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사회비판 영화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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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PICK 3]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섹션
<손> (유현목, 1966) / <병사의 제전> (하길종, 1969) / <판놀이 아리랑> (서울영화집단, 1982)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섹션
<손> (유현목, 1966) / <병사의 제전> (하길종, 1969) / <판놀이 아리랑> (서울영화집단, 1982)
<손> (유현목, 1966)
<손>은 거장 유현목 감독의 1분짜리 단편영화다. 유현목 감독은 한국전쟁의 상흔과 전후 세대의 방황을 그린 <오발탄> (1961),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통해 근대로의 이행을 그린 <김약국의 딸들>과 같은 (1963) 리얼리스트 영화들로 한국형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기록된다.
다만, 그의 이러한 이력만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은 그가 한국 영화에서 최초로 단편을 제작하고, 영화 운동을 시작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한국 영화 산업이 막 활성화되기 시작한 1960년대 초부터 ‘시네포엠’(1964)이라는 영화 동인을 결성하고 실험 단편들을 제작했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 <손>은 그가 시네포엠을 통해 제작한 작품으로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박람회에 초청, 상영되기도 했다. 단체의 이름, ‘시네포엠’, 즉 ‘영화로 쓰는 시’가 명시하듯, <손>은 이미지를 입힌 시에 가깝다. 영화는 신생아의 손에서 시작해 탄약(으로 추정되는 물체)을 쥐고 있는 성인의 손으로 끝을 맺는다. 시어에 가까운 표현들이 등장하지만, 주제는 비교적 명확하다. 인류의 손이 궁극적으로는 창조보다는 파괴에 쓰이고 있다는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손>은 짧은 작품이지만 명징하고 강렬하다. 감독 유현목은 리얼리즘의 추종자답게 관념적인 이미지나 아이콘이 아닌, 자연에 놓인 손, 어린아이, 핸드 프린트 등 직관적인 이미지들을 사용해 인류의 손이 이룩하고 있는 폐해와 파괴에 대해 경고한다. <병사의 제전> (하길종, 1969)
하길종 감독의 UCLA 졸업 작품이었던 <병사의 제전>은 영화학도들이나 평론가들에게는 이를테면 ‘도시 전설’처럼 떠돌던 영화였다. 보고 싶지만 볼 수 없고,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전설 같은 존재의 영화다.
2009년에 영상자료원에서 하길종 감독의 회고 상영으로 이 작품이 상영되었을 때도, 영화는 하길종 감독 가족들의 개인 소장품으로 존재했던 필름의 형태로 어렵게 상영이 이루어졌다.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병사의 제전>은 디지털로 복원되어 현대의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영접하게 된 <병사의 제전>은 ‘난감한 영화’였다. 맨 레이의 <발레 메카니크(Ballet Mecanique)>를 연상하게 하는 지극히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흐름, 그것에 더해 사운드의 소실까지 영화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특성은 초현실주의 영화나 실험영화 장르에선 어쩌면 당연한 성정으로 인식될 수 있으나, 그런데도 하길종의 <병사의 제전>은 직관적으로 해석하기 힘든 작품이다. 다만, 그가 독재정권의 폭력에 맞서 싸우다가 한국을 떠난 아티스트라는 점, 그리고 그가 머물던 당시의 미국 사회가 베트남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으로 인한 혁명의 기운이 팽배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영화를 만든 시기가 이른바 ‘뉴 할리우드,’ 즉 정치적으로 비판적이고 실험적인 기운이 가득한 젊은 영화감독들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라는 점은 영화의 몇 가지 의미심장한 시도 눈여겨 보게끔 한다. 예를 들어, 노예처럼 헐벗은 채로 목에 밧줄을 걸고 있는 영화의 주인공은 바닷속에서 관을 끌고 등장하지만, 그가 영화 전반에서 가장 많이 모습을 드러내는 곳은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는 법정이다. 그는 ‘피고’이고, 그의 죄는 밝혀지지 않은 채 배심원들은 갖가지 이유로 그의 죄를 추측한다. 베심원이 언급하는 그의 죄목은 베트남전과 소비주의다.
이는 전후 미국, 그리고 1970년대의 미국 사회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노예 차림의 주인공은 당시 베트남전의 패배로 인한 미국의 패배주의 혹은 동시대에 폭력으로 잠식당한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장치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화는 이러한 설정 말고도 갖가지 추측을 해야 하는 이미지들과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앞서 이 영화를 ‘난감’하다고 표현한 것은 내러티브를 해석할 수 없는 좌절감을 뜻한 것이 아닌, 많은 것들을 상상하고 사유해야 하는 이 영화의 도전과 실험에 대한 의미심장한 소회였다. 과연 하길종이다. 그의 영화는 이미지와 사운드 소실 여부와 상관없이 여전히 혁명의 기운을 뿜어낸다. <판놀이 아리랑> (서울영화집단, 1982)
<판놀이 아리랑>은 극단 연우무대의 열 번째 정기공연 작품인 ‘판놀이 아리랑고개’의 공연과 공연 준비 과정, 그리고 분장실에서 배우들의 모습을 기록한 단편 다큐멘터리이다.
특이한 것은 영화의 사운드가 보여지는 이미지에 기반한 사운드가 아닌 공연 이후에 이루어진 인터뷰와 관객 반응을 녹음한 화면 밖 소리라는 점이다. “너무 정치적이라 별로였다”,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하다”, “룸펜이 보는 공연이다” 등 관객의 반응은 다양하고도 때로는 실소를 부를 정도로 코믹하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공연의 정치성과 선동성을 관객들이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다큐멘터리를 만든 전제 역시 공연 자체의 정치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관객들의 리셉션을 통한 당대의 정치성을 기록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영화를 연출한 서울영화집단(후에 서울영상집단으로 명명)은 서울대학교 영화 단체 ‘얄라셩’의 맴버들이 만든 독립영화 운동 단체로 <판놀이 아리랑>은 중심 멤버인 박광수, 김홍준, 황규덕, 문원립이 공동 연출한 프로젝트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앞서 언급한 유현목 감독의 <손>, 하길종 감독의 <병사의 제전> 상영에 이어 마지막 차례로 상영이 된다. 세 편 모두 독재정권을 향한 비판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품었거나, 그것으로 인해 배태된 아티스트들의 프로젝트라는 공통적인 테마를 공유한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손>은 거장 유현목 감독의 1분짜리 단편영화다. 유현목 감독은 한국전쟁의 상흔과 전후 세대의 방황을 그린 <오발탄> (1961),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통해 근대로의 이행을 그린 <김약국의 딸들>과 같은 (1963) 리얼리스트 영화들로 한국형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기록된다.
다만, 그의 이러한 이력만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은 그가 한국 영화에서 최초로 단편을 제작하고, 영화 운동을 시작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한국 영화 산업이 막 활성화되기 시작한 1960년대 초부터 ‘시네포엠’(1964)이라는 영화 동인을 결성하고 실험 단편들을 제작했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 <손>은 그가 시네포엠을 통해 제작한 작품으로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박람회에 초청, 상영되기도 했다. 단체의 이름, ‘시네포엠’, 즉 ‘영화로 쓰는 시’가 명시하듯, <손>은 이미지를 입힌 시에 가깝다. 영화는 신생아의 손에서 시작해 탄약(으로 추정되는 물체)을 쥐고 있는 성인의 손으로 끝을 맺는다. 시어에 가까운 표현들이 등장하지만, 주제는 비교적 명확하다. 인류의 손이 궁극적으로는 창조보다는 파괴에 쓰이고 있다는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손>은 짧은 작품이지만 명징하고 강렬하다. 감독 유현목은 리얼리즘의 추종자답게 관념적인 이미지나 아이콘이 아닌, 자연에 놓인 손, 어린아이, 핸드 프린트 등 직관적인 이미지들을 사용해 인류의 손이 이룩하고 있는 폐해와 파괴에 대해 경고한다. <병사의 제전> (하길종, 1969)
하길종 감독의 UCLA 졸업 작품이었던 <병사의 제전>은 영화학도들이나 평론가들에게는 이를테면 ‘도시 전설’처럼 떠돌던 영화였다. 보고 싶지만 볼 수 없고,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전설 같은 존재의 영화다.
2009년에 영상자료원에서 하길종 감독의 회고 상영으로 이 작품이 상영되었을 때도, 영화는 하길종 감독 가족들의 개인 소장품으로 존재했던 필름의 형태로 어렵게 상영이 이루어졌다.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병사의 제전>은 디지털로 복원되어 현대의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영접하게 된 <병사의 제전>은 ‘난감한 영화’였다. 맨 레이의 <발레 메카니크(Ballet Mecanique)>를 연상하게 하는 지극히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흐름, 그것에 더해 사운드의 소실까지 영화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특성은 초현실주의 영화나 실험영화 장르에선 어쩌면 당연한 성정으로 인식될 수 있으나, 그런데도 하길종의 <병사의 제전>은 직관적으로 해석하기 힘든 작품이다. 다만, 그가 독재정권의 폭력에 맞서 싸우다가 한국을 떠난 아티스트라는 점, 그리고 그가 머물던 당시의 미국 사회가 베트남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으로 인한 혁명의 기운이 팽배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영화를 만든 시기가 이른바 ‘뉴 할리우드,’ 즉 정치적으로 비판적이고 실험적인 기운이 가득한 젊은 영화감독들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라는 점은 영화의 몇 가지 의미심장한 시도 눈여겨 보게끔 한다. 예를 들어, 노예처럼 헐벗은 채로 목에 밧줄을 걸고 있는 영화의 주인공은 바닷속에서 관을 끌고 등장하지만, 그가 영화 전반에서 가장 많이 모습을 드러내는 곳은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는 법정이다. 그는 ‘피고’이고, 그의 죄는 밝혀지지 않은 채 배심원들은 갖가지 이유로 그의 죄를 추측한다. 베심원이 언급하는 그의 죄목은 베트남전과 소비주의다.
이는 전후 미국, 그리고 1970년대의 미국 사회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노예 차림의 주인공은 당시 베트남전의 패배로 인한 미국의 패배주의 혹은 동시대에 폭력으로 잠식당한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장치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화는 이러한 설정 말고도 갖가지 추측을 해야 하는 이미지들과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앞서 이 영화를 ‘난감’하다고 표현한 것은 내러티브를 해석할 수 없는 좌절감을 뜻한 것이 아닌, 많은 것들을 상상하고 사유해야 하는 이 영화의 도전과 실험에 대한 의미심장한 소회였다. 과연 하길종이다. 그의 영화는 이미지와 사운드 소실 여부와 상관없이 여전히 혁명의 기운을 뿜어낸다. <판놀이 아리랑> (서울영화집단, 1982)
<판놀이 아리랑>은 극단 연우무대의 열 번째 정기공연 작품인 ‘판놀이 아리랑고개’의 공연과 공연 준비 과정, 그리고 분장실에서 배우들의 모습을 기록한 단편 다큐멘터리이다.
특이한 것은 영화의 사운드가 보여지는 이미지에 기반한 사운드가 아닌 공연 이후에 이루어진 인터뷰와 관객 반응을 녹음한 화면 밖 소리라는 점이다. “너무 정치적이라 별로였다”,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하다”, “룸펜이 보는 공연이다” 등 관객의 반응은 다양하고도 때로는 실소를 부를 정도로 코믹하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공연의 정치성과 선동성을 관객들이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다큐멘터리를 만든 전제 역시 공연 자체의 정치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관객들의 리셉션을 통한 당대의 정치성을 기록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영화를 연출한 서울영화집단(후에 서울영상집단으로 명명)은 서울대학교 영화 단체 ‘얄라셩’의 맴버들이 만든 독립영화 운동 단체로 <판놀이 아리랑>은 중심 멤버인 박광수, 김홍준, 황규덕, 문원립이 공동 연출한 프로젝트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앞서 언급한 유현목 감독의 <손>, 하길종 감독의 <병사의 제전> 상영에 이어 마지막 차례로 상영이 된다. 세 편 모두 독재정권을 향한 비판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품었거나, 그것으로 인해 배태된 아티스트들의 프로젝트라는 공통적인 테마를 공유한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