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30분이라도 더 일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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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라이벌은 근무시간 규제 없어
반도체 주52시간 예외 허용해야
오상헌 산업부장
반도체 주52시간 예외 허용해야
오상헌 산업부장
얼마 전 야당 국회의원을 만났다는 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가 들려준 대화 한 토막.
“의원님 보좌관들은 1주일에 몇 시간 일합니까.” “바쁠 때는 70~80시간 할걸요.” “주 52시간제도 안 지키는 거네요.” “그거 지키면서 어떻게 일합니까. 나라가 돌아가지 않을 텐데요.”
“반도체도 똑같습니다. 그러니 일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것참…. 삼성, 하이닉스가 대한민국입니까.”
반도체업계의 숙원인 ‘화이트칼라 이그젬션(면제)’ 도입이 물 건너가는 모양새다. 여당은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에 한해 노사가 합의하면 주 52시간제의 예외로 인정하는 내용을 반도체특별법에 넣었지만, 야당은 근로기준법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친노동 성향 의원이 득실대는 환경노동위원회로 넘어가면 통과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18년 주 52시간제 도입과 함께 시작된 K반도체 연구원들의 ‘칼퇴근’이 내년에도 계속된다는 얘기다. 지난주 반도체산업협회 간담회에서 나온 “30분만 더 파고들면 풀릴 것 같은데 장비 전원이 훅 꺼진다. 다음날 장비 세팅에만 2시간 걸린다”는 업계의 하소연은 이번에도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될 분위기다.
정말 이래도 K반도체는 끄떡없을까. 반도체산업 경쟁 구도를 들여다보면 대략 그림이 보인다. 현재 K반도체의 전장(戰場)은 크게 4곳이다. 첫 번째는 고대역폭메모리(HBM). 특이점은 만년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이 최신 HBM을 삼성보다 먼저 엔비디아에 납품한 것이다. 마이크론이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란 ‘황금키’를 들고 있다는 점에서 SK하이닉스도 언제까지 기술 우위를 장담할 처지가 못 된다.
범용 D램 시장의 경쟁자는 CXMT 등 중국 업체다. D램 점유율을 순식간에 10%대로 끌어올린 데 이어 2026년에는 D램 넘버3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라이징 스타다. 중국 정부의 전방위 지원과 중국 테크기업들의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이 만든 합작품이다.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D램 챔피언 자리는 언젠가 중국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 전장은 파운드리. 꺾어야 할 상대는 ‘넘사벽’ TSMC다. 점유율 격차는 4년 전 36%포인트에서 올해 2분기 50%포인트로 벌어졌다. 안 그래도 삼성보다 잘하는데, 일도 더 많이 하니 이길 방법이 없다. 대만은 주 40시간제지만, 노사가 합의하면 하루 근무시간을 12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 그 덕분에 TSMC 연구소는 24시간 가동된다.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 분야도 비슷하다. 삼성은 내년에 내놓을 갤럭시S25에 자체 개발한 엑시노스 대신 미국 퀄컴의 스냅드래곤만 넣기로 했다. 갤럭시S24에는 두 제품을 나눠 사용했지만 S25에선 수율 문제로 이마저 힘들어졌다. 결국 K반도체가 잘하는 분야에선 경쟁자와의 격차가 좁혀졌고, 추격하는 분야에선 실력 차가 더 벌어졌다는 얘기다. 경영진의 판단 미스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주 52시간제도 영향을 미쳤을 터다. K반도체를 세계 1위로 올려놓은 유일한 자원이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이걸 못하게 막았으니….
밤샘 근무도 마다하지 않던 핵심 연구원들의 열정이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인 ‘기술 축적의 시간’을 앞당겼고, 그 덕분에 대한민국은 반도체로 먹고사는 나라가 됐다. 그 반도체가 지금 위기다.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온전할 수 없다. 우리의 반도체 라이벌 중 근무시간에 묶여 옴짝달싹 못 하는 기업은 없다. 우리만 연구실 불을 끈 채로 전쟁터에 내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의원님 보좌관들은 1주일에 몇 시간 일합니까.” “바쁠 때는 70~80시간 할걸요.” “주 52시간제도 안 지키는 거네요.” “그거 지키면서 어떻게 일합니까. 나라가 돌아가지 않을 텐데요.”
“반도체도 똑같습니다. 그러니 일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것참…. 삼성, 하이닉스가 대한민국입니까.”
반도체업계의 숙원인 ‘화이트칼라 이그젬션(면제)’ 도입이 물 건너가는 모양새다. 여당은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에 한해 노사가 합의하면 주 52시간제의 예외로 인정하는 내용을 반도체특별법에 넣었지만, 야당은 근로기준법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친노동 성향 의원이 득실대는 환경노동위원회로 넘어가면 통과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18년 주 52시간제 도입과 함께 시작된 K반도체 연구원들의 ‘칼퇴근’이 내년에도 계속된다는 얘기다. 지난주 반도체산업협회 간담회에서 나온 “30분만 더 파고들면 풀릴 것 같은데 장비 전원이 훅 꺼진다. 다음날 장비 세팅에만 2시간 걸린다”는 업계의 하소연은 이번에도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될 분위기다.
정말 이래도 K반도체는 끄떡없을까. 반도체산업 경쟁 구도를 들여다보면 대략 그림이 보인다. 현재 K반도체의 전장(戰場)은 크게 4곳이다. 첫 번째는 고대역폭메모리(HBM). 특이점은 만년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이 최신 HBM을 삼성보다 먼저 엔비디아에 납품한 것이다. 마이크론이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란 ‘황금키’를 들고 있다는 점에서 SK하이닉스도 언제까지 기술 우위를 장담할 처지가 못 된다.
범용 D램 시장의 경쟁자는 CXMT 등 중국 업체다. D램 점유율을 순식간에 10%대로 끌어올린 데 이어 2026년에는 D램 넘버3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라이징 스타다. 중국 정부의 전방위 지원과 중국 테크기업들의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이 만든 합작품이다.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D램 챔피언 자리는 언젠가 중국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 전장은 파운드리. 꺾어야 할 상대는 ‘넘사벽’ TSMC다. 점유율 격차는 4년 전 36%포인트에서 올해 2분기 50%포인트로 벌어졌다. 안 그래도 삼성보다 잘하는데, 일도 더 많이 하니 이길 방법이 없다. 대만은 주 40시간제지만, 노사가 합의하면 하루 근무시간을 12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 그 덕분에 TSMC 연구소는 24시간 가동된다.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 분야도 비슷하다. 삼성은 내년에 내놓을 갤럭시S25에 자체 개발한 엑시노스 대신 미국 퀄컴의 스냅드래곤만 넣기로 했다. 갤럭시S24에는 두 제품을 나눠 사용했지만 S25에선 수율 문제로 이마저 힘들어졌다. 결국 K반도체가 잘하는 분야에선 경쟁자와의 격차가 좁혀졌고, 추격하는 분야에선 실력 차가 더 벌어졌다는 얘기다. 경영진의 판단 미스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주 52시간제도 영향을 미쳤을 터다. K반도체를 세계 1위로 올려놓은 유일한 자원이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이걸 못하게 막았으니….
밤샘 근무도 마다하지 않던 핵심 연구원들의 열정이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인 ‘기술 축적의 시간’을 앞당겼고, 그 덕분에 대한민국은 반도체로 먹고사는 나라가 됐다. 그 반도체가 지금 위기다.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온전할 수 없다. 우리의 반도체 라이벌 중 근무시간에 묶여 옴짝달싹 못 하는 기업은 없다. 우리만 연구실 불을 끈 채로 전쟁터에 내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