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밤 열린 F4회의. 기재부 제공.
3일 밤 열린 F4회의. 기재부 제공.
지난 3일 밤 비상 계엄이 선포된 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서울 은행회관에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F4' 회의로 불리는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한 후 약 15분 거리에 있는 한국은행 본관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이 총재는 금융·외환시장 담당 부서 등 한은의 주요 간부를 소집해 둔 상태였다. 부총재보 등 집행간부와 각국 국장들이 집에서 나와 본부로 속속 들어섰다. 야간 시간대 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긴급 회의를 즉시 진행했다.

이창용의 잠 못 이루는 밤

이 총재는 통화정책과 금융시장을 담당하는 박종우 부총재보를 비롯한 간부들과 대응책 마련을 고심했다. 우선 모든 간부가 참석하는 회의를 4일 오전에 개최해 상황을 점검하기로 했다.

이후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여는 방안을 금통위원과 함께 상의했다. 4일 오전 추가 F4 회의 이후 9시에 금통위를 열기로 했고, 이같은 일정이 새벽 1시25분께 기자단에 공지됐다. 1시경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된 후 였지만 계엄이 선언된 것만으로도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임시 금통위가 결정된 후부터는 관련 간부들을 중심으로 금통위 안건과 대응 방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최용훈 금융시장국장과 최창호 통화정책국장, 윤경수 국제국장, 이병목 금융결제국장 등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을 담당하는 부서장들은 대부분 귀가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도 새벽 2시경까지 김용식 공보관과 커뮤니케이션 방안을 논의하는 등 급박한 밤을 보냈다.
4일 오전 임시 금통위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박종우 부총재보(가운데)가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병목 금융결제국장, 최용훈 금융시장국장, 박 부총재보, 최창호 통화정책국장, 윤경수 국제국장. 한국은행 제공.
4일 오전 임시 금통위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박종우 부총재보(가운데)가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병목 금융결제국장, 최용훈 금융시장국장, 박 부총재보, 최창호 통화정책국장, 윤경수 국제국장. 한국은행 제공.
4일 오전 열린 임시 금통위에서는 내년 2월까지 비정례적으로 환매조건부증권(RP)을 무제한 매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안이 의결됐다. RP매입은 금융기관의 적격 채권을 환매를 조건으로 한은이 사주는 방식의 유동성 공급 도구다. 국채, 정부보증채와 금통위가 정한 기타 유가증권이 매입 대상이다.

한은은 이번 임시 금통위에서 산업금융채권, 중소기업금융채권, 수출입금융채권, 9개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특수채, 농업금융채권, 수산금융채권, '은행법'에 따른 금융채까지 매입 대상을 확대했다. RP매매 대상 기관도 모든 은행, 증권사, 선물회사 등으로 확대했다. 외화 RP도 필요시 매입해 외화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는 전날 철야 작업을 주도한 박종우 부총재보와 최용훈·최창호·윤경수·이병목 국장이 함께 자리했다. 박 부총재보는 "RP를 충분히 매입할 것"이라며 "이는 필요로 하는만큼 무제한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최용훈 국장은 "RP매입 기간도 수주에 걸쳐 충분히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코로나19 기간이나 레고랜드 사태 때 했던 조치와 유사한 수준이지만 상황은 그때에 비해 낫다는 점도 짚었다. "지금은 금리를 인하하면서 통화정책을 완화 기조로 운영하고 있어 당시보다 시장 불안 우려는 상대적으로 작다"고 박 부총재보는 설명했다. 최용훈 국장도 "어제 오늘 사이 특별한 자금 요청은 없었다"고 밝혔다.

12년만의 5인 금통위

임시 금통위가 개최된 것은 지난 2021년 6월 이후 3년 5개월만에 처음이다. 당시에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구성한 회사채 매입 기구의 대출 조건 변경과 만기 연장안 등이 논의됐다. 2015년 이후 임시 금통위는 8차례 열렸다.

이번 금통위는 이 총재와 금통위원 4명 등 총 5명이 참석했다. 유상대 부총재가 홍콩에서 열리는 금융안정위원회(FSB) 총회에 참석했고, 장용성 위원은 세미나 참석차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학에 방문한 상태였다.

한은법에 따르면 금통위 회의는 위원 5명 이상의 출석이 있어야 개의가 가능하다. 한명만 더 부재중이었어도 회의를 열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한은 금통위 회의가 최소 인원인 5명 참석으로 열린 것은 지난 2012년 11월 이후 12년만이다.
한은이 간밤 긴급히 움직인 끝에 연 금통위에서 내놓은 대책들은 대체로 시장 안정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 주간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 대비 15원20전 오른 1418원10전으로 출발한 후 장중 1415원 부근에서 움직이다가 막판 1410원10전까지 떨어졌다.

전날 주간 상황에 비해서는 7원20전 올랐지만 야간에 나타난 장중 고가인 1442원에 비해선 32원가량 하락했다. 주가와 채권시장도 대체로 안정적인 흐름을 나타냈다.

한은은 야간 상황에 비해 다소 변동성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향후 흐름을 계속 주시한다는 계획이다. 박 부총재보는 "당분간 불안요인이 잠재해 있는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장안정화 조치를 적극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이날부터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4시 하루 2회 부총재가 주재하는 비상 대응 TF를 통해 금융·외환시장 상황을 점검해나갈 계획이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