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성 관절염 치료제인 ‘인보사케이주’ 성분 조작 의혹으로 기소된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인 ‘인보사케이주’ 성분 조작 의혹으로 기소된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 성분 조작 의혹으로 기소된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에게 1심 법원이 혐의 대부분에 무죄를 선고했다. 2020년 7월 기소된 지 4년 만의 결정이다.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은 과도한 추론에 기반했다”고 지적하며 과학적 연구와 관련한 보건당국과 검찰의 기소 만능주의 행태에 일침을 가했다.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최경서)는 자본시장법 위반, 약사법 위반 등 7개 혐의를 받는 이 회장과 전 코오롱생명과학 경영진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 회장에게 징역 10년과 벌금 5000억원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 대부분이 증거 불충분”이라며 무죄로 판단했다.

이른바 ‘인보사 사태’는 2019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코오롱생명과학이 제조·판매한 인보사 판매 허가를 취소하면서 불거졌다. 코오롱이 식약처 허가 당시 ‘연골세포’라고 기재한 성분이 실제로는 ‘신장유래세포’였다는 게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승인 과정에서 확인된 것이다. 신장유래세포가 종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여론이 일자 식약처는 판매 허가를 취소하고 코오롱과 임원진을 형사 고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실을 경영진이 인보사 사태가 불거진 2019년 3월 이전에 인지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미국과 한국 당국의 조치를 비교하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재판부는 “미국은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검토해 우려가 해소되자 임상시험을 재개한 반면 한국은 취소 처분 후 수년간 형사 재판만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년에 걸쳐 막대한 인원이 투입된 소송의 의미가 무엇인지, 과학기술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사태 해결보다 법정 다툼부터 시작한 식약처와 검찰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4년 소송리스크' 이웅열 회장 6건 혐의 1심서 모두 무죄
韓식약처 섣부른 취소도 비판

4년에 걸친 ‘인보사 사태’ 수사와 재판 결과는 검찰의 완패로 끝났다.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법원은 검찰이 제기한 모든 혐의를 ‘증거 불충분’이라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과학적 검증은 뒷전인 채 형사처벌에만 매달린 보건당국과 검찰의 대응을 이례적으로 비판했다.

○성분 조작 의혹 모든 혐의에 ‘무죄’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최경서)는 성분 착오에 대한 형사처벌은 과하다고 판단했다. “서류상 품목허가 성분과 실제 제조·판매된 성분이 상이하다는 이유만으로 범죄행위로 단정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인보사는 2019년 3월 2액 성분이 연골세포가 아니라 신장유래세포로 확인돼 논란이 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품목허가 과정의 시험 제품과 완전히 동일했고 제품 자체가 변경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경영진이 성분 착오를 알게 된 시점이 2019년 3월 이후로, 제품 제조·판매보다 훨씬 늦다”며 고의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 회장 등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성분이 다른 인보사를 판매해 매출 160억원을 올렸다고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서류와 실제 제품의 차이만으로는 범죄로 볼 수 없다”며 “오히려 허가 과정의 시험 제품과 실제 판매 제품이 동일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임상보류 명령(CH)을 받은 사실을 숨기고 투자금을 유치했다는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일부 내부 문건을 제외하고는 조직적으로 은닉했다는 증거를 확인하기 어렵고, 오히려 담당자들이 이를 명시적으로 알린 정황도 있다”고 설명했다. 코오롱티슈진 상장 과정의 허위공시 혐의도 “회계기준 위반을 찾기 어렵다”며 배척했다.

이 회장에게 인정된 유죄는 과거 그가 코오롱생명과학 주식을 차명으로 관리한 혐의(금융실명법 위반)였지만, 이미 2019년에 다른 사건으로 확정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로 면소(소를 진행할 이유가 없어 소를 끝냄) 판결을 내렸다. 당시 이 회장에게 명의를 빌려준 송문수 전 네오뷰코오롱 사장만 이날 벌금 1000만원을 받았다.

○“韓·美 대응 달랐다” 이례적 비판

재판부는 특히 인보사 성분 조작 의혹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상반된 대응을 지적했다. FDA는 성분 착오 발견 후 임상 3상을 중단시켰지만, 1년간 과학적 검증을 거쳐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다시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현재는 임상 3상을 정상 진행 중이다.

반면 한국은 과학적 검증을 뒤로한 채 즉각 허가를 취소하고 형사처벌에 나섰다. 재판부는 “신약 개발 절차가 한국보다 엄격한 FDA는 안전성 우려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반면 한국은 행정소송과 형사재판이 수년간 이어지고 있으며, 검사가 주요 쟁점으로 삼는 1차 임상 중단 등은 공소 제기 전에 이미 해결됐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1심과 동일하다면 수년에 걸쳐 막대한 인원이 투입된 소송의 의미가 무엇인지, 과학에 대한 사법적 통제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특수성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의약품 개발 과정의 시행착오를 모두 범죄로 볼 수는 없다”며 “과학기술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날 재판부 판단을 두고 보건당국과 검찰의 행정편의적 접근을 향한 일침이라고 평가했다. 신약 산업의 특수성을 간과한 경직된 접근이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기업에 대한 무리한 기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코오롱 관계자는 “재판부 판단을 존중하고 감사의 뜻을 표한다”며 “사실 관계를 정확히 전달해 인보사의 FDA 품목 허가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