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값 또 올라, 19세기로 후퇴한 쿠바 설탕 산업 탓? [원자재 포커스]
설탕 선물 가격이 지난 9월 이후 파운드당 20센트 이상을 유지하며 고공행진하고 있다. 2010년대 후반 설탕 가격은 지금의 절반에 가까운 파운드당 10센트대 초반에 불과했다. 설탕값 상승엔 공산주의 국가 쿠바의 사탕수수 농업과 설탕 산업 몰락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16세기부터 사탕수수를 재배한 쿠바는 한 때 설탕 생산량이 세계 최대였고, 2011년까지 정부에 '설탕 산업부'가 있었던 국가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쿠바의 내년 설탕 생산량이 올해보다 5만톤(t) 줄어든 30만t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2019년 생산량 190만t과 비교하면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며, 쿠바의 19세기 후반 생산량과 비슷한 규모다. 지역 공산당 신문에 따르면 한때 설탕 주요 산지였던 동부 라스투나스 지방은 2020년 12월부터 2024년 6월까지 3년 반 만에 사탕수수 재배 면적이 48%나 감소했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 외곽의 한 사탕수수 농장 옆에서 말을 타고 지나가는 농부. / 사진=Reuters
쿠바의 수도 아바나 외곽의 한 사탕수수 농장 옆에서 말을 타고 지나가는 농부. / 사진=Reuters
쿠바의 설탕 산업은 냉전 시절까지 옛 소련의 지원으로 번성했다. 1970년대 연간 설탕 생산량은 800만t에 달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고 서방의 제재가 점차 심해지면서 시련이 닥쳐왔다. 젊은이들이 관광 산업에 몰리면서 노동력까지 부족해졌다. 브라질, 인도의 부상으로 세계시장 점유율은 1%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도 2010년대 후반까지 연 150만~200만t의 설탕 생산량을 유지하며 중국과 유럽연합(EU) 등에 원당을 수출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최대 압력' 정책으로 제재를 대폭 강화한 탓에 쿠바에서 연료, 비료, 농기계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설탕 산업은 사실상 붕괴했다. 1959년 161곳에 달했던 설탕 공장도 불과 20곳만 남았다. 결국 2022년엔 생산량이 정부 계획의 절반에 불과한 48t까지 떨어지면서 내수 소비용 설탕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쿠바 시엔푸에고스 지역 사탕수수 농민 미겔 구즈만 씨는 지난 5월 BBC방송과 인터뷰에서 "옛 소련 시대에 제조된 트럭을 아직도 쓰고 있고 그마저 구하기 어렵다"며 "연료도 부족해 일하러 가려고 며칠을 기다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편 설탕 선물 가격이 최근 파운드당 20센트를 웃도는 데는 브라질 작황 악화 우려도 큰 영향을 미쳤다. 브라질 중남부 사탕수수 재배지는 장기간 가뭄이 끝나자 곳곳이 폭우에 휩쓸렸다. 사탕수수 생산 부진으로 많은 설탕 공장이 폐업하거나 가동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현일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