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을 유쾌하고 온화한 사람으로 의인화하라면, 대니 구(Danny Koo)라고 말할 것이다. 대니 구는 자신을 바이올린 연주자로 제한하지 않고, 다양한 도전을 통해 음악적 역량을 쌓아간다. 단도직입하자면, 대니 구는 '경험주의자’다.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 사진. © 이진섭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 사진. © 이진섭
최근 그는 연말 공연 <Home>을 포함해, 앨범,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 연주, 유튜브 촬영 등 쉴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출연 이후 달라진 게 없냐고 묻자, 자신은 꾸준히 연습하고 음악적 도전을 할 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으로 감동받는 것이 음악을 하는 이유라고 말하는 표정에는 확고함이 묻어 있었다.

루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음악가. 도전을 통해 경험을 쌓고 자신의 한계에 끊임없이 부딪혀 음악 세계를 일궈가는 대니 구를 아르떼가 만났다. 인터뷰 내내 '수요예술무대'의 <Englishman in New York>에서 들려준 감미로운 목소리와 함께,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보여준 유쾌한 음악적 에너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앞으로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지 엿볼 수 있었다.

연말에 공연 준비, 앨범 <Dream of U> 발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출연 등 정말 바쁘게 생활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틴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연주자로서 본인만의 루틴이 있나요?
"저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지만, 운동선수랑 생활 패턴이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정해 놓은 룰을 지켜야 그 안에서 더 여유가 생길 거 같아서 루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매일 아침마다 운동을 하고, 스케줄이나 별다른 일이 없는 한 계속 연습하는 게 제 루틴이에요.
연말 공연 <Home>을 위해 준비해야 할 곡도 있고, 12월 1일 조수미 선생님과 함께 무대에 서는 시간이 있어서 어제는 하루종일 연습했어요 (이 인터뷰는 11월26일에 진행되었다). 요즘 들어 일정이 아예 없는 날이 거의 없는데, 이런 날도 꼭 그 루틴은 지키려 노력해요. 그래서 평소보다 일정이 있는 날이 조금 더 바빠요. 어쨌든 저에겐 음악이 삶의 중심이기에 악기 관리, 연습, 곡을 쓰는 일 등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대니 구의 음악적 DNA는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요?
"저는 부모님의 DNA를 물려받았어요.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화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머니만 하더라도 피아노를 치다가 공부를 택하신 거예요. 어린 시절 미국 시카고에 살았는데, 두 분께서 성당의 성가대로 활동하셨어요. 어머니는 오르간을 연주하고, 아버지는 노래하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저도 자연스럽게 성당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부모님께서 저를 음악적 환경에 많이 노출시키셨어요."

뉴 잉글랜드 음악원 (NEC)에서 음악 공부를 하셨는데, 당시 음악적·생활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와 행복했던 시기가 있을까요?
"음… 진짜 좋은 질문이에요. 일단 힘들었던 시기는 대학교 2학년이었어요. 저는 딱 고3 들어가기 전에 전공을 결정했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정말 늦고 말이 안 되는 거긴 했거든요. '그냥 내가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오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바이올린을 손에 잡은 것 같아요. 그런데 대학교 2학년 때부터 현실이 보였어요. 그 시절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음악을 공부했는데, 당시 '이걸로 진짜 내가 나중에 먹고 살 수 있을까?’, '과연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많았고 슬럼프가 크게 왔어요.

반면, 대학원 때 굉장히 행복했어요. 왜냐면, 그때 저는 거의 학교에 없고 계속 연주하러 돌아다녔어요. 경험을 쌓으면서 재미도 느꼈어요. 제가 참여하고 싶은 페스티벌을 발견했을 때, 10개씩 메일을 보내 참가하기도 했고, 작은 무대, 협연 등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연주 경험을 쌓았습니다. 한 해에 80개의 공연을 했고, 아마 당시 제가 학생들 중에서 가장 많이 공연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우선 하나의 문이 열려야 그다음의 문이 열린다고 생각해요. 음악적인 노력 외에도 다른 노력을 해야 기회가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공연하면서 자연스럽게 실력도 늘었고, 연습을 하는 것보다 무대에 서면 훨씬 더 실력이 는다는 것도 깨달은 것 같아요."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 사진. © 이진섭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 사진. © 이진섭
힘들었던 시기와 행복을 이해하기 시작한 시기 사이의 간격은 어떻게 극복한 것 같아요?
"그냥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놀 때도 열심히 놀자. 흐지부지 살지 말자."

헬렌 크왈워서(Helen Kwalwasser)의 마지막 제자로 알려져 있는데, 1998년에 스승님이 연주하셨던 <Cantata No. 1: V. Aria - Fair is The Rose>를 찾아 들어보니, 섬세하고 묵직한 느낌이었어요. 이게 대니 구가 연주했던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의 <It ain't necessarily so>와 좀 맞닿아 있는 것 같았어요. 별개의 연주지만 스승과 제자의 통함이 두 연주 사이에서 느껴졌는데, 스승님이 어떤 분일까 궁금해졌어요. 헬렌 크왈워서는 어떤 스승이었나요?
"제가 운이 좋았던 게, 사실 저희 동네에 사라 장(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가족이 살고 있었어요. 저희 부모님과 사라 장 부모님께서 같은 성당에 다니셨고, 저희 가족과는 굉장히 친해서 집도 자주 놀러 가고 식사도 같이 많이 했어요. 어린 시절이라 기억으로 '와 집이 굉장히 좋다, 엄청 크다, 악기랑 신기한 게 집에 참 많네' 정도로 기억하는데,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을 옆 동네 엄청 큰 집에 사는 누나 정도로 생각했던 거 같아요 (하하)

헬렌 크왈워서는 사라 장의 스승이셨어요. 그래서 사라 장의 아버지께서 저를 헬렌 선생님께 추천해주셨어요. 저는 당시 전공을 늦게 선택했고, 사춘기가 심하게 온 시절이었는데 헬렌은 편견 없이 저를 대하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가 사춘기가 좀 심한 편이었는데요, 헬렌 선생님은 제가 악기를 연주할 준비가 안 되었을 때, "우리 그냥 옆집 가서 빵 먹자.”라고 말하면서 대화를 편안하게 많이 해 주셨어요.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고, 저에게 멘토 같은 할머니이자, 좋은 스승이 되어주셨어요.

제가 8월쯤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연주 음원을 11월까지 내야 했는데 돌이켜보면 무모하고 말도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헬렌 선생님은 “오케이. 그래 해보자. 너는 할 수 있어.”라고 하면서 계속 음악 에너지를 수혈해 주셨습니다."

헬렌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니 구가 어린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춰 가르쳐주고, 다가가는 것과 닮았네요?
"선생님께서 저를 가르치실 때마다 주변을 돌아보고,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얘기하셨어요. 선생님이랑 같이 자선 콘서트도 같이 했었고요. 음악 선생님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 가르쳐주심에 감사했습니다. 조금 민감한 이야기지만 레슨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셨는데 아이의 상태가 레슨을 받을 수 없는 상태거나, 레슨을 하지 않은 경우 절대 레슨비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최근 조수미 선생님과 새로운 노래 <Dream of U>를 냈습니다. 인터뷰마다 언급도 자주 하시던데…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그리고 헬렌 스승님과 조수미 선생님 두 분이 닮으셨는지요?
"조수미 선생님과 인연은 'TV 예술무대'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후에 저에게 계속 음악적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이번에 작은 투어를 같이 다녔고, 12월 1일에도 같이 공연을 하지만 조수미 선생님과 같이 할수록 그분의 롱런 비결과 태도에 대해서 진지하게 배우게 됩니다. 연습하실 때나 공연장에도 언제나 일찍 오세요. 철저하게 자기 관리와 연습을 하시는 모습이 저에게 많은 귀감이 됩니다. 연말을 맞이해 선생님과 제가 <Dream of U>를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멘토링 덕분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두 분이 닮은 것 같네요."
조수미, 대니 구 <Dream of U> 앨범 커버 / 제공. 워너뮤직코리아
조수미, 대니 구 <Dream of U> 앨범 커버 / 제공. 워너뮤직코리아
음악 이야기를 해보자면, 대니 구는 좋은 연주자이면서 좋은 보컬리스트라고 생각해요. 팝으로 보면 존 메이어 같았어요. (기타를 잘 치지만, 보컬로도 굉장히 좋은) <Will You Be My Home>도 좋고. 원래 목소리는 타고났나요? 혹은 좋은 보컬리스트로서 훈련하는 것이 있을까요?
"와… 저 지금 소름 돋았어요. 제가 존 메이어 진짜 좋아하는데, 다른 기자분과 다른 질문들이라 인터뷰가 흥미로워요. 사실, 저는 보컬 레슨을 <슈퍼밴드> 시절에 딱 두 번 받았어요. 근데 레슨을 받아보니까 느낀 건 제가 성악 발성도 아니고, 보컬이라는 틀에서 생각할수록 더 선입견만 생기고 어렵더라고요. 존 메이어 말씀하신 것처럼, 당시 제가 좋아하는 목소리를 떠올렸어요. 색깔, 느낌 그리고 타이밍 이게 중요한 것 같아서 이것에 중점을 둔 저만의 목소리를 내려고 해요."

콘서트, 앨범 등 'Home’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 같아요. 음악만큼 가정이 당신에게 차지하는 영향도 클 것 같은데… 만약 본인만의 가정을 이루게 된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혹은 대니 구에게 'Home’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부모가 된다면, 혹은 누군가의 남편이 된다면 섣부른 '관여’를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부모님께서 성장 과정에 저에게 강요하신 적이 없었어요. 아마 이런 가치관은 제가 자라온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썼던 곡이 <Will You Be My Home>인데, 집처럼 제가 편안한 사람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공연명도 <Home>이라고 지었는데요, 제 음악이 포근하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기 원하는 희망을 담은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거슈윈(Gershwin)의 <Summertime>이나 드보르작(Dvorak)의 <Humoresque>가 대니 구의 재기발랄함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본인을 표현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이 있을지요? (연주곡도 좋고, 협주곡도 좋고, 3곡 정도 추천해주세요.)
"<바흐 샤콘느(J.S Bach-Chaconne From Partita No. 2 BWV 1004)>가 제 넘버원이고요.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Mendelssohn - Violin Concerto E Minor OP.64)>을 좋아해요. 어제 오랜만에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종일 연습했는데, 묘하고 좋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슈베르트 로자문데 콰르텟(Schubert - String Quartet No.13, D 804 "Rosamunde")이요. 이 곡이 슈베르트가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쓴 곡이잖아요. 장조와 단조가 있는데, 장조가 더 슬픈 매력이 있어서 좋아해요."

기돈 크래머, 조수미 선생님 등 수많은 연주자와 협연했어요. 함께 작업하면서 인상 깊었던 아티스트가 있을까요?
"최근 함께한 제이슨 리(Jason Lee) 형과 작업이 즐거웠어요. 곡의 주요 부분을 만들고 레코딩까지 정말 빠른 시간에 이뤄져, 음악으로 이런 에너지를 나눌 수 있는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멜로망스의 김민석도 제가 너무 좋아하고요. 몇 년 전 일이긴 한데, god의 김태우 형이랑 즉석에서 <길>을 연주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즉흥의 희열감 같은 걸 느꼈어요."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 사진. © 이진섭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 사진. © 이진섭
클래식 연주뿐만 아니라 재즈, 팝 등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하는 것 같아요. (음악이라는 공통 전제는 있지만, 조금씩 연주하는 법이나 스타일이 다른데... 연주자로서 밸런스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자신만의 밸런스를 찾는 방법이 있나요?
"여러 활동을 하고 있지만 어쨌든 연습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제가 음악적 밸런스를 찾는 것은 연습뿐인 것 같아요."

대니 구의 활동을 보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 같습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낭만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대니 구는 낭만주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본인이 낭만주의자라고 생각해본 적 있을까요?
"도전이 낭만적이라는 말에 공감해요. 로맨티시즘 그 시대에는 음악적으로 많은 부분이 도전이었잖아요. 이걸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현해야 될까하는 부분에서 다른 시도도 해보고. 저도 그런 부분과 맞닿아 있는 것 같은데, 바이올린 연주, 작곡, 프로듀싱 그 무엇을 하든지 휴머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것이 바탕이 된 뮤지션이요."

유튜브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직업병이 있다고 했는데, 직업병 외에도 주변의 제약사항을 극복해가는 것 역시 연주자의 숙명 같아요.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어떻게 좋은 에너지로 변화시키는지요?
"저는 사실 부모님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고, 이에 감사하는 게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집에 꿈을 적어놓을 수 있는 꿈 차트가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 항상 제가 하고 싶거나 꿈꾸는 것들을 적어놓고, 고민해요. 단지 단점을 긍정적으로 풀려고 하는 것보다 그것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려 하고 내 장점들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 시즌에 아르떼 독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본인의 트랙이 있다면요?
"당연히 이번에 조수미 선생님이랑 함께한 곡 <Dream of U> 추천합니다."

어떤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고 싶나요?
"아까 기자님이 존 메이어 얘기하셨는데, 존 메이어랑 작업해보고 싶고, 멜로망스의 김민석과도 좋은 협업을 해보고 싶어요."

대니 구는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으세요? 그리고 앞으로 계획도 궁금합니다.
"음악으로 희망을 주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연말에 단독 공연이 있고, 내년 4월에는 클래식 투어를 다닐 예정이에요."
대니 구 크리스마스 콘서트 <Home> 포스터
대니 구 크리스마스 콘서트 <Home> 포스터
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


[크리스마스 시즌, 아르떼 독자들에게 대니 구가 추천하는 곡♪]

대니 구, 조수미 <Dream of U>


대니 구 <Will You Be My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