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낭만, 헛된 꿈을 위한 비상
발레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태동해 러시아에서 기틀을 잡는 동안 북유럽에서도 발레를 향한 애정이 깊어갔다. 애정의 뿌리가 뻗어나갈 수 있게 된 데에는 무용수 부자(父子)가 있었다. 프랑스 출신 무용수인 아버지 앙투안 부르농빌(1760~1843)과 아들 오귀스트 부르농빌(1805~1879)이다. 특히 아들 오귀스트는 발레에서 ‘북유럽의 신화’를 만들어낸 사람이다.

신화의 시작은 역시 사랑이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는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의 제2대 국왕 구스타프 3세가 창설한 스웨덴왕립발레단이 있다. 한강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선사한 그 스웨덴 말이다.

구스타프 3세의 초청으로 스웨덴왕립발레단 감독으로 활동한 앙투안 부르농빌은 구스타프 3세가 암살당하자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가던 그 길에 잠시 들른 덴마크에서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 그 무용수와는 결국 헤어졌지만, 그는 남은 생애를 덴마크에서 보냈고, 덴마크왕립발레단에서 융성한 활동을 펼쳐 나갔다. 그의 두 번째 아내 사이에서 아들 오귀스트가 태어났다. 무용수의 피를 물려받은 아들은 춤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아버지의 고향인 프랑스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다시 덴마크로 돌아와 북유럽 발레를 정립했다. 스웨덴왕립발레단에서 게스트 발레마스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아들 오귀스트가 정립한 북유럽 발레는 고유의 색깔이 있다. 이탈리아 발레가 화려하고, 프랑스 발레가 황실의 기품을 담고 있고, 러시아 발레가 인간의 몸을 과학적이고 확장적으로 사용하고, 미국 발레가 역동적이라면, 북유럽 발레는 무대 위에서 무중력의 움직임을 실현함으로써 몽환, 낭만, 환영을 자아냈다. 북유럽 발레의 특징은 오귀스트의 안무작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역동적인 점프보다 가볍게 공기를 가르는 점프를 선보였고 테크닉 면에서는 아상블레, 브리제, 가브리올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다.

아상블레는 ‘모으다’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한 다리로 바닥을 쓸어서 나갔다가 공중에서 두 다리가 만나서 모아진 후에 착지하는 동작이다. 브리제는 두 다리를 모은 상태에서 상체를 살짝 기울여 공중으로 몸을 띄우되, 뒷다리가 공중에서 앞다리를 만나 교차한 후에 내려오는 동작이다. 이 동작은 뒤로하기도 하는데 제자리가 아니라 이동하면서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가브리올은 앞이나 뒤로 차올린 다리를 나머지 다리가 따라붙듯이 부딪히고 내려오는 동작이다.

이들 동작은 공중에 가볍게 뛰어올라야 하는 게 특징이라 움직일 때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자아내야 하기 때문에 큰 동작 못지않게 근력과 풀업이 몸에 장착돼 있어야 한다. 큰 스텝이나 회전과는 다른, 발레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동작들이다.

‘라실피드’에서는 요정의 어른거리는 환영이 아름답게 펼쳐지는데 특히 오귀스트가 재안무한 버전은 남성 무용수의 매력을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게 한다. 선이 굵고, 힘차고, 강하고, 에너지가 폭발하는 미를 추구하지 않고 요정과 사랑에 빠진 인간의 꿈, 요정을 따라잡기 위해 숲을 헤매며 허공에 사뿐 뛰어오르는 낭만적 자태, 작고 빠른 발놀림 사이에서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낭만 발레’라고 이름 붙인 것도 당연지사다.

‘라실피드’에서 요정을 쫓아가는 인간의 헛된 꿈도 낭만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는 아름답게 느껴진다. 두 다리를 모아 중력이 없는 듯이 공중에서 날아오르는 그 몸짓처럼, 한 해의 기억을 아상블레 하는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