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부 랭스 생브리스쿠르셀의 아르셀로미탈 철강 공장 근로자들이 지난 25일 사업장 정문 앞에 몰려 나와 본사의 공장 폐쇄 방침에 항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 북부 랭스 생브리스쿠르셀의 아르셀로미탈 철강 공장 근로자들이 지난 25일 사업장 정문 앞에 몰려 나와 본사의 공장 폐쇄 방침에 항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럽 양대 철강 기업인 아르셀로미탈과 티센크루프스틸이 잇따라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중국산 철강재가 자국 불황 때문에 더욱 낮은 가격에 수출되면서 관세를 뚫고 시장에 범람한 여파로 풀이된다. 유럽 철강사들의 주요 고객사인 폭스바겐 르노 시트로앵 등 유럽 자동차 업체들의 영업 부진으로 수요 감소까지 겹치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지난 6월 총선을 치른 유럽연합(EU)은 다음달 새 집행부가 구성되는대로 산업 보호 대책 마련에 나설 전망이다.

○문닫는 유럽 제철소

2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세계 2위 철강기업인 유럽 아르셀로미탈은 지난주 프랑스 북부 랭스와 드냉 지역 공장 두 곳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내년 4월부터 감원을 시작하고, 6월까지 생산을 완전 중단하기로 했다. 노동조합 측이 반대하고 있으나 회사 측은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더 이상 영업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르셀로미탈은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프랑스와 스페인 벨기에, 브라질, 멕시코 등 세계 각지에 생산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한해동안 6852만톤(t)의 철강을 생산했다. 이는 중국 바오우스틸에 이어 글로벌 2위 규모다.

앞서 아르셀로미탈 경영진은 영업환경 악화에 대응해 수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던 탄소중립 프로젝트를 연기·재검토한다고 발표하는 등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당초 프랑스 정부로부터 8억5000만유로의 보조금을 포함해 17억유로를 투자해 2030년까지 덩게르크와 포스쉬르메르 공장에 수소환원제철소를 설치하고, 전기로를 확대하기로 했다. 아르셀로미탈은 노조 등과 협의 후 2025년 1분기 최종 계획을 내놓을 계획이다.

독일 티센크루프스틸도 25일 전 직원 2만7000명 가운데 40%에 달하는 1만1000명의 인력을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독일 정부가 탈원전을 한 탓에 러시아산 가스가 끊긴 후 전기 요금이 폭등하는 등 악재가 발생해 수년간 영업손실이 이어진 탓이다. 티센크루프스틸은 연간 생산량을 현재 1150만t에서 870만~900만t으로 줄이고, 업무를 효율화해 수년 내 인건비를 평균 10% 절감한다는 계획이다. 티센크루프스틸은 “2030년까지 약 5000명을 감원하고, 추가로 6000개 일자리는 외주로 전환하거나 사업부를 매각해 줄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한 뒤스부르크 지역 자회사인 크루프마네스만 제철소는 매각할 예정이다. 500여 명이 근무하는 크로이츠탈아이헨 공장도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EU, 긴급 보호조치 강구

유럽철강협회 유로퍼(Eurofer)와 각국 정부는 EU에 산업 보호조치를 요청하고 있다. EU는 이미 지난달부터 수입 철강, 시멘트 등에 이산화탄소 배출에 비례한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세 1단계를 도입했으나, 2026년까지 부담금을 징수하지 않고 생산 과정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고하기로 했다. 그 사이 중국 철강은 밀물처럼 밀려들어 유럽 시장에서 수입 철강 점유율이 27%까지 치솟았다. EU가 중국산 볼트 압연강판 도금강판 등에 수십%의 관세를 부과했지만 중국 내수 불황과 환율 등의 영향으로 중국산 철강이 더 낮은 가격으로 각국 시장에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이 전 세계에 수출한 철강재 규모는 10.1%, 전년 동월 대비 40.8% 증가한 1118만t에 달한다. 중국이 올들어 10월까지 수출한 철강재는 전년보다 23.3% 늘어난 9189만t으로 집계됐다. 특히 연말까지 1억t을 넘겨 2016년 이후 최대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유로퍼는 성명을 통해 “시계가 이미 열두 시를 지난 다급한 상황”이라며 “즉각적인 조치가 없으면 유럽 제조업 기반이 사라질 위기”라고 경고했다.

연임에 성공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이달 EU 집행부가 구성되면 100일 안에 ‘청정 산업 협정’을 만들 계획이다. EU의 친환경 규제가 강력한 무역장벽 역할을 하는 동안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한편 유럽 제조업 위기는 자동차 기업을 중심으로 철강과 부품산업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 5년간 유럽 시장의 자동차 수요는 약 200만대 줄어 들었고, 수출도 감소했다. 독일 폭스바겐의 구조조정이 신호탄으로 부품 공급업체 ZF프리드리히샤펜, 셰플러, 보쉬 등도 최근 몇 달 동안 수만 명의 직원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이달 프랑스 타이어 제조업체 미쉐린도 2026년까지 자국 공장 두 곳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