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혼이 가장 농밀하게 담긴 아리아는 아마도 '어떤 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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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부인의 슬픈 운명을 암시하는 '어느 갠 날'
[arte] 강성곤의 아리아 아모레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에서
'어떤 갠 날(Un Bel Di Vedremo)'
푸치니가 사랑한 오페라 속 캐릭터, 쵸쵸상
비극적이고도 애절한 이야기 속 빛나는 아리아
[arte] 강성곤의 아리아 아모레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에서
'어떤 갠 날(Un Bel Di Vedremo)'
푸치니가 사랑한 오페라 속 캐릭터, 쵸쵸상
비극적이고도 애절한 이야기 속 빛나는 아리아
인기를 기준으로 오페라 셋만 고르라면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비제 <카르멘>, 그리고 푸치니 <나비부인>을 드는 게 보통이다. <나비부인>은 주인공 이름이 쵸쵸(蝶蝶, ちょうちょう). 일본말로 쵸쵸는 나비. 그래서 마담 버터플라이(Madame Butterfly)다.
1900년 6월, 42세 푸치니는 런던 듀크 극장에서 우연히 데이비드 벨라스코 원작의 연극 <마담 버터플라이>를 본다. 이국 취향이 있고 호기심 많던 그에게 미국 남자와 일본 여자의 비극적 러브스토리는 단연 구미가 당겼다. 원작인 존 루터 롱(John Luther Long, 1861~1927, 美)의 소설을 독파하고, 4년간의 준비 끝에 마침내 1904년 2월 17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 9일 전 터진 러일전쟁의 여파가 가장 컸다. 자포니즘(Japonisme, 일본풍)이라는 일본풍 사조가 19세기 중후반 유럽을 휩쓸었다 해도, 어디까지나 회화⸱건축⸱디자인⸱정원 등 시각 예술 중심이었지 음악은 예외였다. 게다가 곰처럼 두렵고 껄끄러운 존재이나 그래도 서양 제국인 러시아를 먼저 건드린 동방의 섬나라에 대한 인식은 나쁠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자존심 상한 푸치니는 심기일전해 대본을 손본다. 우아함과 경박스러움을 함께 지닌 일본풍 멜로디와 거칠고 무거운 분위기의 미국풍 리듬으로 대조를 주되 무엇보다 ‘어글리 아메리칸/Ugly American’의 이미지를 많이 순화시켰다. 미국 시장을 노린 장기 포석. 초연 3개월 후 수정본으로 올린 오페라 <나비부인>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현재에 이른다.
20세기 초 나가사키(長崎)에 주둔하던 미국 해군 장교 핑커톤(Pinkerton)은 15살 게이샤 쵸쵸상(버터플라이)과 결혼한다. 쵸쵸는 본래 좋은 가문의 출신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세가 기울어 게이샤가 되었다. 핑커톤과 결혼하기 위해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다. 이에 반해 핑커톤은 999년간 부부로 지낸다는 결혼 계약을 맺는데 다분히 재미 삼아 한 것. 결혼 후 얼마 안 있어 핑커톤은 본국으로 귀환하고 나비부인은 그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하녀 스즈키는 핑커톤 중위의 귀환을 의심하며 살림살이 걱정이 태산이다. 나비부인은 그래도 그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 믿으면서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자기 집에서 노래한다. ‘운 벨 디 베드레모(Un bel di Vedremo, 어떤 갠 날)’. 직역하면 ‘아름다운 날을 볼 것이다’라는 예상⸱추측⸱기대다. vedremo는 동사 vedere(보다/알다/나타나다)의 미래형.
[Madame Butterfly: Un Bel Di Vedremo (Act. 2)]
1955년 32세의 물오른 칼라스가 노래하는 쵸쵸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카라얀이 오케스트라로 받쳐준 전설적인 EMI 녹음. 칼라스가 주는 성악의 아름다움에 더해, 카라얀이 빚어내는 관현악의 묘미까지. 특히 아리아 '어떤 갠 날'에서 카라얀은 하프 독주를 키우고, 바이올린 솔로를 내세워 노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막판 ‘크레센도(crescendo) 점점 크게’와 ‘디미누엔도(diminuendo) 점점 여리게’를 절묘하게 구사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귀를 끝끝내 사로잡는다. 명불허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푸치니 자신이 가장 사랑한 캐릭터가 바로 쵸쵸상, 나비부인이었다. 거금 들여 구입한 최고급 요트의 이름도 쵸쵸호(号). 푸치니의 혼이 가장 농밀하게 담긴 아리아는 아마도 ‘어떤 갠 날’일 것이다.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
1900년 6월, 42세 푸치니는 런던 듀크 극장에서 우연히 데이비드 벨라스코 원작의 연극 <마담 버터플라이>를 본다. 이국 취향이 있고 호기심 많던 그에게 미국 남자와 일본 여자의 비극적 러브스토리는 단연 구미가 당겼다. 원작인 존 루터 롱(John Luther Long, 1861~1927, 美)의 소설을 독파하고, 4년간의 준비 끝에 마침내 1904년 2월 17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 9일 전 터진 러일전쟁의 여파가 가장 컸다. 자포니즘(Japonisme, 일본풍)이라는 일본풍 사조가 19세기 중후반 유럽을 휩쓸었다 해도, 어디까지나 회화⸱건축⸱디자인⸱정원 등 시각 예술 중심이었지 음악은 예외였다. 게다가 곰처럼 두렵고 껄끄러운 존재이나 그래도 서양 제국인 러시아를 먼저 건드린 동방의 섬나라에 대한 인식은 나쁠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자존심 상한 푸치니는 심기일전해 대본을 손본다. 우아함과 경박스러움을 함께 지닌 일본풍 멜로디와 거칠고 무거운 분위기의 미국풍 리듬으로 대조를 주되 무엇보다 ‘어글리 아메리칸/Ugly American’의 이미지를 많이 순화시켰다. 미국 시장을 노린 장기 포석. 초연 3개월 후 수정본으로 올린 오페라 <나비부인>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현재에 이른다.
20세기 초 나가사키(長崎)에 주둔하던 미국 해군 장교 핑커톤(Pinkerton)은 15살 게이샤 쵸쵸상(버터플라이)과 결혼한다. 쵸쵸는 본래 좋은 가문의 출신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세가 기울어 게이샤가 되었다. 핑커톤과 결혼하기 위해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다. 이에 반해 핑커톤은 999년간 부부로 지낸다는 결혼 계약을 맺는데 다분히 재미 삼아 한 것. 결혼 후 얼마 안 있어 핑커톤은 본국으로 귀환하고 나비부인은 그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하녀 스즈키는 핑커톤 중위의 귀환을 의심하며 살림살이 걱정이 태산이다. 나비부인은 그래도 그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 믿으면서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자기 집에서 노래한다. ‘운 벨 디 베드레모(Un bel di Vedremo, 어떤 갠 날)’. 직역하면 ‘아름다운 날을 볼 것이다’라는 예상⸱추측⸱기대다. vedremo는 동사 vedere(보다/알다/나타나다)의 미래형.
“어느 아름다운 날, 우리는 만날 거야 /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고 / 바다 먼 곳의 수평선 위로 배가 나타나 항구로 들어오고, 고동을 울리겠지 /
보이니? 그가 돌아왔어! / 그런데 나는 달려가지 않을 거야 / 여기 있을 거야, 언덕의 가장자리에 / 그리고 한참을 기다릴 거야 / 오래 기다려도 슬퍼하지 않을 거야 /
한 남자가, 한 작은 점이 다가오고 있어, 언덕을 향해 / 누구일까? 누구일까? / 도착하면, 뭘 말할까? 뭐라고 말할까 / ‘버터플라이’라고 부르겠지? /
나는 대답하지 않고 숨을 거야 / 조금은 장난스럽게 / 그이는 나를 보면 부르겠지? 귀여운 아내여, 베르베나 꽃향기여 / 그가 내게 자주 하던 말이잖아 / 스스로 약속해야겠어 / 참으렴, 견디렴. 두려움을 / 나는 믿음을 갖고 그를 기다릴 거야.”
[Madame Butterfly: Un Bel Di Vedremo (Act. 2)]
1955년 32세의 물오른 칼라스가 노래하는 쵸쵸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카라얀이 오케스트라로 받쳐준 전설적인 EMI 녹음. 칼라스가 주는 성악의 아름다움에 더해, 카라얀이 빚어내는 관현악의 묘미까지. 특히 아리아 '어떤 갠 날'에서 카라얀은 하프 독주를 키우고, 바이올린 솔로를 내세워 노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막판 ‘크레센도(crescendo) 점점 크게’와 ‘디미누엔도(diminuendo) 점점 여리게’를 절묘하게 구사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귀를 끝끝내 사로잡는다. 명불허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푸치니 자신이 가장 사랑한 캐릭터가 바로 쵸쵸상, 나비부인이었다. 거금 들여 구입한 최고급 요트의 이름도 쵸쵸호(号). 푸치니의 혼이 가장 농밀하게 담긴 아리아는 아마도 ‘어떤 갠 날’일 것이다.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