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돈의 국회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계엄령 선포에 반대하는 시민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이 모여 혼잡스러운 상황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 혼돈의 국회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계엄령 선포에 반대하는 시민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이 모여 혼잡스러운 상황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심야 긴급 담화로 시작된 계엄령 선포는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여야 의원 190명이 해제 요청을 한데 따른 것이다.

이날 계엄선포는 더불어민주당의 일방적인 감액 예산안 처리, 감사원장 등에 대한 탄핵안 처리 예고 등에 따른 윤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감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계엄령 선포는 지나치다”는 비판이 여당에서도 터져나오며 계엄령은 신속히 해제됐다. 그에 따른 정치적 부담은 온전히 윤 대통령과 정부가 지게될 전망이다.

밤 10시 넘어 나온 긴급담화

계엄선포 후 2시간40분 만에 국회 소집…본관 진입한 계엄군 철수
윤 대통령의 3일 긴급담화는 여당은 물론 대통령실 내에서도 공유가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시작됐다. 이날 밤 10시 25분에 시작된 긴급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야당의 탄핵 시도’ 등을 언급하며 비상 계엄을 선포했다.

계엄 선포 직후 의원들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재적의원 과반이 넘으면 계엄을 철회시킬 수 있는 법 규정에 따라 150명 이상의 의원을 넘기는 것이 관건이 됐다. 속속 여야 의원들이 집결하며 자정 전에 이미 “본회의장 안에 있는 의원이 150명을 넘겼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증원된 경찰과 긴급 투입된 계엄군이 뒤늦게 국회 진출입을 차단했지만 이미 본회의장에는 계엄을 취소시킬 수 있는 숫자의 의원들이 모여들었다. 의원들의 숫자를 확인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4일 새벽 12시40분께 본회의 계의를 선언했다. 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 의안과에서 만들어질 때까지 10여분간 기다린 우 의장은 새벽 1시께 해당 의안을 올려 본회의에셔 통과시켰다. 계엄령 해제안이 처리되면서 국회 본회의장 진입 시도를 하던 계엄군도 철수했다.

국방장관 요청에 따라 계엄 선포

정부는 이날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계엄령과 관련된 결정을 윤 대통령이 결행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윤 대통령은 3일까지 야당의 ‘입법 독주’ 등과 관련한 위기감을 강하게 느꼈다. 당장 11월 30일인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을 지난 직후 정부안이 아니라 야당 예산안이 본회의로 제출됐다. 이전에는 국회법에 따라 여야가 기한 내에 예산안 심의를 마무리 짓지 못하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그대로 본회의로 올라왔다. 이후 양당 원내대표는 기존 논의의 연장선에서 정부안을 증액·감액한 뒤 통상 12월 하순에 합의안을 처리해왔다. 연말까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정부안이 본회의에 올라 표결에 부쳐진다. 야당은 이를 부결시킬 수 있지만 ‘나라 살림살이를 발목 잡았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12월 이후 예산안 협의 과정에서 정부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민주당이 감액 예산안을 상정하며 전제 자체가 달라졌다. 양당 원내대표 협상의 기준점이 정부안에서 4조1000억원을 덜어낸 민주당안이 된 것이다. 여야 협상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으면 민주당은 언제든 감액안 처리를 요구할 수 있다. 합의되지 않으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상정한 안이 최종 처리될 수 있는 만큼 정부와 여당의 마음이 더 급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여당은 쫓기는 상황에서 예산과 관련된 민주당의 입장을 수용해야할 상황이 됐다.

연이은 野 탄핵에 대한 반발도

더불어민주당은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 등의 탄핵소추안도 처리할 예정이다. 모두 사상 초유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의 역할을 차단하는 상황에서 더이상 국정 운영을 이어갈 수 없다는 위기감도 계엄령 선포의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말햇다.

민주당은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의 검사 탄핵에 반대 입장을 밝힌 검사들에 대한 감사요구안을 강행 처리했다. 감사요구안에서 검사 탄핵에 반대한 검사들에게 ‘정치적 중립 의무 및 정치운동 금지 등 관련 법령 위반 의혹’이 있다고 한 것이다. ‘(검사들의) 검사 법령 위반 행위에 대한 방조, 조장 의혹’을 이유로 법무부와 검찰도 감사 대상으로 명시했다.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들은 지난 2일 이 지검장 등 검사 세 명의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자 비판 성명을 냈다.

최 원장은 이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조은석 감사위원의 후임으로 백재명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를 임명했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최 원장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최 원장의 직무가 정지되면 감사원법에 따라 재직 기간이 긴 감사위원 순으로 원장 권한을 대행하게 된다. 이에 따라 조 감사위원이 임기 만료일인 내년 1월 17일까지 권한대행을 맡고, 이후 김인회 위원(내년 12월 5일 임기 만료)이 이어받는다. 최 원장 권한 정지 시 내년 1월 17일까지 감사위원회 의결 구도가 3 대 3으로 팽팽한 대립을 이루다가 18일부터 보수 4 대 진보 2 구도로 재편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검찰과 감사원이라는 사정기관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형법 개정안에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도 대통령실 내에서 비판적인 반응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이 야당을 겨냥해 “대한민국의 존립을 흔드는 단체”라고 비판했던 이유다.

尹 정치적 부담 불가피

하지만 이같은 이유에도 계엄령 선포는 지나쳤다는 것이 정치권 전반의 분위기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계엄령 선포 직후 반대 입장을 밝힌 이후, 본회의장에 입장해 계엄령 취소 요구안 의결을 지켜봤다.

계엄령은 사실상 해제됐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은 여야를 막론하고 강하게 제기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당장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장하며 가능한 빨리 탄핵안을 국회에 부의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여당 의석이 108석에 불과한 상황에서 현재 분위기에서는 탄핵안 처리 가능성이 적다고 보기 힘들다.

이에 따라 자칫하면 2017년과 같은 대통령 탄핵 사태가 다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국회의 계엄 해제안 처리와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노경목/설지연/배성수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