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해제한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은 어제 윤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해 6~7일 표결할 것이라고 하고, 하야 목소리도 크다. 여당에서는 내각 총사퇴, 김용현 국방부 장관 해임 등의 주장이 터져나온다. 여당 일각에선 대통령 탈당 목소리도 있다. 나라 안팎의 경제·안보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정국 격랑으로 국가 대응력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돼 우려가 크다.

비상계엄 선포 이유와 과정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질 사람은 져야 한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극단적 수단 동원이 엄청난 국가 혼란을 부를 것이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함부로 해선 안 될 일을 했다. 국격을 땅에 떨어뜨리고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한 책임도 무겁다. 국무회의에서 상당수가 반대했는데도 한밤중에 독단적으로 계엄을 결정한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해제해야 한다’는 헌법(제77조 5항) 규정 때문에 실패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엄을 강행한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국 타개용이 목적이었다면 잘못된 판단이다. 아무리 야당의 발목 잡기로 국정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설득하고 타협해 나가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게 지도자의 기본 책무다. 이게 어렵다고 해서 물리력으로 해결하려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고, 결과적으로 정국 주도권을 야당에 내줘버렸다.

야당을 괴물 등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도 과도하다. 더군다나 지금 상황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등 계엄 요건을 충족했다고 보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군인을 국회에 들어가게 한 것도 헌법 위반 소지가 있다. 내란죄 해당 여부를 두고서도 논란이 큰데, 윤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지금의 국정 운영 어려움도 주변 관리 하나 못해 총선 패배를 부른 탓이 크다.

거대 야당도 정치가 이 지경까지 온 데 대해 면죄부를 받을 순 없다. 민주당은 정부조직법 반대를 시작으로 현 정부 출범 초부터 끝없는 발목 잡기로 ‘식물 정부’로 만들다시피 했다. 거부권 행사를 뻔히 알면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법안 처리를 강행한 것은 대통령에게 불통 이미지를 씌우기 위한 저열한 수법이었다.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온갖 꼼수를 동원해 입법 폭주를 했다. 정치인의 기본인 균형, 책임감은 찾을 길이 없고, 당 전체가 대표 사법 방탄에 매달리면서 의회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이 정부 들어 공직자 20여 명을 탄핵 대상에 올렸고, ‘감액예산 예결특위 단독 처리’라는 유례없는 일까지 자행했다. ‘비토크라시’(상대 정파의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극단적 파당 정치)라는 말이 과하지 않을 지경이다. 국가 대계에 대한 고민 없이 국정 전반을 마비시켜 대통령의 헛발질을 유도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더 본질적인 문제인 정치 후진성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진영정치는 현 정부 출범 이후 더 심해졌고, 무조건 반대만 하는 제로섬 대결과 보복 정치가 일상화했다. 치열한 논리 공방과 설득으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정치 과정은 사라지고 모 아니면 도식 극단만 횡행했다. 이로 인한 국민의 피로도는 극에 달했고, 정치 혐오만 팽배해졌다. 여야는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치지만, 오히려 정치가 민생과 경제에 방해가 될 뿐이다. 이런 구태 정치가 지속되는 한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격랑 속에서 대한민국이 흔들리지 않도록 정치권과 사회 각계각층의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윤 대통령이 국지전이라도 벌일 것”이라고 하는데, 불안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몰아가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 해선 안 된다. 무턱대고 “끌어내려야” 하는 것도 섣부르다. 여당은 집권당 본연의 역할을 찾아 다급한 경제활성화법과 예산안 처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사태 전말에 대한 소상한 설명과 엄중한 사과는 물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습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