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 지하철 노선·한강뷰 지닌 '꿈의 땅'…30년째 개발계획만 세운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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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개벽 준비 중인 '용산국제업무지구'
2001년, 용적률 등 개발 밑그림 그렸지만
출자사 30곳 의견 하나로 묶지 못해 좌초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력 잃어
서울시, 지난 25일 도시혁신구역으로 지정
주거·업무 등 구획 나누고 글로벌 기업 유치
최고 100층 랜드마크·전시장·환승센터 계획
2001년, 용적률 등 개발 밑그림 그렸지만
출자사 30곳 의견 하나로 묶지 못해 좌초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력 잃어
서울시, 지난 25일 도시혁신구역으로 지정
주거·업무 등 구획 나누고 글로벌 기업 유치
최고 100층 랜드마크·전시장·환승센터 계획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호텔 7층. 이곳 카페와 테라스에서 바라본 빈 땅은 황량하다. 용산정비창이었던 이곳은 앞으로 '용산국제업무지구'로 탈바꿈한다. 한강 인근에 이르기까지 학교 운동장 100개는 될 만한 서울 도심부 한복판 땅이 아무것도 없는 채로 펼쳐져 있다. 6개 노선이 지나는 용산역, 서울의 동맥인 한강, 그 너머로 중심지인 여의도를 두고 있는데도 이렇게 남겨진 지 20년이 다 돼간다.
누가 봐도 '꿈의 도시'를 지을 수 있는 땅인 만큼 숱한 개발 계획이 오갔다. 단일 개발사업으로는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규모다. 1994년부터 시작된 개발 배경과 논의 시작점부터 짚어보기로 했다. MZ세대(밀레니엄+Z세대)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30년째 '계획'만 세워진 상태다. 그 시작은 어땠을까. 왜 실패한 걸까.
최근 용산국제업무지구 합동 브리핑에서 한문희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긴 철도인들에게 고향과 같은 곳이다. 100년이 넘도록 철도의 심장이었다. 수많은 철도차량이 제작되고 기술 인력이 양성된 이 땅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고 국제업무를 수행하는 허브가 된다. 철도인의 삶이 녹아있는 공간이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일본이 러일전쟁을 계기로 용산 일대를 강제수용할 때 딸려왔다. 미군이 자리잡고 있던 용산공원이 일본군 기지였고, 이촌동 일대는 일본인의 거주지였다. 1907년 일제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인천에서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철도 중심지'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 1923년 '경성공장'이라고 이름이 달릴 정도로 규모가 컸다. 1941년엔 부지 26만1000여㎡에 기계 대수 854대에 달하는 거대한 철도공장이었다. 해방 이후로도 철도청 관리에 들어가면서 전국 철도망의 유지 보수를 맡는 '철도중심지'로 쓰였다. 개발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건 1994년부터다. 사실 그 이전부터 필요성은 인식됐다. 1970년대 도심권이 급팽창하면서 영동개발이 이뤄진 것처럼, 용산의 개발 압력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철도망 확대도 차량기지 이전이 논의된 이유다. 1977년 수도권 전철화 세부계획에서 화물운송만 가능한 용산~청량리~성북역 구간을 여객운송도 가능하게 바꿨다. 중간에 정비기지를 두면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종점지로 옮겨야 할 필요성이 부각됐다는 설명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4~5월 연이어 발표한 '서남권 대개조', '강북권 대개조', 동남권대개조(미발표) 등과 지금도 맥락이 맞닿아 있다. 그때도 중심은 '용산'이었다. 누가 봐도 국제업무 중심지로 키울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영종도 신공항과 연계해 공항터미널과 물류부지 신설', '국제오피스·전시관 등 국제업무단지와 함께 콘서트홀, 박물관 등 문화공간 유치' 등의 내용이 담긴 게 눈에 띈다. 그때부터 현재 계획과 비슷한 용도로 쓰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그때도 자금조달 가능성에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개발의 밑그림인 지구단위계획은 2001년 만들어졌다. 평균 용적률 580%(250~800%), 최고 높이 150m(랜드마크만 350m)로 계획했다. 지금은 평균 용적률 900%(랜드마크 1700%)로 지정하고 용도나 용적률 제한도 없는 '도시혁신구역'을 랜드마크존인 국제업무존에 지정하기로 한 상태다.
2003년 용산정비창의 고양 이전이 확정되면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2006년까지 순차적으로 시설 이전이 이뤄지며 속도가 붙는다. 2006년 드디어 코레일이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자' 공모를 진행하며 스타트를 끊었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달 28일 브리핑에서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 2006년 코레일 공모 당시 최대 용적률 1000%, 350m 높이 건축물을 대규모로 짓겠다고 나섰지만 도시계획 결정권한을 갖고 있는 서울시가 여러 요구안을 내놨다. 일단 랜드마크 한 개 동에 대해서만 350m를 허용했다. 당시 중소기업중앙회는 공모에 참여해 무려 210층 중소기업 월드센터를 건립하겠다고 나서 화제가 일었지만 이를 일축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아는 것이지만 당시 서울시의 요구는 과도했다. 오세훈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와 맞물려 서부이촌동을 구역으로 묶고 강변북로를 지하화하라고 조건을 걸었기 때문이다. 코레일 공모는 제대로 신청을 받지도 못하고 취소됐다. 일단 서부이촌동 주민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당시에는 10년도 안된 아파트를 부수고 다시 지어야했기 때문이다. 2007년 서울시와 코레일은 총 사업비 28조원의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코레일이 주관사, 삼성물산이 사업자로 지정돼 30여 개 출자사와 함께 '드림허브 프로젝트 PFV'를 꾸렸다. 전체 부지를 30여 개사가 참여해 '통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각각의 부지를 어떻게 나눠 어떻게 개발할지 30여개사가 의견을 모아야 했다. 약 50만㎡에 달하는 사업지 규모는 뉴욕의 배터리파크시티(37만㎡)보다도 넓다. 배터리파크는 1960년대 개발을 시작해 아직까지도 채워지지 않았다.
참여사의 의견을 모으는 것도 어려웠다. 당시 참여한 서울시 관계자는 "어떻게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공공기여 조건을 가져가려고 하거나, 개발하기에 유리한 부지를 선점하려고 하는 등 의견을 모을 수가 없었던 구조"라고 설명했다. 당장 50만㎡ 부지를 어떻게 개발할지도 의견을 모으기 쉽지 않은데 서부이촌동까지 구역에 포함시키자 추진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오세훈 2기에선 서부이촌동을 제외하고 사업지를 20개 획지로 나눠서 개별적으로 개발하기로 한 배경이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동력을 확 잃었다. 그 많은 토지매입비와 개발부담금, 공사비를 부담할 사업자가 없었던 것이다. 삼성물산이 2010년 사업자 지위를 포기하는 등 난항을 겪다가 드림허브는 2013년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그에 맞춰 서울시는 도시개발구역 지정을 해제했다. 사업 무산에 따른 책임을 두고 드림허브 참여사들과 코레일은 소송까지 치렀다.
결국은 '돈'이 문제라는 게 서울시가 얻은 교훈이다. 이번에는 서울시가 시비로 직접 도시기반시설을 공사한다. 장기임차와 리츠 방식으로 토지매입비용 부담을 덜어냈다. 위기가 와도 사업이 취소되지 않도록 안배했다는 분석이다.
2018년엔 전임 시장이 '여의도·용산 통개발' 구상을 발표했지만 집값 상승 여파로 무기한 보류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이 부지에 공공임대주택 위주의 8000여 가구 미니신도시를 짓겠다는 구상을 내놨지만 실행으로 옮겨지진 않았다.
서울시는 지난달 25일 용산국제업무지구를 다시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이번에는 정부와 서울시, 코레일이 합심했다. 이번에는 최고 100층 안팎 랜드마크와 전시장·복합환승센터·오피스·아파트(1만3000가구) 등을 포함한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성공시키겠다는 것이다. 랜드마크가 속한 국제업무존(8만8557㎡), 오피스와 대형 병원이 계획된 업무복합존(10만4905㎡), 6000가구 아파트 중심의 업무지원존(9만5239㎡) 등으로 나뉜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주변에 총 12개 정비사업 등을 통해 약 7000가구의 주택 공급도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비는 1994년 계획 때 1조5000여억원에서 51조원으로 불어났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해도 10배 가까이 증가한 규모다.
정부는 민간 개발사업자가 마음껏 구상을 펼칠 수 있게 도시혁신구역으로 지정한다. 2030년까지 글로벌 기업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유치하는 게 목표다. 일본이 도쿄권역을 국가전략구역으로 삼아 세제 혜택을 제공한 것처럼 용산에도 비슷한 접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 학교와 특화 의료기관, 단기 임대 방식의 맞춤형 주거시설을 짓는다. 글로벌기업이 직접 개발에 나서면 장기임대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영어친화지구로 조성하고 국내외 출장이 쉽도록 공항철도를 용산역까지 연결하기로 했다. 교통 혼잡을 완화하기 위한 광역교통대책에는 예산 3조5780억원이 투입해 지하 간선도로 등을 건설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이 아시아 비즈니스허브로 도약하는 데 핵심 거점이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가경쟁력을 상징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누가 봐도 '꿈의 도시'를 지을 수 있는 땅인 만큼 숱한 개발 계획이 오갔다. 단일 개발사업으로는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규모다. 1994년부터 시작된 개발 배경과 논의 시작점부터 짚어보기로 했다. MZ세대(밀레니엄+Z세대)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30년째 '계획'만 세워진 상태다. 그 시작은 어땠을까. 왜 실패한 걸까.
최근 용산국제업무지구 합동 브리핑에서 한문희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긴 철도인들에게 고향과 같은 곳이다. 100년이 넘도록 철도의 심장이었다. 수많은 철도차량이 제작되고 기술 인력이 양성된 이 땅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고 국제업무를 수행하는 허브가 된다. 철도인의 삶이 녹아있는 공간이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일제도 알아본 요지 중의 요지
용산정비창은 1899년 처음 신문에 언급된다. 황성신문 11월16일자 기사에 '용산전기철도, 전봇대와 주차장, 레일 및 차량은 미국에서 수입한다'는 내용이다. 청일전쟁이 진행 중이던 1894년 맺어진 조약에 따라 일제가 철도를 놓기 시작한 것. 1905년 용산과 신의주를 잇는 군용철도가 부설되며 만주 침략의 기지 역할로 쓰였다. 당시 일제가 삼은 서울의 핵심 교통기지였다.일본이 러일전쟁을 계기로 용산 일대를 강제수용할 때 딸려왔다. 미군이 자리잡고 있던 용산공원이 일본군 기지였고, 이촌동 일대는 일본인의 거주지였다. 1907년 일제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인천에서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철도 중심지'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 1923년 '경성공장'이라고 이름이 달릴 정도로 규모가 컸다. 1941년엔 부지 26만1000여㎡에 기계 대수 854대에 달하는 거대한 철도공장이었다. 해방 이후로도 철도청 관리에 들어가면서 전국 철도망의 유지 보수를 맡는 '철도중심지'로 쓰였다. 개발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건 1994년부터다. 사실 그 이전부터 필요성은 인식됐다. 1970년대 도심권이 급팽창하면서 영동개발이 이뤄진 것처럼, 용산의 개발 압력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철도망 확대도 차량기지 이전이 논의된 이유다. 1977년 수도권 전철화 세부계획에서 화물운송만 가능한 용산~청량리~성북역 구간을 여객운송도 가능하게 바꿨다. 중간에 정비기지를 두면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종점지로 옮겨야 할 필요성이 부각됐다는 설명이다.
30년 전부터 주목한 '국제업무중심지' 가능성
1994년 당시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국제화를 위한 도시구조 개편과 전력 지역 개발 설계' 용역에 강서구 마곡지구, 마포구 상암지구와 함께 언급됐다. ‘동북생활권(청량리·왕십리), 서북생활권(신촌), 동남생활권(영동·잠실), 서남생활권(영등포)’으로 서울을 구분했는데 그 중심을 용산으로 봤다.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4~5월 연이어 발표한 '서남권 대개조', '강북권 대개조', 동남권대개조(미발표) 등과 지금도 맥락이 맞닿아 있다. 그때도 중심은 '용산'이었다. 누가 봐도 국제업무 중심지로 키울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영종도 신공항과 연계해 공항터미널과 물류부지 신설', '국제오피스·전시관 등 국제업무단지와 함께 콘서트홀, 박물관 등 문화공간 유치' 등의 내용이 담긴 게 눈에 띈다. 그때부터 현재 계획과 비슷한 용도로 쓰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그때도 자금조달 가능성에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개발의 밑그림인 지구단위계획은 2001년 만들어졌다. 평균 용적률 580%(250~800%), 최고 높이 150m(랜드마크만 350m)로 계획했다. 지금은 평균 용적률 900%(랜드마크 1700%)로 지정하고 용도나 용적률 제한도 없는 '도시혁신구역'을 랜드마크존인 국제업무존에 지정하기로 한 상태다.
2003년 용산정비창의 고양 이전이 확정되면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2006년까지 순차적으로 시설 이전이 이뤄지며 속도가 붙는다. 2006년 드디어 코레일이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자' 공모를 진행하며 스타트를 끊었다.
'사공이 너무 많았다' 용산 개발 실패한 이유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7년이 떠오른다. 당시 우리는 한강 르네상스와 연계한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여러가지 이유로 아쉽게 무산됐다. 전임 시장 땐 '미니신도시'로 계획했다가 난항을 겪었다. 헛된 과정은 아니었다. 교훈을 얻었고, 완성도 높인 개발구상으로 발전시켰다."오세훈 시장은 지난달 28일 브리핑에서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 2006년 코레일 공모 당시 최대 용적률 1000%, 350m 높이 건축물을 대규모로 짓겠다고 나섰지만 도시계획 결정권한을 갖고 있는 서울시가 여러 요구안을 내놨다. 일단 랜드마크 한 개 동에 대해서만 350m를 허용했다. 당시 중소기업중앙회는 공모에 참여해 무려 210층 중소기업 월드센터를 건립하겠다고 나서 화제가 일었지만 이를 일축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아는 것이지만 당시 서울시의 요구는 과도했다. 오세훈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와 맞물려 서부이촌동을 구역으로 묶고 강변북로를 지하화하라고 조건을 걸었기 때문이다. 코레일 공모는 제대로 신청을 받지도 못하고 취소됐다. 일단 서부이촌동 주민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당시에는 10년도 안된 아파트를 부수고 다시 지어야했기 때문이다. 2007년 서울시와 코레일은 총 사업비 28조원의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코레일이 주관사, 삼성물산이 사업자로 지정돼 30여 개 출자사와 함께 '드림허브 프로젝트 PFV'를 꾸렸다. 전체 부지를 30여 개사가 참여해 '통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각각의 부지를 어떻게 나눠 어떻게 개발할지 30여개사가 의견을 모아야 했다. 약 50만㎡에 달하는 사업지 규모는 뉴욕의 배터리파크시티(37만㎡)보다도 넓다. 배터리파크는 1960년대 개발을 시작해 아직까지도 채워지지 않았다.
참여사의 의견을 모으는 것도 어려웠다. 당시 참여한 서울시 관계자는 "어떻게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공공기여 조건을 가져가려고 하거나, 개발하기에 유리한 부지를 선점하려고 하는 등 의견을 모을 수가 없었던 구조"라고 설명했다. 당장 50만㎡ 부지를 어떻게 개발할지도 의견을 모으기 쉽지 않은데 서부이촌동까지 구역에 포함시키자 추진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오세훈 2기에선 서부이촌동을 제외하고 사업지를 20개 획지로 나눠서 개별적으로 개발하기로 한 배경이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동력을 확 잃었다. 그 많은 토지매입비와 개발부담금, 공사비를 부담할 사업자가 없었던 것이다. 삼성물산이 2010년 사업자 지위를 포기하는 등 난항을 겪다가 드림허브는 2013년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그에 맞춰 서울시는 도시개발구역 지정을 해제했다. 사업 무산에 따른 책임을 두고 드림허브 참여사들과 코레일은 소송까지 치렀다.
결국은 '돈'이 문제라는 게 서울시가 얻은 교훈이다. 이번에는 서울시가 시비로 직접 도시기반시설을 공사한다. 장기임차와 리츠 방식으로 토지매입비용 부담을 덜어냈다. 위기가 와도 사업이 취소되지 않도록 안배했다는 분석이다.
2018년엔 전임 시장이 '여의도·용산 통개발' 구상을 발표했지만 집값 상승 여파로 무기한 보류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이 부지에 공공임대주택 위주의 8000여 가구 미니신도시를 짓겠다는 구상을 내놨지만 실행으로 옮겨지진 않았다.
이번엔 정부 힘도 싣는다..."국가경쟁력 상징할 것"
"용산서울코어는 단순한 도시개발사업을 넘어 대한민국의 국가적 프로젝트다. 국정과제인 용산시대 개막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사업이다. 한국은 대외지향적 구조로 외국과의 교류가 국가 경제발전에 중요 요소였고, 특히 수도권은 국제기능 강화를 오래 전부터 강조했는데 이를 공간적으로 구현한 곳이 기억에 많이 없다. 아시아·태평양 비즈니스 중심지로서 경제적 위상과 국민적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서울시는 지난달 25일 용산국제업무지구를 다시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이번에는 정부와 서울시, 코레일이 합심했다. 이번에는 최고 100층 안팎 랜드마크와 전시장·복합환승센터·오피스·아파트(1만3000가구) 등을 포함한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성공시키겠다는 것이다. 랜드마크가 속한 국제업무존(8만8557㎡), 오피스와 대형 병원이 계획된 업무복합존(10만4905㎡), 6000가구 아파트 중심의 업무지원존(9만5239㎡) 등으로 나뉜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주변에 총 12개 정비사업 등을 통해 약 7000가구의 주택 공급도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비는 1994년 계획 때 1조5000여억원에서 51조원으로 불어났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해도 10배 가까이 증가한 규모다.
정부는 민간 개발사업자가 마음껏 구상을 펼칠 수 있게 도시혁신구역으로 지정한다. 2030년까지 글로벌 기업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유치하는 게 목표다. 일본이 도쿄권역을 국가전략구역으로 삼아 세제 혜택을 제공한 것처럼 용산에도 비슷한 접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 학교와 특화 의료기관, 단기 임대 방식의 맞춤형 주거시설을 짓는다. 글로벌기업이 직접 개발에 나서면 장기임대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영어친화지구로 조성하고 국내외 출장이 쉽도록 공항철도를 용산역까지 연결하기로 했다. 교통 혼잡을 완화하기 위한 광역교통대책에는 예산 3조5780억원이 투입해 지하 간선도로 등을 건설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이 아시아 비즈니스허브로 도약하는 데 핵심 거점이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가경쟁력을 상징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