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미국 CNN 등 세계 각국의 주요 외신이 일제히 ‘한국 대통령의 계엄 선포’ 기사를 속보로 내보내고 있다.   /CNN 캡처
4일 미국 CNN 등 세계 각국의 주요 외신이 일제히 ‘한국 대통령의 계엄 선포’ 기사를 속보로 내보내고 있다. /CNN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 6시간 만인 4일 새벽 해제했지만 후폭풍은 국내 정치뿐 아니라 외교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자유민주주의 기반 가치 외교를 주장해온 윤석열 정부에 이번 사태가 ‘치명타’를 입혔다는 분석과 함께 북한에 도발 빌미를 줬다는 비판까지 제기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미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주의 가치 타격

일본 NHK가 한국의 비상계엄 관련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뉴스1
일본 NHK가 한국의 비상계엄 관련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뉴스1
윤 대통령은 꾸준히 자유민주주의 기반 가치 외교를 강조해왔다. 계엄을 선포하면서도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세 차례나 언급했다. 하지만 계엄 자체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민주주의를 중시해온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마찰을 빚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한국이 지난 수십 년간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 중 하나였던 이유는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국가들과 경쟁하는 이 지역에서 한국이 민주주의의 봉화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라며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미국과 한국 간 동맹이 수십 년 만에 최대 시험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한국을 ‘민주주의의 모범국’이라고 부르며 호평해왔다. 바이든 정부 시기 한·미관계를 이끌어온 건 한·미가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는 점이었다. 이번 사태로 “바이든 대통령이 놀랐을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는 이유다. 이날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성명을 내고 계엄령 선포에 “우려스렵다”며 “민주주의가 한·미동맹의 기초”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민주주의 가치 훼손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금 상황은 ‘트럼프 변수’가 아니라 ‘계엄령 변수’가 됐고, 이 정권이 살아남더라도 힘이 실리지 않을 가능성이 커 한·미관계와 한·미·일 3각 공조 모두 새판을 짜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북한에 빌미 제공”

한·미 동맹과 한·미·일 공조를 통한 북핵 위협 대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미국 측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 백악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시는 아니지만 군대 이동이 있는 계엄 상황에서 전시작전권을 가진 미국 측이 이를 통보받지 못했다는 것이 북한 위협에 대비하는 데 허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미 연합 정신을 고려했다면 미국 측에 통보했어야 한다”며 “북한 문제에 민감한 트럼프 당선인이라면 이 지점을 문제 삼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사태가 북한에 도발 빌미를 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한국의 불안정한 상황을 악용할 것이라는 얘기다. 트럼프 2기 출범 후 미·중 갈등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관리에 이르기까지 동맹국과 조율할 사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에 불필요한 신호를 준 게 미국 입장에서 골칫거리라는 설명이다. 정구연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 계엄은 해제됐지만 한국 정권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달가운 상황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확장억제 정책도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당장 4~5일 열릴 예정이던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제1차 NCG 도상연습(TTX)이 계엄 여파로 순연됐다. 바이든 행정부에서의 마지막 NCG였다. 트럼프 당선인이 NCG를 계승하지 않거나 축소할 가능성이 있어 향후 회의가 기존 수준으로 열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김종우/김동현 기자 jongwoo@hankyung.com