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국립오페라단의 ‘서부의 아가씨’ 연습 장면. 소프라노 임세경이 ‘미니’ 역할을 맡아 노래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지난달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국립오페라단의 ‘서부의 아가씨’ 연습 장면. 소프라노 임세경이 ‘미니’ 역할을 맡아 노래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서거 100주년을 맞은 이탈리아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오페라에는 강렬한 여주인공이 있다. 사랑에 죽고 사는 ‘토스카’가 그렇고, 미국인 장교와의 사랑으로 비극을 맞는 ‘나비부인’이 그렇다. 무법자를 숨겨주는 ‘서부의 아가씨’도 있다. 이들 작품은 또 다른 공통점도 있다. 올 한 해 동안 소프라노 임세경이 모두 주인공으로 출연했거나 한다는 사실이다. ‘서부의 아가씨’는 5일부터 나흘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그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푸치니 작품 속 여주인공은 나와 닮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

토스카 같은 소프라노 임세경

“토스카는 저와 같은 성악가이고, 사랑에 죽고 사는 여인이죠. 열정적으로 연애하는 면이 저와 비슷해요. 나비부인의 초초상은 열다섯 살 게이샤인데, 주어진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해요. 저도 항상 넓은 곳으로 가고 싶어서 지방에서 자라 이탈리아 유학까지 다녀왔잖아요.”

이번에 그가 처음 도전하는 국립오페라단의 ‘서부의 아가씨’는 푸치니 후기 작품 가운데 하나로 19세기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다. 임세경이 맡은 여주인공 미니는 광부들과 생활하는 털털하고 카리스마 있는 여인이지만 사랑에는 서툰 역할이다. “미니가 하이 C음을 내면서 절규하면 오케스트라가 큰 소리로 따라오는 부분이 있어요. 첫 키스를 앞둔 장면이거든요. 그만큼 사랑에서는 순수해요. 내면의 소녀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 해 여덟 작품까지 출연하기도

임세경은 2004년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로 유럽 무대에 데뷔한 이후 큰 무대의 주연이 되기 위해 수없이 오디션을 봤다. 그러다 마흔을 넘겨 세계 5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빈 슈타츠오퍼에서 나비부인 초초상으로 데뷔하고, 이탈리아 베로나 페스티벌의 대표작 베르디 ‘아이다’ 주역으로 발탁돼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랐다. 이후 매년 5~6편, 많을 때는 8편의 작품을 할 정도로 숨 가쁘게 노래하고 있다.

그는 한양대 성악과에 다니다가 뒤늦게 유학을 가게 되면서 오페라에 깊게 빠져들었다. “무대가 없을 때부터 준비했어요. 역할이 오면 바로 연습에 투입될 수 있도록 오페라 작품 전체를 공부했죠. 하다 보니 스토리, 연출, 프로덕션별 차이점 등 오페라의 큰 그림을 보는 것에 재미를 붙였어요.”

최근 임세경은 “선입견에 미루고 있던 역할에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국립오페라단 ‘맥베스’에서 ‘레이디 맥베스’를 맡았고, 지금은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준비 중이다. “목이 상할 수 있다는 걱정에 미뤘던 작품들도 막상 해보니 괜찮더라고요. 최근엔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봤는데, 독일 오페라도 도전해보고 싶어졌어요.”

그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건 음색의 변화 탓도 있다. 임세경은 따뜻하고 서정적이면서도 파워풀한 사운드를 내는 ‘리리코 스핀토’에서 소프라노 중 가장 무게감 있는 사운드를 내는 ‘드라마틱 소프라노’로 옮겨가고 있다. “발성을 제대로 공부하면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배추에 소금 간이 제대로 배면서 김장 김치가 잘 익어가는 것처럼요.”

그는 목소리로 기억되는 성악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마리아 칼라스는 눈을 감고 들어도 ‘칼라스다’ 하잖아요. 제 노래를 틀었을 때 바로 ‘임세경이다!’ 하는 사람이 됐으면 해요.”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