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미국의 51번째 주
“지옥 같은 필리핀 정부를 버리고 미국이라는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1981년 필리핀 대선에 출마한 바르톨로메 카방방 연방당 후보의 출사표였다. 그는 필리핀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면 고속 성장할 수 있다는 청사진에 유권자들이 공감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필리핀 독립을 지지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대승이었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필리핀과 달리 푸에르토리코 국민은 미국에 거부감이 적다. 미국에 인접한 인구 320만 명의 섬나라여서 대미 의존도가 높은 영향이다. 1898년 스페인 식민지에서 미국령이 된 뒤 1917년 이 나라 국민들은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 1952년엔 자치권까지 얻었지만 미국 선거에서 참정권은 갖지 못했다. 당연히 미국 정치권에서 뒷전이었다. 푸에르토리코는 1967년부터 선거 때마다 미국 성조기의 51번째 별이 되기 위한 국민투표를 병행했다. 매번 찬성 비율이 높았지만 미국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특히 푸에르토리코인들이 친민주당 성향이어서 공화당의 반감이 컸다. 2012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찬성했지만 공화당의 반대에 막혔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측 찬조 연설자가 푸에르토리코를 “쓰레기 섬”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트럼프가 캐나다에 대해선 정반대 발언을 했다. 지난달 말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엄포에 플로리다 마러라고로 달려온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향해서다. 트뤼도가 “고율 관세로 캐나다가 완전히 죽을 수 있다”고 하자 트럼프는 “차라리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고 받아쳤다. 트럼프 취임일인 내년 1월까지 선물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협상용 메시지겠지만 트뤼도와 캐나다 국민의 마음은 편치 않을 게 분명하다.

주요 7개국(G7) 회원국으로 미국과 차별화한 정체성을 지닌 캐나다 국민에게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란 말은 상당한 모욕이다. 한국인이 일본인으로 오해받을 때처럼 캐나다인도 미국인으로 오인당하면 대부분 불쾌해한다. 혹 떼려고 세계 정상 중 가장 먼저 트럼프와 만난 트뤼도는 마음 한가득 원념을 품었을 것 같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