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 수천만원 벌어도 양육비 220만원…정우성 사태로 본 낡은 제도 [노종언의 가사언박싱]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월급 수천만원 돼도 양육비 220만원이 상한
2주에 한번 만남·양육비만 내면 '합격'
OECD 최저 혼외출산율 4.7%
2주에 한번 만남·양육비만 내면 '합격'
OECD 최저 혼외출산율 4.7%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아버지로서 책임을 다 할 것이지만, 결혼은 하지 않겠습니다.'
배우 정우성(51) 측이 이같은 입장을 밝히면서 한국사회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낳은 아이를 혼외자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이 용어는 사회적으로 다소간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유명 배우의 혼외자 출산이라는 다소 파격적 선택에 대해 '책임감 있는 결정'이라는 지지부터 '무책임하다'는 비판까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이 논쟁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부모의 책임'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혼외자 양육에서 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부분은 일반의 상식과는 다른 점이 많고 혼외자에 대한 건전한 교양과 성장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현행법상 비친권자의 책임은 양육비 지급과 2주에 한 번 자녀를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권에 그칩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면접교섭권을 행사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점입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자녀 얼굴 보고 양육비만 부치면 '책임을 다한 부모'가 되는 셈입니다.
양육비 산정 기준은 더욱 비현실적입니다. 서울가정법원의 양육비산정기준표는 부모의 재산을 고려하지 않고 월소득만을 기준으로 합니다. 월급이 수천만원대인 고소득자도 0~2세 영아의 양육비 상한선은 고작 220만원입니다. 물가상승률은 고려되지 않고, 양육을 전담하는 친권자의 경력단절과 기회비용은 아예 논외입니다. 친권자가 양육을 전담함으로써 발생하는 경제활동 제한, 커리어 중단 등의 손실을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정우성씨 사안이 만약 소송으로 이어진다면 사안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위 기준표보다 높게 책정될 수 있을 것이지만, 일반적인 양육비분쟁은 위 기준에 따라 정해집니다.
이런 현실이 우리나라의 혼외 출산율을 OECD 최저 수준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의 혼외 출산율은 4.7%에 불과합니다. 프랑스 62.2%, 영국 49%, 미국 41.2%와 비교하면 충격적인 수치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혼외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제도적 미비가 이러한 현상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정우성의 선택이 특별한 사례가 아닌 하나의 트렌드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법과 제도는 여전히 1990년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가족 형태와 양육 환경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육비 미지급으로 생계곤란을 겪는 한부모 가정이 허다합니다. '배드파더스'라는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 사이트까지 등장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합니다. 법적 강제력이 미약한 현실에서, 양육비 지급을 거부하는 비양육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 방안이 시급합니다. 양육비 현실화는 물론이고, 양육 전담자의 기회비용을 보전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합니다. 면접교섭권 불이행에 대한 제재 방안도 마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의 건강한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합니다.
결혼은 선택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태어난 아이의 건강한 성장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이자 대한민국 미래와 직결된 부분입니다. 정우성의 선택을 둘러싼 논란이 우리 사회의 양육제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미래 세대의 건강한 성장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핵심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 I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제48회 사법시험 합격, 제40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IBK기업은행,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법무팀장으로 재직하며 다양한 법률 실무 경험을 쌓았다. 이후 故 구하라 유족 법률대리인으로 '구하라법' 입법 청원을 주도하여 2021년 법무부 장관상을 받았다.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동물자유연대 등기이사이자 국민권익위원회 행정심판 통합자문단 보상·보험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다수 TV 프로그램에 법률 자문을 하고 있다. 대학 동기이자 법무법인 존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윤지상 변호사와 함께 유튜브 채널 '상속언박싱'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