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지' /사진=쇼노트 제공
뮤지컬 '리지' /사진=쇼노트 제공
뮤지컬 '리지'가 또 한 번 매혹적인 서사와 에너지로 관객들을 끌어당겼다.

'리지'는 지난 9월 14일 개막해 약 3달간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작품은 미국 전역을 충격으로 빠뜨린 미제 살인 범죄 '리지 보든 사건'을 소재로 한다. '리지 보든 사건'은 1892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으로 보든 부부가 도끼에 살해당하고, 현장을 처음 목격한 보든가(家)의 둘째 딸 리지 보든이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지만 정황 증거 외에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무죄로 석방된 일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리지'가 뮤지컬로 만들어진 건 1990년이었다. 당시 단 4곡의 록 퍼포먼스로 시작해 20년간의 작품 개발을 거쳐 2009년 뉴욕에서 초연됐다. 이후 미국, 유럽 등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2020년 한국 관객들과도 만났다.
뮤지컬 '리지' /사진=쇼노트 제공
뮤지컬 '리지' /사진=쇼노트 제공
뮤지컬 '리지' /사진=쇼노트 제공
뮤지컬 '리지' /사진=쇼노트 제공
이번 한국 공연은 세 번째 시즌으로, 잔혹하면서도 매혹적인 '리지'만의 매력을 제대로 무대에 펼쳐냈다. 작품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꼽히는 건 흡인력 있는 스토리, 이를 극대화하는 세밀한 연출과 인물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청각화해 전달하는 록 음악이다.

1막은 어둡고 내밀하고 스산하다. 잔혹하게 살해된 보든 부부, 죽음에 사용된 도구마저 도끼라니 충격적이고 무섭다. 여기에 용의자로 지목된 리지 보든의 삶은 억압됐고, 아프고, 또 괴롭다. 어둠이 깔린 무대 위 스탠드마이크 앞에서 노래하는 인물들의 표정은 서늘하다.

본격적인 전개는 보든 부부가 죽은 뒤부터 시작된다. 풍성한 드레스에 도끼를 든 리지. 모든 상황이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리지의 언니 엠마, 가정부 브리짓, 이웃 앨리스의 증언은 사뭇 다르다. 관객들도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리지가 도끼를 휘두르며 분노를 터트릴 때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매혹적인 '리지'가 눈 앞에 펼쳐진다.

리지의 내면과 환경을 촘촘하게 묘사하던 1막을 지나, 2막에서는 인물들 간의 관계 및 리지가 무죄를 받는 과정까지의 서사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1막에서 소리를 내지르던 리지의 모습이 '절규'에 가까웠다면,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로커로 변신해 돌아온 2막에서의 그의 노래는 '해방'과 어울린다. 리지라는 인물에게 부여한 서사 자체가 록 음악이 갖는 분위기, 매력과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여기에 점차 견고해지는 인물 간의 연대가 더해지면서 관객들의 심장까지 뛰게 만든다.
뮤지컬 '리지' /사진=쇼노트 제공
뮤지컬 '리지' /사진=쇼노트 제공
뮤지컬 '리지' /사진=쇼노트 제공
뮤지컬 '리지' /사진=쇼노트 제공
재연에 이어 이번에도 앨리스 역으로 출연한 그룹 우주소녀 유연정은 앞선 인터뷰에서 "'리지'의 소개를 보면 단순 호러, 스릴러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결국 마지막에 주는 메시지는 위로와 희망이다. 살인을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리지가 아픔을 딛고 자유로워지고, 여자들이 당당해지고 갑갑한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힘을 찾는 메시지가 더 많이 보였으면 했다. 그런 게 '리지'만의 매력"이라고 밝혔었다.

작품의 백미로 꼽히는 건 커튼콜이다. 모든 관객이 기립해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쏟아내며 록 스피릿을 불태우는 배우들과 함께 호흡한다. 떼창이 터질 때면 마치 록 콘서트장에 온 듯한 느낌까지 든다. 초연과 재연을 거쳐 삼연까지 훌륭한 여정을 이어온 '리지'의 다음이 더 기대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