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트럼프 송'의 역주행
디스코는 본래 비주류 음악이었다. 1960년대 백인 남성 중심의 록 음악이 대세였던 미국에서 흑인과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외계층이 춤을 추면서 틀던 노래가 그 기원이다.

1970년대 후반 미국 뉴욕의 지하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디스코 전성기가 시작됐고 그때 결성된 그룹 중 하나가 ‘빌리지 피플’이다. 1976년 프랑스 출신 프로듀서가 신문 광고 등을 통해 멤버를 모집해 1978년 그 유명한 ‘YMCA’를 발표했다. ‘영 맨’(Young man)으로 시작하는 노랫말은 겉으론 기독교청년회(YMCA)가 운영하는 쉼터를 소개하고 젊은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내용이다. 그러나 멤버 대부분이 동성애자여서 YMCA가 동성애자의 해방 공간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이런 논란을 알지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2022년 한 방송에 출연해 “YMCA가 게이들의 애국가로 불리지만 YMCA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움직이게 만든다”고 말했다. 중의적인 가사보다 중독성 있는 후렴구와 디스코 음악 특유의 흥겨움이 정치적 선동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YMCA가 나온 1970년대는 미국 중장년층에게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기인 동시에 뉴욕에서 부를 일군 트럼프 본인의 전성기와도 겹친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는 2020년 코로나19에서 회복한 뒤 나선 첫 유세 때부터 이 노래를 본인의 테마송으로 삼았다. 2020년 대선과 선거 패배 후 백악관을 떠날 때도 YMCA를 틀었다. 물론 이번 대선에선 샘 앤 데이브가 부른 ‘기다려, 가는 중이야’(Hold On, I’m Coming)를 선거 로고송으로 삼으려 했지만 노래 저작권자들이 반대하면서 저작권 문제가 없는 YMCA를 다시 한번 ‘트럼프 송’으로 채택했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자 YMCA도 덩달아 신이 났다. 이 곡은 발매된 지 46년 만에 처음으로 빌보드 댄스곡 순위 1위에 오를 정도로 역주행 중이다. 비주류 음악이던 YMCA와 워싱턴 정가의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의 성공은 그런 점에서 닮았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