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만에 만났는데 모습이 똑같네, 같이 온 옆 사람이 달라졌구만?"

심봉사 역할의 배우 윤문식이 머리가 희끗한 한 여성 관객을 향해 농담을 던졌다. 좌중에선 '와하하' 웃음보가 터졌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마당놀이 모듬전> 시연회가 열렸다. 언론뿐 아니라 일반 관객에도 공개한 자리였다.

시연회 한 시간 전부터 극장 앞은 인산인해였다. 지팡이, 베레모의 어르신 관객과 20~30대 관객들이 한 자리에서 북적였다. 원형으로 이뤄진 하늘극장 객석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로 채워졌다.
사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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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초연 이래 2010년까지 마당놀이의 마스코트이자 인간문화재로 불리며 무대에 섰던 심봉사(윤문식), 놀보(김종엽), 뺑덕(김성녀) 세 사람도 돌아왔다. 국립극장이 창극단을 중심으로 2019년까지 공연을 올리긴 했으나, 이 세 사람을 그리워하는 관객들이 많았다고. 14년만에 마당놀이를 찾아온 세 사람을 보며 관객들은 폭소를 하고 추임새를 넣다 추억에 젖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사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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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문식(81), 김성녀(74), 김종엽(77)은 고령이지만 무대 위에선 젊은이에 뒤지지 않는 짱짱함을 자랑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 온몸에 넘치는 에너지로 20년은 젊어보였다. 폐암을 앓았던 윤문식과 얼마전까지 혹독한 감기로 1인극 '벽 속의 요정' 공연을 전 회차 취소했던 김성녀 모두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줬다. 마당놀이 무대에서 결혼식을 올리기까지했던 놀보 역할의 배우 김종엽은 홍보 역의 창극단원 유태평양과 주거니받거니 신들린 연기를 이어갔다.

<마당놀이 모듬전>은 그동안 <마당놀이>에서 다뤄왔던 우리 고전을 한데 망라한 종합선물같은 공연이다. 심청과 심봉사, 춘향과 몽룡, 흥보와 놀보의 이야기 등이 뒤섞였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인물들이 등장하기에 한국인이라면 무대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사랑을 속삭이는데 심봉사가 밥을 빌러 등장하거나 딸 청이를 잃은 심봉사 앞에 놀보가 심술을 떨며 나타나는 등 희극의 요소가 가득하다.
사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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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연출도 독특했다. 제작진은 부채꼴 형태의 기존 하늘극장 객석에 가설 객석을 더해 관객이 무대를 원형으로 완전히 감싸는 무대를 만들었다. 무대 상부에는 19m 천으로 만든 연꽃 모양 천막이 설치됐고 바닥에는 LED패널을 설치해 다양한 이야기 속 시공간의 변화를 영상으로 표현했다. 몽룡이 월매의 집에 왔을 때 LED패널 위에는 전통 문양의 화문석이 패널 위에 나타났다. 공연장 윗편에서 관현악단이 연주하고 있었다. 보통 서양의 오케스트라가 객석에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는 것과 대조됐다.
사진. ⓒ국립극장
사진. ⓒ국립극장
베테랑 세 배우들을 비롯해 58명의 단원들은 무대와 객석을 공연 내내 자유롭게 오갔다. 객석에 말을 거는 것은 물론, 관객이 입장하는 통로에서 배우들이 등장하고 퇴장을 반복했다. 몽룡 역할의 창극단원 김준수가 춘향이를 찾아 객석에 다가가자 한 여성 관객이 꽃받침을 하며 응하거나 월매의 불호령에 가까운 관객들이 놀라 쓰러지는 등,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는 공연이었다.

<마당놀이 모듬전>은 29일 개막해 내년 1월 30일까지 열린다. 윤문식 등 베테랑 배우들은 각자 배역을 나눔없이 '원 캐스트'로 이어갈 예정이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