사용했다. 미국 데이터 기업 팔란티어는 위성, 드론, 첩자가 휴대폰 스마트폰 등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정확한 로켓과 포격을 가능하게 했다.

저자들은 미래의 전쟁에 대해서도 전망한다. 드론의 활약으로 유인 전투기나 전차는 필요 없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드론 대응법이 빠르게 연구되고 있다. 드론으로부터 장갑전투차량을 보호하는 근접 공중폭발 탄약, 드론 떼를 한 번에 공격하는 고출력 초단파 및 레이저 무기 등이 그런 예다. 한편으론 인공지능과 로봇이 위협적인 무기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전쟁을 안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지만, 최근까지도 역사는 전쟁으로 가득했다. 책은 그에 대한 교훈과 통찰을 제공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