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인간이 돈을 만들었나, 돈이 인간을 만들었나?
돈이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물물교환 방식으로 거래하던 초기 인류 시대부터 금과 같은 금속이 돈으로 자리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중세 이후 지폐가 등장해 돈은 더욱 날개를 달기 시작했고, 상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금융 시스템이 발달했다.

21세기 접어들어 인터넷과 디지털 경제가 자리 잡으면서 돈은 또 한 번 커다란 변화를 맞았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암호화폐가 등장하자 돈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이렇듯 돈은 오랜 기간 인류와 함께하면서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지난 9월 영국에서 출간된 <돈, 인류의 이야기(Money: A Story of Humanity)>에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돈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국의 흥망성쇠, 정치 시스템, 산업혁명, 기술 혁신 등 역사적 변화에 따라 지난 5000년 동안 돈이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했는지 소개한다.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인간이 돈을 만들었나, 돈이 인간을 만들었나?
돈의 역사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역사로 이어지며, 돈을 만든 인간이 돈에 어떻게 지배당하는지, 그 흥미진진한 과정이 펼쳐진다. 영국을 대표하는 서점 워터스톤스를 비롯한 영국의 주요 언론은 이 책을 ‘올해의 논픽션 도서’로 꼽았다.

저자인 데이비드 맥윌리엄스는 아일랜드 출신 경제학자다. 아일랜드 중앙은행과 스위스 투자은행 UBS 등 금융시장에서 일한 전통 경제학자인 그는 대중이 어려워하는 경제학의 빗장을 풀고 많은 사람이 쉽고 재미있게 경제에 접근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스탠드업 코미디 페스티벌 ‘킬케노믹스(Kilkenomics)’를 주최해 운영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가 킬케노믹스를 ‘세계 최고의 경제학 콘퍼런스’라고 설명할 정도로, 매년 킬케노믹스에는 전 세계 경제학자들이 몰려와 지식의 향연을 벌인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 논문이 아니라 ‘경제학’ 논문의 영향을 받았다. 다윈은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고 모든 생물체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한다는 개념을 가져왔다. ‘자원의 제한’이 생물체 간의 경쟁을 유발하고, 경쟁 속에서 특정 형질이 점진적으로 선택된다는 ‘자연 선택 이론’은 경제학에서 유래했다.

꿈과 환상 동화로 알려진 ‘오즈의 마법사’는 19세기 말 미국의 ‘금본위제도’ 아래에서의 정치 현실을 풍자한 작품이다. 작품에는 정치인과 금융인 사이의 갈등이 실감 나게 표현돼 있다. 그런가 하면, 히틀러는 영국 경제를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들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위조지폐를 제조했다. 저자는 이런 사례를 열거하면서 돈을 향한 인간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보여준다.

돈은 인간에게 자유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한다. 돈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고 우리를 타락시키기도 한다.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고대 그리스의 동전, 중세 아랍 세계의 수학,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혁명, 프랑스혁명, 달러의 등장, 그리고 오늘날 암호화폐에 이르기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인간이 돈을 만들었나, 돈이 인간을 만들었나?
까지 책에는 ‘욕망의 대상’이자 ‘천재성의 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 돈이 창조해낸 역사가 펼쳐진다. 돈으로 혁신을 일으킨 인물과 돈으로 사회를 파괴한 여러 인물의 초상을 소개한다. 인간이 돈을 바꾼 것이 아니라 돈이 인간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