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공연을 앞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객석에 앉아 무대를 응시하고 있다. /김용호 작가·구찌 제공
지난 7월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공연을 앞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객석에 앉아 무대를 응시하고 있다. /김용호 작가·구찌 제공
“그동안 앞만 보고 살았는데 지금은 옆도 눈에 들어오네요.”

어느덧 서른.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이제야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조성진은 말 그대로 숨 가쁘게 달려왔다. 스물한 살에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카네기홀 데뷔(2017), 빈 필하모닉 협연(2022) 등 굵직한 무대를 거쳐 이 시대의 독보적 연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주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머물고 있는 조성진과 화상으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0월 빈 필 서울 공연, 통영 실내악 공연 등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행복 느끼는 연주하고파”

▷한국인 첫 베를린 필 상주음악가다.

“친구와 연주하는 기분이다. 보통 연주할 때 서너 시간 전 대기실에 도착해 손을 푸는데 (베를린 필과 연주할 때는 집과 가까우니까) 공연 30분 전 도착해 바로 연주한다. 그런 게 좋다(웃음).”

▷베를린·빈 필과 협연하는 목표를 이뤘다. 이제 무엇을 하고 싶나.

“유명한 악단과 함께하는 게 아니더라도 행복을 느끼는 연주를 하고 싶다. 최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친구들과 공연했는데 너무 재밌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좀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예전에는 도움이 되는 것에 주로 시간을 할애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냥 해보는 것’도 생겼다.”

▷지난해에는 마스터클래스도 했다.

“가르쳐보는 경험이 처음이었는데, 오히려 학생들로부터 내가 배웠다. 그래서 그게 마지막이 될 거 같진 않다.”(최근 일본에서도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다)

“연주 직전엔 첫 곡의 템포 생각”

조성진 "부담보다는 욕심이 나요, 연주가 매일 좋아지길 바라는 욕심"
▷내년 1월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신보가 나온다. 프랑스 레퍼토리와 잘 맞나.

“고등학교 때 파리로 유학을 갔다 보니 자주 접해서 익숙해진 건 있다. 사실 잘 맞는 레퍼토리라는 건 딱히 없는 것 같다. 다만 좀 더 이해하기 쉽다고 느끼는 작곡가는 있다. 내겐 슈만이다. 테크닉적으로 연주가 불가능할 만큼 어려운 부분이 많고, 음악도 난해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내겐 다른 작곡가에 비해 (마음에 더 잘) 와닿는 느낌이다.”

▷마음에 드는 연주는 백 번 중 세 번 정도라고 했는데, 올해 연주 중에서는.

“롯데콘서트홀에서 한 빈 필 협연(10월 26일). 같은 프로그램으로 한 공연 세 번 중 마지막 공연이었는데 오케스트라와의 합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독일 바덴바덴 페스티벌에서 지휘자 야넥 네제 세갱과의 베토벤 협주곡 4번, 5번도 기억에 남는다.”

▷만족스러운 연주의 기준이 궁금하다.

“느낌이 중요하다. 만족스럽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들어보면 아닌 것도 있긴 하다.(웃음) 삼박자가 맞아야 된다. 아무리 좋은 연주를 해도 어쩔 수 없이 멈춰야 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준비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운도 좋아야 하는 것 같다.”

▷관객 기대가 높아서 부담도 될 것 같다.

“부담보다는 욕심, 욕심이 난다. 리사이틀 투어를 하면 같은 프로그램으로 여덟 번 정도 연주하는데 어제보다 오늘, 내일이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연주 직전에는 무슨 생각하나.

“리사이틀할 때는 템포를 생각한다. 첫 곡의 템포랑 같은 맥박으로 걸으면서 무대 위로 등장하곤 한다.”

“거장과의 연주가 최고의 레슨”

▷지금이 전성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이 전성기라면 너무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전성기가 뭔지 잘 모르겠다. 죽기 전에나 알 수 있지 않을까.”

▷존경하는 지휘자가 있나.

“클라이버의 음반과 리허설 동영상을 접했는데, 음악에 대한 그의 헌신에 경외심이 들었다. 완벽주의자인데 결과물은 자연스러운 음악을 하는 게 대단하다. 얀손스와는 운 좋게 함께 연주한 적이 있는데 ‘아우라’가 뭔지 가르쳐줬다. 그를 보며 무대 위의 아우라, 카리스마가 실재함을 느꼈다. 자주 호흡하는 키릴 페트렌코와 사이먼 래틀에게서도 많은 걸 배웠다. 이들의 리허설을 보는 게 내겐 가장 큰 레슨이자 행운이다.”

▷조성진의 연주는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올가닉한 음악을 좋아한다. 말이 되고, 자연스럽고, 유기적이면서 메시지나 드라마도 있는. 레퍼토리에 따라 다르겠지만….”

▷쉴 때는 주로 뭘 하나.

“먹는 게 내 유일한 취미인데, 최근에는 흑백요리사를 봤다. 얼마 전 안성재 셰프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같이 밥 먹으면서 음식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재밌었다. 전시를 즐기는 건 파리에 있을 때부터다. 다른 생각 없이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한다. 요즘엔 한국 현대미술에 관심이 크다. 이배, 박서보 작가를 좋아하고, 김수자 선생님은 파리에서 뵌 적 있다. 이우환 선생님 전시는 베를린에서 봤고, 강익중 작가도 뉴욕에서 뵀는데 ‘달항아리’를 비롯해 작품들이 정말 좋았다.”

최다은/김수현 기자

○ 조성진 인터뷰 전문과 다양한 화보는 ‘아르떼’ 매거진 7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