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최근 확산된 유동성 위기설의 작성자와 유포자에 대해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한경DB
롯데그룹은 최근 확산된 유동성 위기설의 작성자와 유포자에 대해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한경DB
“롯데그룹이 12월 초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하고 전체 직원을 50% 이상 감원할 것이다.”

지난달 18일 이런 내용의 ‘유동성 위기설’이 소셜미디어로 퍼지자 롯데지주(-6.59%), 롯데케미칼(-10.22%), 롯데쇼핑(-6.6%) 등 롯데그룹 계열사 주가가 일제히 급락했다. 롯데는 사흘 뒤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며 그룹의 자금 사정을 속속들이 밝힌 설명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지난달 기준 그룹의 총자산은 139조원이며, 보유 주식 가치는 37조5000억원, 부동산 가치는 56조원, 즉시 꺼내쓸 수 있는 예금은 15조4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기업 유동성 위기? 현금이 부족하다는 뜻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유동성이라는 단어는 ‘돈’, ‘현금’이라는 말로 바꿔 이해하면 쉽다. “○○그룹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면 이 그룹은 돈이 모자라 빚을 갚기 힘든 상황이라는 뜻이다. 기업 입장에서 유동성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장사를 잘해 장부상으로 이익을 내고 있더라도 일시적으로 현금이 부족해 부도가 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를 ‘흑자도산’이라고 한다.

원래 경제학에서 유동성(liquidity)은 자산이 얼마나 쉽게 교환의 매개가 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특정 자산을 팔아 현금화하는 데 오래 걸릴수록, 또 자산을 서둘러 팔려면 시장가격보다 값을 많이 깎아 내놓아야 할수록 유동성은 떨어진다.

현금은 그 자체가 교환의 매개인 만큼 유동성이 가장 높다. 은행 통장에 들어 있는 현금은 정기예금이나 적금에 묶여 있는 돈보다 유동성이 높다. 수천억원짜리 업무용 빌딩은 아무나 매매하기 힘들기 때문에 유동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자산이라 할 수 있다.

유동성은 시중에 풀린 현금이라는 의미로도 많이 쓴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면서 기업 실적과 무관하게 주가를 끌어올리는 현상을 ‘유동성 장세’라고 부른다.

금리를 인하해도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고, 사람들의 화폐 보유만 늘어나는 현상은 ‘유동성 함정’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경기부양 효과를 내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금리가 더 하락하기 힘든 바닥까지 내려갔다면, 사람들은 금리가 언젠가 다시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현금을 비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롯데, ‘양대 축’ 유통·화학 부진이 위기설로 비화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증권가에서는 “롯데그룹의 주력 사업인 유통과 화학이 부진에 빠진 건 맞지만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로 보는 것은 과장됐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롯데쇼핑 매출은 2021년 15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14조5000억원으로 줄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전통적 오프라인 매장이 위축되면서 유통 산업 자체가 재편되고 있는 영향이다. 롯데케미칼은 2021년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거뒀으나 2022년 7000억원, 지난해 3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각각 냈다. 중국의 공격적 설비 증설로 인한 공급과잉과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수요 부진이 겹쳐 석유화학 기업마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