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지구에 불시착한 우주선’으로 조롱받던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이제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퉈 행사를 여는 ‘핫플레이스’로 거듭났다. 올해 방문객은 1542만5706명(11월 누적 기준)으로 이미 작년 전체(1373만5582명) 규모를 뛰어넘어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DDP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이라크 출신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유작이다. 그의 건축사무소(자하하디드아키텍츠)에서 일하며 DDP를 서울의 보물로 빚어낸 인물이 바로 크레이그 카이너 수석건축가다. 그는 2009년 DDP 프로젝트 추진 당시 전체 공정을 관리·감독하는 총괄프로젝트매니저로 활약했다.

최근 DDP 개관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2024 서울디자인국제포럼’에 초청받아 서울을 찾은 그를 지난 28일 DDP에서 만났다. 카이너 수석건축가는 DDP 건립 과정에서 나온 각종 여론의 비판에 대해 “그럴수록 맞는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대중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속성이 있고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한 나머지 강하게 비판하기도 한다”며 “이 같은 사례는 역사적으로 반복돼 왔다”고 덧붙였다.
지난 28일 크레이그 카이너 건축가가 서울의 명소로 거듭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때를 회상하며 웃음을 짓고 있다.  최해련 기자
지난 28일 크레이그 카이너 건축가가 서울의 명소로 거듭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때를 회상하며 웃음을 짓고 있다. 최해련 기자
▷DDP가 개관 10년 만에 누적 방문객 1억 명을 넘었다. DDP의 매력이 무엇인가.

“DDP는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인 건축물이다. 다만 디자인은 건축 ‘덕후’들이나 끌리는 요소다. 외관보다도 내부에서 벌어지는 프로그램이 매력적이어서 인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명품 시계 카르티에와 협업한 전시회나 숙박 공유 에어비앤비와 함께 전시홀을 ‘K팝 아이돌의 방’으로 꾸미는 등 흥미로운 콘텐츠 시도가 많았다. 시민들이 아무 때나 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매거진 라이브러리나 휴식 공간인 ‘D-숲’ 등이 인상적이다. DDP의 흥행은 건축물 자체보다 공간을 효과적으로 운영한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의 공이 크다.”

▷관광객뿐 아니라 명품 브랜드가 쇼를 열기 위해 줄은 서는 공간이 됐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마케팅 부서에는 저마다 트렌드에 민감한 인재들이 근무한다. 글로벌 트렌드를 잘 관찰하며 제품을 팔기 위해 노력한다. 세련된 장소나 이미지를 활용해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건축학적으로 도시 내 상징적이고 매력적인 장소는 이를 가능하게 한다.”

▷DDP의 흥행을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프로젝트가 성공하기를 바랐다. 성공을 방문자 수로 측정한다면 DDP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반대도 많았다. 디자인이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셌다. 당시 이런 여론에 동요되지는 않았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이 ‘환유적 풍경’ 프로젝트가 이곳 부지에 잘 어울리고 적합한 주제라고 믿었다. 하디드가 그랬듯 우리 사무소는 틀을 부수는 걸 좋아한다.”

▷무엇이 틀을 부수는 설계였나.

“우리는 중앙 공간(어울림 광장)을 두 개의 전시장 사이 로비처럼 활용했다. 그래서 그 입구 공간의 효율성을 최대화하려고 노력했다. 전시홀은 공간상 나란히 배치할 수 없어서 위아래로 쌓아 올렸다. 그 전시홀을 연결하기 위해 미로 같은 나선형 길이 생겼다. 건설 당시에는 상당히 이례적인 디자인이었다. 항상 시대를 앞서 나가는 독특한 장소를 만드는 것은 문화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상당히 중요하다.”

▷DDP는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내년부터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 서울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런 진화를 예상했나.

“흥미롭다. 건설 과정에서 지붕 위로 가는 경로를 만드는 걸 검토해 달라고 요청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건물 외벽에 난간과 손잡이를 만들어야 했는데 현재 DDP의 곡선 형태, 이 부드러운 흐름을 해칠 것 같았다. 우리는 형태를 보존하는 게 우선이었다.”

▷서울은 더 많은 랜드마크를 짓고 있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서울시는 어떻게 답해야 하나.

“서울은 런던처럼 글로벌하고 역동적인 도시다. 인재, 자본, 아이디어가 이곳으로 쏠린다. DDP 같은 공간이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아름다운 장소는 이처럼 기회를 모으지만 언제나 대체재가 있을 수 있다. 서울은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 등 세계적인 도시와 경쟁한다. 좋은 사람과 기업을 끌어모으고 이들을 선점하려면 앞서 나가야 한다. 독창적이고 세련된 문화 공간이 좋은 도구다. 너무 편안해지거나 안일해지지 않도록 관습에 도전해야 도시가 발전한다.”

▷서울시는 노들섬 문화복합공간, 대관람차(서울링), 한강 수상호텔 등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반대 여론도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대중의 우려를 덮기보다는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소통하고 설득해야 한다. 갈등을 회피하는 대신 새로운 건축물이 생겨남으로써 생기는 혜택에 관해 지속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최해련 기자

■ 크레이그 카이너 수석 약력

△1983 미국 켄트주립대 건축학교(학사)
△1989 미국 하버드 디자인 스쿨(석사)
△1989 영국 Zaha Hadid Architects (ZHA) 입사

■ 주요 프로젝트

△대한민국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중국 청두, 유니콘 아일랜드 마스터플랜
△체코 프라하, 마사리츠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