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트럼프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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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업가'로 알려진 트럼프
타고난 장사꾼도 못 피한 불황
잇단 법인 파산에도 생존
'기업가 정신' 높이 사는 미국
한국은 배임죄에 상법 개정까지
모험도 재기도 점점 어려워져
정소람 정치부 차장
타고난 장사꾼도 못 피한 불황
잇단 법인 파산에도 생존
'기업가 정신' 높이 사는 미국
한국은 배임죄에 상법 개정까지
모험도 재기도 점점 어려워져
정소람 정치부 차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인생을 가장 많이 수식한 단어 중 하나는 ‘성공한 사업가’일 것이다. 미국 뉴욕 5번가 억만장자 거리에서도 가장 비싼 입지에 자리한 68층짜리 ‘트럼프타워’는 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이다. 거대한 인공폭포와 번쩍번쩍한 순금 자재가 덧대진 화려한 내관이 인상 깊은 곳이다. 트럼프는 이 건물 꼭대기 3개 층을 펜트하우스로 사용한다.
명품 주얼리 브랜드인 티파니 매장이 자리해 ‘티파니 코너(Tiffany’s corner)’로 불리던 이곳에서 30대의 젊은 트럼프는 “이 블록을 통째로 사서 내 이름을 붙인 건물을 올리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실제 그는 1978년 티파니 인근의 11층짜리 백화점 부지를 사들인 뒤 초대형 복합 빌딩 개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뉴욕시가 갑자기 그런 변화를 허용해줄 리 없었다. 용적률 규제에 부딪힌 그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7층 높이인 티파니 매장의 ‘공중권’을 사들이자는 것이었다. 용적률 제한만큼 건물을 높이 올리지 않았던 티파니로부터 ‘고층 증축을 할 권리’를 사들여 자신의 건물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허공’에 시장 가치를 부여한 셈이다. 그때부터 일상화된 공중권 거래는 전 세계 사람들이 눈에 담기 위해 몰려드는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했다.
언론은 트럼프를 “항상 과장된 용어를 쓰는, 타고난 장사꾼”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장사꾼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던 시기였다. 증시가 급등하고 모두가 소비에 눈뜨던 1980년대 그가 손댄 건 오락 사업이었다. 뉴저지주 ‘트럼프플라자’를 시작으로 초호화 카지노를 잇따라 짓고, 내친김에 미식축구팀까지 인수해 구단주가 됐다.
그러나 1988년 뉴저지 타지마할 카지노를 인수한 이듬해 금융시장은 급격히 위축됐다. 첫 달부터 대출금을 갚지 못할 위기를 앞두고 누군가 350만달러 규모의 칩을 산 뒤 홀연히 사라졌다. 꼭 갚아야 하는 원리금만큼이었다. 이 사건은 건설업자였던 그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 쪽 인사의 도움으로 알려져 있다. ‘금수저’였기에 겨우 넘은 위기였다.
사업가로서 트럼프의 성공은 사실 여기서 끝이다. 1991년 새로 단장해 문을 연 ‘트럼프 타지마할 카지노’는 1년 만에 파산을 신청했고, 이후로 다른 카지노와 호텔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2009년 트럼프는 그룹 경영에서도 완전히 손을 뗐다. 여섯 번의 법인 파산 끝에 그의 손아귀에 남은 회사는 없었다. 코미디쇼에선 “뭐든 비싸게 사는 데 재능이 있는 인물”이라며 조롱의 대상이 됐다. 알려진 것보다 긴 어둠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2024년의 미국은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물을 대통령으로 또다시 선택했다. 성추문 입막음 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사법 리스크’도 지난 25일 미국 검찰이 항소를 포기함에 따라 일거에 해소됐다. 법치주의가 살아있는 국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기업가 정신이 있는 이에게 꾸준히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국가였기에 이런 영화 같은 스토리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리한 베팅이 법인 파산으로 이어졌음에도 트럼프는 경영 실패에 대한 ‘형사 책임’을 지지 않았다. 적법한 채무 조정 절차를 밟고 그룹의 오너십을 반납했을 뿐이다. 이후에도 ‘트럼프’라는 브랜드 라이선스는 인정돼 로열티 수익을 얻었고, 개인 파산은 하지 않았기에 펜트하우스 등 자신이 일군 재산도 지켜냈다.
만약 트럼프가 한국에서 같은 삶을 살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잘못된 경영 판단으로 회사와 주주에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 혐의가 곧바로 그를 형사재판으로 끌고 갔을 것이다. 법인 파산 시 개인 재산은 보호하는 게 원칙이지만, 초호화 펜트하우스를 소유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으니 사재 출연으로 ‘죗값’을 치러야 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망한 회사의 브랜드에 ‘로열티’를 허용하고, 실패를 수없이 맛본 경영인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세운다는 건 더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요즘 야권은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까지 추진 중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인이 경영상 과감한 판단을 내리는 건 더욱 어려워진다. 주주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하지 않는 ‘모험’은 그대로 ‘교도소 담장 문을 걷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억세게 운이 좋았던 트럼프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행운은 실패한 전력 이전의 기업가 정신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곳에서 인생을 보냈다는 점이다. 한국이었다면 그의 성공 신화는 아마도 옥중에서 막을 내리지 않았을까.
명품 주얼리 브랜드인 티파니 매장이 자리해 ‘티파니 코너(Tiffany’s corner)’로 불리던 이곳에서 30대의 젊은 트럼프는 “이 블록을 통째로 사서 내 이름을 붙인 건물을 올리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실제 그는 1978년 티파니 인근의 11층짜리 백화점 부지를 사들인 뒤 초대형 복합 빌딩 개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뉴욕시가 갑자기 그런 변화를 허용해줄 리 없었다. 용적률 규제에 부딪힌 그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7층 높이인 티파니 매장의 ‘공중권’을 사들이자는 것이었다. 용적률 제한만큼 건물을 높이 올리지 않았던 티파니로부터 ‘고층 증축을 할 권리’를 사들여 자신의 건물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허공’에 시장 가치를 부여한 셈이다. 그때부터 일상화된 공중권 거래는 전 세계 사람들이 눈에 담기 위해 몰려드는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했다.
언론은 트럼프를 “항상 과장된 용어를 쓰는, 타고난 장사꾼”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장사꾼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던 시기였다. 증시가 급등하고 모두가 소비에 눈뜨던 1980년대 그가 손댄 건 오락 사업이었다. 뉴저지주 ‘트럼프플라자’를 시작으로 초호화 카지노를 잇따라 짓고, 내친김에 미식축구팀까지 인수해 구단주가 됐다.
그러나 1988년 뉴저지 타지마할 카지노를 인수한 이듬해 금융시장은 급격히 위축됐다. 첫 달부터 대출금을 갚지 못할 위기를 앞두고 누군가 350만달러 규모의 칩을 산 뒤 홀연히 사라졌다. 꼭 갚아야 하는 원리금만큼이었다. 이 사건은 건설업자였던 그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 쪽 인사의 도움으로 알려져 있다. ‘금수저’였기에 겨우 넘은 위기였다.
사업가로서 트럼프의 성공은 사실 여기서 끝이다. 1991년 새로 단장해 문을 연 ‘트럼프 타지마할 카지노’는 1년 만에 파산을 신청했고, 이후로 다른 카지노와 호텔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2009년 트럼프는 그룹 경영에서도 완전히 손을 뗐다. 여섯 번의 법인 파산 끝에 그의 손아귀에 남은 회사는 없었다. 코미디쇼에선 “뭐든 비싸게 사는 데 재능이 있는 인물”이라며 조롱의 대상이 됐다. 알려진 것보다 긴 어둠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2024년의 미국은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물을 대통령으로 또다시 선택했다. 성추문 입막음 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사법 리스크’도 지난 25일 미국 검찰이 항소를 포기함에 따라 일거에 해소됐다. 법치주의가 살아있는 국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기업가 정신이 있는 이에게 꾸준히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국가였기에 이런 영화 같은 스토리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리한 베팅이 법인 파산으로 이어졌음에도 트럼프는 경영 실패에 대한 ‘형사 책임’을 지지 않았다. 적법한 채무 조정 절차를 밟고 그룹의 오너십을 반납했을 뿐이다. 이후에도 ‘트럼프’라는 브랜드 라이선스는 인정돼 로열티 수익을 얻었고, 개인 파산은 하지 않았기에 펜트하우스 등 자신이 일군 재산도 지켜냈다.
만약 트럼프가 한국에서 같은 삶을 살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잘못된 경영 판단으로 회사와 주주에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 혐의가 곧바로 그를 형사재판으로 끌고 갔을 것이다. 법인 파산 시 개인 재산은 보호하는 게 원칙이지만, 초호화 펜트하우스를 소유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으니 사재 출연으로 ‘죗값’을 치러야 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망한 회사의 브랜드에 ‘로열티’를 허용하고, 실패를 수없이 맛본 경영인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세운다는 건 더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요즘 야권은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까지 추진 중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인이 경영상 과감한 판단을 내리는 건 더욱 어려워진다. 주주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하지 않는 ‘모험’은 그대로 ‘교도소 담장 문을 걷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억세게 운이 좋았던 트럼프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행운은 실패한 전력 이전의 기업가 정신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곳에서 인생을 보냈다는 점이다. 한국이었다면 그의 성공 신화는 아마도 옥중에서 막을 내리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