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도전DNA' 살려야 위기 넘는다
121년 전 라이트형제가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하기 전까지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조롱과 희화화의 소재로 사용되곤 했다. 양·항력 등 항공역학의 기본 이론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당시 새의 날개를 직관적으로 모방한 우스꽝스러운 형태의 비행체는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일쑤였다.

19세기 말 내로라하는 공학자들이 동력 비행 문제에 천착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군수업에 눈뜨던 세계 열강들도 비행체 개발 프로젝트에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급기야 뉴욕타임스는 1903년 12월 8일자 지면에 “인간이 하늘을 날려면 최소 백만 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풍자했다.

꿈을 현실로 만든 도전정신

하지만 이 기사가 나온 지 9일 만인 12월 17일 미국 동남부의 작은 마을 키티호크 해변에서 13마력의 가솔린 엔진을 단 동력비행기 ‘플라이어’가 12초간 하늘을 날았다. 인간을 잡아끌던 중력의 고리를 끊은 건 자전거 수리공 출신 라이트형제였다. 두 형제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처럼 비행기도 조종하지 않으면 안정적으로 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날개 끝에 방향키를 달았다. 1000여 번의 실패 끝에 완성한 현대 항공학의 기본 틀이다.

기술 문명의 진보가 그렇듯 라이트형제의 혁신 도전은 새로운 혁신의 단초가 됐다. 인류 최초의 동력비행 거리는 40m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 성공으로 촉발된 비행제어 기술 경쟁은 제트기, 로켓으로 이어지는 항공우주산업 대서사의 기초를 닦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21년 4월 지구 밖 행성에서 첫 동력 비행에 성공한 화성탐사로봇 인저뉴어티의 하단부에 ‘플라이어’의 날개 한조각을 붙였다. 라이트형제의 도전정신을 기리는 취지였다.

딥테크 선순환 흐름 만들어야

라이트형제의 성공 스토리는 최근 몇 년 새 기술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딥테크(기저기술)의 선순환 효과를 떠올리게 한다. 20세기 초 당시 항공업이야말로 현재의 인공지능(AI), 우주개발, 모빌리티, 바이오에 버금가는 딥테크였음이 분명하다.

딥테크의 최대 강점은 모방과 추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차별화된 기술력이 세운 탄탄한 기술 진입 장벽은 생존 경쟁력의 밑거름이 된다. 혹여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시장 판도를 뒤집거나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내는 대체 불가한 사업모델을 갖게 된다.

마침 지난 2일 나온 국내 첫 AI 분야 유니콘 기업의 등장 소식은 그래서 더 반갑다. AI 반도체 설계 전문(팹리스) 스타트업인 리벨리온은 탄탄한 기술력을 토대로 창업 4년 만에 1조3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개발 난도가 높은 추론용 신경망처리장치(NPU) 분야에서 엔비디아의 독주를 견제할 작은 거인으로 꼽힌다. 이 회사의 성공 여부에 따라 국내 AI 팹리스 업계의 미래도 좌우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상상이 현실에 가까워지는 순간 딥테크에 내재하던 파괴적인 창조 혁신은 빛을 발한다. 끈질긴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제2, 제3의 리벨리온을 키워내야 하는 이유다. 도전 DNA가 사라진 산업 생태계는 활력을 잃고 추락하기 마련이다. 경쟁의 판과 룰은 끊임없이 바뀌지만 그 위기에서 기회를 만드는 유일한 길은 오직 도전 또 도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