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2월 2일 오전 10시 16분

국민연금공단이 정부 당국의 외환 정책에 따라 환 헤지에 나섰다가 7000억원 규모 환 이익을 실현할 기회를 놓친 것으로 파악됐다.

[단독] 정부입김에…국민연금, 7000억 환차익 기회 놓쳤다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은 지난달 22일 기금운용위원회에 전체 외화자산(4855억달러)에서 환 헤지를 실시한 외환 익스포저(위험 노출) 비율이 지난 9월 말 현재 2.75%(약 133억5000만달러)로 집계됐다고 보고했다.

국민연금은 2년 전부터 원·달러 환율 1350원대에서 하락에 베팅하는 환 헤지를 실시해왔다. 선물환을 매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2년간 달러 가치가 3.8% 올라 그만큼 수익 창출 기회가 날아갔다. 국민연금이 환 헤지를 하지 않았다면 5억달러(약 7000억원) 운용 수익을 추가로 낼 수 있었던 셈이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나들며 고공행진을 이어감에 따라 국민연금의 수익 상실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환 헤지가 독자적 판단에 따른 것인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환율이 1400원을 넘나들자 2022년 11월 연기금에 환 헤지 비율 확대를 요청했다. 국민연금은 이에 화답하듯 이 기간 전후인 10~12월 전술적 환 헤지 규모를 73억1800만달러(약 10조2000억원)가량 늘렸다. 그다음 달에는 전략적 환 헤지 비율을 당초 0%에서 10%로 전격 상향했다.

전술적 환 헤지란 기금운용본부 재량에 따라 판단해 조정하는 헤지 방식을 말한다. 전략적 환 헤지는 모든 해외 자산에 대해 일괄적으로 헤지 비율을 결정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환 헤지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 최근 다시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나들자 정부는 국민연금에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국민연금과 이달 전략적 환 헤지 비율 상향 기간 만료를 앞두고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한국은행은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 규모 확대를 논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외환시장 안정화 정책에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게 적정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연금이 운용의 제1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는 ‘수익성’에 위배된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외환시장 안정화를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협조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국민연금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해 운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독립적으로 판단했다가 환율 방향을 잘못 읽을 수도 있는 만큼 환 손실을 지나치게 문제 삼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며 “다만 외환당국 요구에 과도하게 휘둘리는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